[편집실에서] 수단과 목적의 혼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며 10·26을 거사한 자신의 심경을 진술했다. 이른바 그는 확신범이다.

수단과 목적은 종종 혼동되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 전도되기도 한다. 김재규씨의 의도적인 전도는 법적 판단과 관계없이 끊임없는 논쟁의 소재로 남아있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근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고한 불특정 다수인이 피해대상이 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구나 당장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가 그 대상이 되면 수단·목적의 가치논쟁은 더이상 설자리가 없다.

이런 점에서 의란(醫亂)을 촉발한 의사의 진료거부는 수단과 목적을 혼동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의사들은 ‘진료권 확보와, 이를 통한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위해서는 폐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에겐 섭섭할지 모르지만 이같은 논리는 ‘당분간은 환자를 희생시킬 수 밖에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수단과 목적을 혼동해도 단단히 혼동한 셈이다. 더구나 일부에서는 자신의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무제한 폐업하겠다고 극언해 ‘혼동’이 아닌 ‘확신’의 수준까지 갔다.

병원 폐업사태는 ‘대충 그러려니’했던 서민들의 짐작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 ‘의료행위를 놓고 인술(仁術)이니 뭐니 하는 고상한 말은 환상이었고, 결국은 돈과 밥그릇의 크기였구나’ 하는 씁쓸한 확신이다.

그리고 남은 건 불신이다. 끝까지 병원을 지켰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6월23일 성명에서 “생명을 지키는 것을 포기할 때 의사가 설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6/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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