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그릇 역사기행(14)] 강진(上)- 청자찻그릇 고향

청자문화의 아버지 장보고 장군

세계적인 자기문화의 백미인 우리나라 청자 찻그릇의 고향 강진을 답사하기 전에 기행자는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로 우리 현대사의 아픈 부분을 드라마로 승화시켜 이름없는 수많은 희생자의 영혼을 초혼한 바 있는 김종학 감독과 차를 한잔 할 시간을 가졌다.

김 감독과의 대화 중에 세계인을 감동시킨 바 있는 영화 ‘징키스칸’과 필적할 만한 9세기 동아시아의 해상왕 장보고 장군의 일대기를 영화로 제작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행자는 장보고 장군이 우리나라 청자문화 탄생의 아버지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해준 바 있다.

기행자는 아무쪼록 김종학 감독이 구상하는 장보고 장군의 영화가 성공적으로 제작되어 세계인을 감동시켜 장군의 넋이 21세기 세계사에 새롭게 초혼되길 간절히 기원했다.

라이샤워 교수의 표현처럼 신라의 장보고 장군은 국제적 안목을 갖고 한민족의 기상을 바다와 대륙을 통해 동아시아 해상제국의 꿈을 실현시킨 위대한 영웅임에 틀림없다.

장보고 장군의 9세기경 해상과 대륙에서의 활동상을 자세히 기록으로 남긴 사람은 일본의 스님 엔닌(圓仁 794∼864)이다. 그가 쓴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가 1920년대 초반 일본의 쿄토 동사(東寺)에서 천년만에 긴 잠에서 깨어나 라이샤워 박사에 의해 연구돼 장보고 장군의 위대한 업적이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엔닌 스님은 당나라로 유학차 산동성 법화원에 도착하였을 때 장보고 장군에게서 커다란 도움을 받게 된다. 엔닌은 당대에 장보고 장군에게 보은을 하지는 못했지만 천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그의 일기를 통해 장군의 위대함을 세계 학계에 알림으로써 보은을 했던 것이다.

이처럼 인연을 소중히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시공을 초월하여 그 영원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도자사에서 청자가 탄생되기까지 장보고 장군이 아버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최근 국내외 학계의 연구결과로 밝혀졌다.

9세기 초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무역상사의 본점 역할을 하게 한 장보고 장군은 신라교민이 많이 상주하는 산동성 적산촌에 법화원을 건립하여 대당(大唐) 신라인의 정신적인 구심처 역할과 본국의 청해진과의 군사·무역적으로 긴밀한 연락을 하는 기능도 수행하도록 하였다.

엔닌 스님이 적산촌 법화원에 도착하였을 때 신라 스님으로부터 최초로 차대접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보고 장군이 취급한 무역품 중에는 당나라의 맛있는 차를 비롯하여 고급 청자 등도 포함돼 있었다.

장보고 장군의 무역활동 영역은 산동성을 주무대로 하여 강서성, 절강성, 복건성까지 미쳤으며 이 지역은 중국 청자 문화의 발생지로서 월주요(越州窯)를 비롯한 유명한 가마터들이 있다. 장보고 장군은 당나라 최고의 하이테크인 청자기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이곳 선진 테크니션들을 청해진과 지근 거리에 있는 강진쪽으로 데려와 서남해안의 시유 도자기를 생산하던 우리 기술자에게 청자 하이테크를 이전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청자 문화의 탄생은 신라토기 기술과 8세기 후반 영암 구림리 시유도기 기술의 축적 위에서 부단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이처럼 영산강 유역의 시유도기 생산단계에서 당나라 대륙으로부터 장보고 장군을 통해 들어온 하이테크인 칼슘유약 계통인 자기문화(磁器文化)를 접목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계속>

<현암 최정간 도예가>

입력시간 2000/06/2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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