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亂, 상처 남긴 '응급처치'

7일만에 폐업 철회, 이번엔 약사들 '들썩들썩'

과연 의사의 힘이 세긴 셌다. 의사의 힘이 세다기 보다는 의료의 사회적 기능이 크다는 표현이 옳겠다. 남북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무색하게 만들며 6일간의 의료대란을 몰고 왔던 병원 집단폐업이 여야 영수의 중재를 거쳐서야 겨우 종식됐다.

의사협회는 6월25일 폐업철회 여부를 묻는 찬반투표를 거쳐 26일부터 진료복귀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상화는 세가지 점에서 ‘갈등의 제2라운드’를 연데 불과하다는 우려가 높다.

우선 여야 영수회담에서 나온 결과가 구체성없이 법개정 시한을 못박은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둘째, 약사법을 시행도 하기 전에 개정부터 하기로 한데 대해 대한약사회가 고운 눈으로 보지 않고 있다.

또하나는 의사협회의 폐업철회 찬반투표 결과가 박빙이었다는데 있다. 폐업철회 51.9%, 폐업강행 47.5%의 결과는 앞으로 의협 내부조율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남을 전망이다.


또다른 갈등 잉태한 ‘봉합’

여야 영수회담은 대치상태에서 옴짝달싹 하지 않던 정부와 의협간 기압전선을 와해시키는 돌파구 역할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24일 회담을 갖고 약사법을 7월1일부터 시행하되 문제점을 조기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당초 9월 정기국회에서 개정하기로 했던 계획을 앞당겨 7월 임시국회에서 우선사항으로 다루기로 한 것. 일단 약사법을 시행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정부가 견지해온 ‘선시행 후보완’의 틀은 유지됐다. 따라서 정부의 체면도 일단 유지했다.

영수회담 결과는 의협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선(先)보완 후(後)시행’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협이 물러선 것은 폐업을 지속할 경우 전체 의료계가 설 땅이 없어진다는 위기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갈등하던 차에 나온 정치권의 중재를 얼른 받아든 셈이다. 이같은 정황은 김재정 의협회장이 내놓은 ‘회원에게 드리는 글’에서도 드러난다.

김 회장은 “우리 요구가 모두 수용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약사법 개정을 약속했고, 폐업투쟁을 통해 의료계의 단결된 힘을 보여 줬으며, 의보수가 적정화·의학교육 정상화·수련제도 지원 등을 확보하는 성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검찰도 “의료계가 폐업을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한다면 사법처리 대상을 최소화하는 등 최대한 선처할 방침”이라고 밝혀 지원사격을 했다. 검찰은 공정거래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김재정 의협회장 등 폐업 지도부에 대해서도 강제수사를 자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검찰은 폐업 의사의 경우 진료거부나 진료방해 혐의가 명백히 입증될 때만 처벌하고, 혐의가 무겁지 않으면 가급적 불기소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공정거래위가 고발한 지도부는 102명.


약사법 개정 착수, 약사들 반발 움직임

영수회담 합의에 맞춰 여야 정치권도 약사법 개정에 착수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영수회담에서 확인된 것은 7월중 개정한다는 원칙 뿐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개정방향은 국회의 몫이다.

여야는 의료계와 약업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법개정안을 마련해 합의처리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정치권은 약사법 내용중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약사의 ‘임의조제’와 ‘대체조제’ 문제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이 부분에 대해 자체 개정안을 마련한 후 본격적 의견조율에 나선다는 것이 여야의 생각.

하지만 약사법의 또다른 축인 약사회가 썩 내키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 진통이 예고된다. 김 대통령이 영수회담에서 “약사쪽과도 협의해야 한다”고 말해 약사회를 진무하려는 자세를 보였지만 약사회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약사회가 당초 강경투쟁 자세를 보였다가 ‘예의 주시’쪽으로 톤다운한 것은 사회분위기를 감안한 전술적 후퇴로 보는 견해가 많다. 약사회의 반발은 정치권이 의협의 실력행사에 굴복했다는 점을 중시, 앞으로 약사법이 개정될 경우 기득권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에 기반하고 있다.

약사회의 태도는 여야의 방침인 ‘의-약 합의개정’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분쟁의 초점이 돼온 ‘임의조제’와 ‘대체조제’에 대해서도 여야는 아직 방향을 못잡고 있다.

민주당은 임의조제 근거로 지적되고 있는 PTP와 포일판매 약품의 판매단위를 현재의 2알 이상에서 10~20알 등으로 상향조정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의 요구대로 이 조항을 아예 없애거나 약품 판매단위를 30알까지 상향조정하는 것은 소비자의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무리가 따른다. 소비자가 피로회복 음료에 우루사를 섞어먹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지금까지는 야국에서 우루사 1~2알을 피로회복 음료와 함께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임의조제 방지를 이유로 우루사를 1회에 최소 30알 사도록 한다면 소비자가 반발할 게 뻔하다. 시민단체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방향 못잡은 ‘임의·대체 조제’

대체조제의 경우에는 일단 의료기관과 약국대표가 참여하는 지역별 의약분업협력회의를 통해 의료기관이 통보한 처방의약품은 대체조제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할 생각이다.

이에 따라 대체조제 허용 유무를 처방전에 표기하는 것과 대체조제시 사전통보하는 방안에 대한 실효성 검토에 나섰다. 하지만 약사회가 지역별 의약분업협력회의 참가 자체를 거부하고 나설 경우에는 방법이 없다.

‘의란’(醫亂)에 이어 또다시 ‘약란’(藥亂)을 몰고올지도 모를 약사법 파동은 정부의 신뢰성 위기에 그 뿌리가 있다는 지적도 의미심장하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부가 신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부의 신뢰는 약속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6월23일 당정최종안)은 적정수가-적정급여에 대한 언급은 있으나 이를 관철하기 위한 수가조정 정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의료분업안의 개선을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과 조직, 구체적인 재정소요내역과 재정조달계획 등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의 보건복지 전반에 걸친 무책임한 행동을 볼 때 앞으로의 계획에도 의구심을 해소할 수 없다.”

의료대란은 나아가 사회전반에 ‘힘의 논리’를 상례화시켰다는 점에서도 계속적인 부담으로 남을 전망이다. 일단 밀어붙이면 정치권이 나서고, 정치권이 나서면 정부당국은 노선을 바꿔 순응하게 마련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심지어 정부가 제약회사측의 이해를 침범하는 정책에는 인색하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약가 마진의 추가인하와 약품 유통망 정비에 대한 정책제시가 없었다는 것이 그 논거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의약분업 제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자칫 제도시행 자체가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6/28 11:15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