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아이언 자이언트

애니메이션이 아이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어른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른이 애니메이션을 보며 가슴 찡한 감동을 느낀다거나 심지어 울고 싶어진다면 설마 할 것이다.

<아이언 자이언트:The Iron Giant>(전체 관람 가, WB)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나도 그 ‘설마군(群)’에 속했다. 더구나 스틸 사진 속의 로봇은 1960년대에나 나옴직한 아주 단순한 외형의 덩치 큰 고철덩어리여서 여간 촌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감동을 끌어내는 요인 중의 하나였다. 킹콩이나 고질라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외모지만 심성(?)이 고와 첨단 살상 무기로 무장한 복잡하고 음울한 최신 로봇보다 더 정이 간다.

<아이언 자이언트>가 1999년에 발표된 미국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는 평가를 받고 LA비평가협회 선정 애니메이션 부문 수상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957년이라는 시대 배경과 외로운 소년, 사색하는 로봇, 다양한 인물 묘사와 에피소드 등 이야기가 튼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메인주의 작은 어촌 록웰의 초등학교에서는 <아토믹 홀로코스트>라는 교육용 필름을 틀어주며 핵폭탄이 터지면 무조건 엎드리라고 가르친다. 로봇을 찾아 나선 군 정보원은 “소련의 스프트닉호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상황인데 외계에서 날아온 로봇을 어떻게 믿느냐”고 성화를 한다.

나와 다르거나 힘이 세 보이는 상대는 무조건 없애고 봐야 한다는 냉전논리의 불안이 깔려있는 것이다. 반면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1950년대의 작은 마을은 아이들에게는 동화를, 어른에게는 향수 어린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로봇을 발견하는 소년 호거스(엘리 마리엔탈 목소리 연기)는 아버지가 없으며 자상하고 예쁜 엄마(제니퍼 애니스톤)는 생업에 바빠 숲 근처 외딴 집에서 혼자 저녁을 먹고 공포 영화를 보다 잠이 든다. 호기심 많은 8살 소년은 학교 친구들로부터는 너무 나선다고 은근히 왕따를 당하고 있다.

이런 외로움이 호거스를 로봇에게 아무 경계심 없이 다가서게 만드는 것이다. 호거스에게서 말을 배우고 슈퍼맨과 같은 착한 로봇이 되라는 말을 들은 아이언 자이언트(비르 디젤)는 귀여운 사슴이 사냥꾼 총에 맞아 숨진 것을 보고 크게 상심한다.

“총은 나쁜 것, 사슴은 죽었다, 그럼 나도 죽고, 호거스도 죽는가?”하는 의문을 처음으로 품게 되는 것이다. 호거스는 이렇게 답한다. “넌 감정과 생각이 있으니 영혼이 있다는 거겠지. 엄마가 그러셨는데 영혼은 영원히 안 죽는데.”

방어를 위해서만 변신하여 공격하게 되어있는 아이언 자이언트에게 핵공격를 지시하는 어른들. 아이언 자이언트는 호거스의 다음과 같은 말에 붉은 분노를 거둔다.

“네 자신은 네가 만들어 가는 거야.” 호거스와 아이언 자이언트의 이별 장면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소년과 로봇의 만남, 우정, 이별은 와 흡사한 부분이 많지만 덜 영악해서 더욱 마음을 울린다.

1998년에 세상을 떠난 원작자 테드 휴즈에게 헌정된 <아이언 자이언트>의 감독은 <심슨 가족> <어메이징 스토리>로 유명한 브레드 버드. 셀과 3D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순박하고 감동적이며 유머러스한 애니메이션을 완성했다. 우리말 더빙판과 자막판 두 가지로 출시되었다.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0/06/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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