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용산구 이촌동(二村洞)

오늘날 대중가요에도 등장하는 ‘돌아가는 삼각지’. 그 삼각지가 옛날에는 한강물이 범람하면 물이 곧잘 차오르는 습지였다. 그래서 한강의 큰 물이 지나간 뒤에는 모래톱이 쌓여 동네이름이 모래마을, 즉 사촌(沙村)이었다.

사촌에서 한강으로 통하는 오늘날 한강로 1, 2, 3가 일대는 한강 물살에 쌓여진 퇴적토의 황무지벌이었다. 그 황무지벌 가운데 군데군데 마을이 있었으니 납천정리(納泉井里), 그물새남터, 사남기(沙南基:새남터), 미누리여울, 새푸리나루터 등의 촌락이 을씨년스럽게 조는 듯 흩어져 있었다.

특히 오늘날 용산역과 한강 인도교에 이르는 지역은 한강 모래벌판으로서 너추네벌이라 불렀다. 또 새푸리라 불리우던 마을은 을축년 장마 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흙이 찰지고 응집력이 좋아 조선조 때는 궁궐에서 쓰는 기와와 벽돌을 도맡아 놓고 구워서 공급하던 와서(瓦墅:오늘날 세계일보사 자리)도 있었다.

그리고 1950년 전후까지만 해도 지금의 이촌동 강가에는 약 50~60호의 오두막집이 널려 있었는데 강가 허허벌판에 자리한 지라 ‘들말’이라 불렀다. 그 ‘들말’이, ‘둘말’로 돼 ‘이촌(二村)’이란 한자말로 뜻빌림된 것이다.

나라 안에서 ‘들말’이라는 땅이름이 무려 110여 곳이나 조사되고 있다. 그 ‘들말’이 한자로 뜻빌림되면서 이촌(二村), 야촌(野村), 평촌(坪村), 평리(平里), 평동(平洞), 야동(野洞), 야리(野里) 등으로 됐다. 또 벌말(들말)도 평촌(坪村)으로 뜻빌림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땅이름에 있어서 ‘들말’의 ‘들’처럼 전연 엉뚱한 한자로 뜻빌림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노들나루→노량진(鷺梁津’에서의 ‘들’은 ‘들보 량(梁)’자로, ‘갈들이섬→추자도(楸子島)’에서의 ‘들’은 ‘아들 자(子)’로, ‘무들이→수입리(水入里)’에서의 ‘들’은 ‘들 입(入)’자로….

이와 같이 순우리말의 ‘들’이 한자로 二, 坪, 平, 野, 梁, 子, 入 등 다양하게 뜻빌림(意譯)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경우 ‘들→둘’로 된 것도 그 원인이다.

이 외에도 ‘갯들이’라는 땅이름이 포이동(浦二洞:서울 강남구)으로 되는가 하면 이촌동과 같이 처음에는 ‘들말’이었던 것이 ‘들’이 모음변화를 일으켜 ‘돌말’로 발음돼 ‘돌말→석촌(石村)’으로 된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땅이름의 경우 한자의 뜻에 너무 얽매이면 그 땅이름의 뿌리가 엉뚱하게 해석되기 쉽상이다.

이를테면 포이동(浦二洞)을 글뜻대로 해석한다면 ‘포구가 둘이다’라는 뜻이 아닌가. 큰 강도 없는데 포구가 그것도 둘씩이나 있을리 없다. 순수한 우리말을 한자에 집착한 나머지 한자로 뜻빌림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무리수가 따르는 것이다.

어찌되었던 이촌동의 경우도 ‘이촌(二村)’이란 뜻으로 풀면 ‘두 마을’이라는 뜻. 그 두 마을(二村)에 걸맞게 오늘날 이촌동은 한강로에서 한강대교에 이르는 길을 기준으로 동부이촌동과 서부이촌동, 둘로 나뉘어 있다.

두 마을은 아파트군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밀림을 이뤄 한강 기적의 대명사처럼 되고 있으니 ‘이촌’이라는 땅이름 탓일까!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0/07/0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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