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약관 20세에 일본바둑계 평정

조치훈이 불멸의 ‘3패후 4연승’의 불가사의를 이해하려면 일단 일본 바둑계의 1990년 초 상황, 그리고 조치훈의 바둑인생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조치훈은 1956년생으로 1962년 6세의 코흘리개로 일본에 건너가 바둑입국의 기틀을 닦는다.

그후 11세의 나이로 일본 최연소 프로가 되며 1975년 일본 프로 10걸전을 우승하여 최연소 타이틀 홀더가 된다. 19세 타이틀 홀더면 지금으로는 이창호라는 존재가 있어서 그리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속도였다.

그리고 1980년 대망의 명인을 쟁취하며 일본 일인자에 오른다. 24세에 이룬 메이저리그의 완전정복이었다.

일본 바둑계는 1990년 즈음 세계바둑대회가 생기기 전까지는 메이저리그로 통했고 박찬호가 미국을 건너가듯 한국과 대만의 될성 부른 떡잎들은 일본땅으로 향했다. 일찍이 우칭위엔이 대륙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최초의 유학생이자 용병이었고, 대만의 린하이펑 왕리청 왕밍완, 그리고 한국의 조상연 조치훈 조선진 류시훈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바둑은 지금까지도 인생이 결부되어야만 진일보할 수 있는 도(道)라고 여기는 게임이다. 당연히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사카다 후지사와 등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은 40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조남철은 40대에 전성기를 누렸고 일본 유수의 실력자들이 전부 40대에 절정기를 맞이했다.

그러다 한 세대를 당긴 이가 대만의 린하이펑이다. ‘이중허리’로 불리우며 바둑계에 두터움이란 소재를 가미한 린하이펑은 30대에 일본의 황제 자리에 오르면서 오랜 통설을 뒤집어 버린다. 그러다 등장한 것이 조치훈이고 조치훈은 그보다도 또 10년이 빠른 20대에 일본 바둑계를 평정한다.

단한번 타이틀을 따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최고수의 기간을 거쳤다는 얘기다. 나중에 이창호가 10대에 세계챔프에 오르지만 사실 이창호 이외에 아직도 20대에 최고수가 된 이는 없으니 조치훈이 앞당긴 세월은 가히 혁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조치훈이 1980년에 일본 최고타이틀인 명인에 오르자 일본 내의 반응은 그리 좋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바깥 문화를 잘 소화한다는 일본인이지만 자기 무대에서 타국의 젊은이가, 그것도 맘속으로는 얕잡아보기 딱 좋은 ‘조센징’이 정상에 올라섰다는 건 어지간한 군자가 아니고서는 진정으로 축복을 해주기 힘든 이슈였다.

조치훈이 한글보다 먼저 깨친 바둑은 그래도 민족이나 국가별 차별은 덜한 분야이긴 했다. 그러나 자신보다 5년 이상 연상인 린하이펑 고바야시 이시다 가토 다케미야 등 내로라 하는 일본의 패자들이 모조리 어린 조치훈의 발 아래 놓이게 되자 사실 조치훈은 외톨이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자연스레 놓인다.

그때마다 조치훈은 기력보다는 심력이 단련되었고 이기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묘한 기운을 체득하기 시작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는 말은 이제 승부바둑의 제 1강령이 된지 오래다.

일본 바둑계는 유난히 강자들이 많다. 하기야 프로바둑에 등장한 기사 치고 강호가 아닌 사람이 없겠냐만은, 조치훈이 그들을 차례로 꺾어나가면서 그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어갔고 또 반작용으로 조치훈은 더더욱 단련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중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4세 연상인 고바야시 고이치였다. 고바야시 고이치는 일본기사답지 않게 집요한 구석이 있었으며 바둑이 시원스럽진 않지만 승부만큼은 악착같은 데가 있었던 일본 바둑의 기린아였다. <계속>


<뉴스와 화제>

· 서봉수 이세돌 도전권 다툼

‘불사조’ 서봉수가 꺼져가던 불씨를 살리며 왕위전 도전권 동률재대국에 나서게 되었다. 리그전적 5승1패로 6전 전승을 기록하던 이세돌과 맞붙은 서봉수는 상대전적 4전 전패의 수모를 당하던 이세돌을 꺾어 같이 6승1패를 마크했다.

따라서 두사람은 공동 1위가 되었는데 7월초 둘간의 동률재대국으로 도전자를 선발하게 된다. 연초부터 32연승의 상승세를 이어온 이세돌과 최근 감각이 살아난 서봉수간의 대결은 여름 바둑가의 최고 카드로 떠오를 전망이다.

· 대학생패왕전 열린다.

전국대학생 바둑대향연인 대학패왕전이 오는 7월13, 14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다.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생 고수들이 총집결하여 명실상부한 대학 최고수를 가리는 이번 대회는 19년의 전통을 쌓은 한국 최고의 대학생 바둑제전. 대회참가는 한국기원 보급부(02-2299-1295)로 하면 되고 참가자격은 전문대생 포함, 전국대학 재학생이다.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07/0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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