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순례] 록히드 마틴(19)

우주서 눈 돌린 세계최대 방산업체, 한국과도 인연

55년만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도 평화에 대한 희망이 싹트고 있다. ‘레드 아노미’로 불리는 사회 전반의 정체성 혼돈은 물론이고 일각에서는 남북한 상호군축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다국적 방위산업체의 주요 무기시장 중 하나였던 한반도에도 ‘평화배당금’(peace dividend)에 대한 기대가 일고 있다. 평화배당금은 대포를 녹여 쟁기를 만든다는 의미. 군비를 축소해 그 돈을 경제발전과 복지비용으로 돌린다는 이야기다.

평화는 다국적 방산업체에는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니다. 군비축소는 무기시장 축소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다국적 방산업체는 이미 1980년대 말 동서 냉전체제 와해로 인해 전례없는 홍역을 치렀다. 특히 미국 방산업체들은 탈냉전기 10여년간 미국의 국방비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엄청난 시련에 봉착했다. 구조조정과 합병, 새로운 분야와 시장개척을 통한 자구책 강구는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4,000대 이상 팔린 F16

세계 최대 다국적 방산업체인 록히드 마틴은 탈냉전기 군수업체의 변신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록히드 마틴은 한국 공군의 주력전투기인 F16의 메이커로서 잘 알려져 있다. F16은 지금까지 4,000대 이상이 팔려나간 베스트 셀러 기종이다.

록히드 마틴은 1995년 3월 록히드 코퍼레이션과 마틴 마리에타 코퍼레이션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록히드 마틴은 그후에도 두 차례의 중요한 인수합병을 성사시켰다. 1996년 4월 로랄사로부터 전자방위산업과 시스템 통합 분야를 전략인수했고, 1997년 3월에는 노드롭 그루먼을 합병했다.

록히드 마틴의 지난해 매출은 255억달러, 직원은 전세계적으로 14만명에 달했다.

1990년대는 미국 방위산업계의 재편기였다. 특히 1990년대 중반 3년간 40차례 이상의 인수합병이 있었다. 이에 따라 26개에 이르던 미국의 방위산업체는 현재 록히드 마틴과 보잉, 맥도널 더글러스, 레이시언 등 10여개사로 이뤄진 거대한 독과점 체제로 이행했다.

이같은 재편바람은 탈냉전기 군사환경의 변화에 기인했다. 각국이 다투어 국방예산을 감축한 반면, 연구개발비는 폭증했기 때문이다. 방위산업에서는 무엇보다 규모의 경제가 중시된다. 살벌했던 인수합병 바람은 규모의 경제의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무기산업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불가피한 수요에도 불구하고 무기장사 자체는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방산업체들은 무기판로를 위해 로비를 해왔다. 1998년 3월30일자 뉴욕타임스는 미국 방산업체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대를 촉진하기 위해 의회를 대상으로 대규모 로비를 해왔다고 보도했다.

록히드 마틴, 노드롭 그루만, 레이시온, 보잉 등이 포함된 6대 방산업체들이 2년간 5,100만 달러를 들여 NATO 확대 로비를 했다는 것. 덕분에 NATO에 새로 편입된 폴란드 등 동유럽 3개국에는 현재 미제무기가 도입되고 있다.


탈 냉전시대, 우주서 활로 찾아

변화된 국제환경은 생존 뿐 아니라 회사 이미지를 위해서도 방산업체에 과제를 던지고 있다. 탈냉전과 21세기를 맞은 록히드 마틴은 이에 따라 회사의 캐치프레이즈를 ‘드넓은 우주로의 동반자’로 내걸었다.

무기에만 특화하는 것이 아니라 첨단기술회사로서 위상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메릴랜드주 베세스다에 총괄본부를 두고 있는 록히드 마틴은 사업을 4개 분과로 나눠 각각 수석 부사장이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첫 분과는 항공역학사업으로 전투기와 항공부문 연구를 맡고 있다. 1999년 매출은 55억 달러. 두번째는 우주항공 및 미사일 사업. 우주선 발사와 위성제작, 전략미사일을 관장하며 지난해 매출 58억 달러를 기록했다.

전술미사일과 항행시스템, 통합플랫폼, C4I(명령·통제·통신·컴퓨터·정보) 계열을 담당하는 시스템 통합 분과의 매출은 109억 달러였다. 마지막으로 기술서비스 분과는 미정부를 위한 에너지 프로그램과 항공우주 관련 서비스를 맡고 있으며 매출은 22억 달러였다.

록히드 마틴이 우주관련 사업 등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무기개발 과정에서 획득한 첨단기술 덕분이다. 지금까지 록히드 마틴이 개발한 무기에는 F-16을 비롯해 C-130수송기, F-117 스텔스기, 트라이던트 전략미사일, U2 첩보기 등이 있다. 미국의 차세대 전투기인 F-22 랩터와 JSF도 개발완료 단계에 있다.

록히드 마틴의 최대 고객은 미 국방부다. 지난해 매출의 53%가 미 국방부의 조달에서 나왔다. 국방부를 제외한 미 행정부, 항공우주국(NASA) 등이 19%, 미국내 민간 분야가 매출의 6%를 차지했다. 해외매출은 22%.

한국지사인 록히드 마틴 코리아가 설립된 것은 1987년 6월. 지금까지 한국형 전투기(KF16), 한국형 고등훈련기(KTX2), C130 수송기, P3C 대잠정찰기 등에서 70억 달러 규모의 거래관계를 갖고 있다.

록히드 마틴은 지금까지 한국 국방 분야의 최대 파트너 자리를 굳혀 왔다. KF16 120대를 구매한 KFP 사업에서는 우방국 최초로 기술도입생산 면허를 한국측에 부여했다. 1999년 끝난 이 사업에서 한국은 1단계로 F-16 12대를 직도입하고, 2단계에서는 36대 조립생산, 3단계로 72대를 기술도입생산했다.


비군수분야서도 한국과 깊은 관계

한국의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무기도입 사업은 직수입 보다는 다국적 방산업체와 국내업체가 협력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KTX2 사업은 삼성항공이 록히드 마틴과 공동개발하되 대우, 대한항공 등 35개 협력업체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KTX2는 간단한 성능개량을 통해 전투기로 전용할 수 있는 마하 1.5의 고성능 기종으로 한국의 항공기술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록히드 마틴은 비군수 분야에서도 한국과 인연이 깊다. 무궁화 위성 1, 2, 3호는 모두 한국통신과 록히드 마틴의 협력 하에 제작됐다. 대구공항 관제시스템 설치에 이어 인천 국제공항 항공교통관제시스템 설치도 삼성과 컨소시엄으로 하고 있다.

우주선 부품제작 장기기술개발계획인 KIP에는 현대전자 등 국내기업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 1999년에는 세종대와 함께 세종-록히드 마틴 연구소를 설립해 무인비행기에 대한 교육·연구투자를 하고 있다.

한반도의 화해무드가 한국의 국방전략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단순 무기구입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가 줄고, 그만큼 다국적 방산업체와의 협상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민수·군사용 기술의 경계가 모호해진 현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기술이전 조건 등에서 한국이 보다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됐다는 이야기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04 20:57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