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백지수표' 거절했던 에로배우 정세희

"최진실도 에로연기는 나보다 못할걸요"

다 큰 여자가 펑펑 운다. 익명의 욕설전화를 받을 때마다 끊고 나서 혼자 방에 앉아 펑펑 운다. 수많은 팬들이 있지만 마지막 싸움은 그녀 몫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수십번 인터뷰를 다녀가고 스타대접을 받는다고 해도 단번에 끝날 싸움이 아니다. 20대 미혼의 그녀를 ‘이미 인생 끝장 난 여자’로 보는 더 많은 사람들의 찬 시선을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연예인 매춘’보도에서 ‘백지수표 제의를 받았다’는 증언을 한 후엔 더 힘들어졌다. ‘네가 그랬으면 그랬지, 왜 그걸 밖으로 까발리느냐, 포르노 배우 주제에’라는 연예인들의 비난전화, 한밤중 퇴근길에 낯선 괴한들로부터 소름돋는 자동차 미행을 당한것도 세 번이나 된다.

에로배우란 그저 숨죽이고 사는 것이 제 본분이며, 자신을 감히 연예인으로 여겨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이 땅엔 많다.


“나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요”

몸값이 비싸다는건 분명 나쁘지 않은 일이다. 에로스타 정세희(27). 편당 40만원을 받던 시절의 정세희는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았다.

언론과의 인터뷰는 더더욱 없었다. 연봉 1억대에 오른 지금은 단지 돈 몇푼이 아쉬워 옷을 벗는 여자로 취급받는 일이 줄어 좋다. 얼굴값으로 팔자를 고칠 생각이었다면 예의 백지수표 한 장으로도 간단히 끝났을 일이다.

구태여 정면으로 험한 소리 들어가며 이 고생을 할 필요도 없다. 이 모두 그녀 스스로 자청했다. 현실도 아닌 영화나 방송에서 몸을 드러내고 에로연기를 하는 것이 왜 남에게 손가락질 받아야 할 일인지 아무리 분석해봐도 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탓도 없진 않죠. 가끔 처음보는 신인 여배우가 나타나서는 시간없다며 대충 빨리 찍으라고 감독에게 소리치는걸 보면 참 슬퍼집니다. 그 배우에겐 이 일이 그저 용돈벌이삼아 해보는 아르바이트에 불과한 겁니다. 계약금도 미리 받았겠다, 대충 찍고 나가 놀고 싶은거죠.

에로영화도 엄연히 연기예요. 흔히들 벗기만 하면 되지, 뭔 연기가 필요하겠냐고 하지만 그 노출을 보다 자연스럽고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연기력이 필수거든요.

그런데 제작비 문제로 대부분 신인들을 찾다보니 프로의식을 갖기가 어려운 겁니다. 저만 해도 지난날 부모님께 그 큰 고통을 드리고 친구들까지 잃어가면서까지 자존심 하나로 지켜온 일인데 신인배우들의 그런 태도를 보면 너무도 서글퍼져요.

가끔 ‘돈을 줄테니 하룻밤을 보내자’는 유혹을 뿌리치는 이유도 그거예요. 저라고 왜 돈이 아쉽지 않겠어요.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면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것들이 모두 허사가 돼요. 그런 식으로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요."


탤런트시험 낙방, 에로영화로 데뷔

” 1992년 첫 에로영화를 찍기 전까지만 해도 이 길로 올 줄 몰랐다. 부산에서 출생, 아버지는 육사를 나온 예비역 중령 출신. 2남1녀중 외동딸로 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중학교때부터 한 아동복 모델활동을 시작해 고등학교때도 패션모델로 활동했다.

그러나 꿈은 오로지 탤런트. 부산 경상전문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한 정씨는 재학중 진해군항제 벚꽃미인 진에 선발된 경력도 있다. 그러나 정작 원했던 한 방송사 탤런트 공채시험에선 고배를 마셨다. 낙심해 있던 차에 아는 선배가 소개해 준 에로영화가 첫 출연작이었다.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어찌나 들떠 있었던지 노출이 심하다고만 들었을뿐 제작이 끝나도록 에로영화인 줄도 모르고 일했다. 비디오가 완성됐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영화가 왜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않고 비디오로 먼저 나오는지 의아해할 정도였다.

사실이 알려진 후 어느날 공중파 탤런트, 아나운서, 카메라맨 시험에 합격한 친구들이 모인 동문회에 갔다가 울며 돌아왔다.

“여기 잘 난 인물 하나 나왔다. 어디 한번 그 길로 잘 나가보라”며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한 것. 그것이 오히려 오기를 불러일으켰다. 멸시를 받을 일도 아닐뿐더러 반드시 그들보다 성공하고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

부모님에겐 스스로 자백했다. 당장 통곡이 쏟아졌다. 행여 당신의 딸이 기죽을까봐 한때 교통사고로 받은 보상금까지 털어 두 아들도 제치고 제일 먼저 딸의 자가용부터 사주었던 아버지. 얼굴도 보려하지 않는 가족에게 두달이나 울며 설득한 끝에 겨우 마음을 돌렸다.

부모의 승낙은 곧 적극적인 응원으로 바뀌었다. 이왕 하는거 최고가 되라는 뒷바라지였다. 진로를 굳힌 뒤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딱히 가르쳐주는 선배가 없으니 매일같이 비디오 가게에 들러 아침부터 저녁까지 에로물만 5~6개씩 빌려봤다.

멀쩡한 처녀가 야한 비디오만 빌려가는걸 이상하게 쳐다보던 가게주인 눈초리도 아랑곳 없었다. 그 비디오는 연기 교재용이었다.

분위기와 표정, 사랑의 절정에서 내는 교성이며 입벌리는 모습까지, 한가지도 빠짐없이 체크하고 분석했다. 촬영현장에선 선배 배우들의 잔심부름을 해가며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과 상관없는 장면까지 일일이 대본에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 본 촬영은 물론 NG장면까지 낱낱이 지켜보며 실기를 익혀나갔다.

그런 시간들이 오래 쌓였을 때 ‘틀에 박힌 연기가 아니라 네 연기엔 불똥이 튄다’고 평가를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출연한 에로영화가 약 400편.

옛날 그리도 속을 태웠던 탤런트 자리도 이젠 관심밖이다. “왜냐면 에로영화안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이 가능하거든요. 말하자면 최진실은 에로연기를 못해도 정세희는 극영화를 할 수 있다면 이해가 가시겠어요?”


추악한 상처 속에서 커온 도 에로배우

애정물에 통달했다고 해서 사랑에 달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처 투성이다. 그녀의 10년 속엔 수백명의 남자가 있었다. 베드신 상대 500여명, 실제 연애 상대 50여명, 그러나 기억에 남은건 20여명 뿐이다. 나머지 30명은 왜 기억에서 삭제되었을까. 시종 밝던 그녀 표정에 갑자기 그늘이 진다. “…불쾌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녀의 남자들은 최근에 나온 그녀의 책 ‘난 이제 당당하게 벗을수 있다’에도 자세히 나와있다.

소위 ‘순결’이 깨진 건 대학시절이었다. 한창 끼와 호기심이 넘치던 시절 어느 술자리가 파한 뒤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녀가 처녀였다는 걸 안 뒤 상대의 반응은 오히려 차가왔다. 그가 다른 여학생과 동거중이었다는 사실도 며칠 뒤 우연히 듣고 알았다.

지방의 한 방송국 리포터로 활동하던 시절 한 카메라맨을 사랑했다. 그 역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유부남이란걸 알았다. 너무도 고통스럽고 서글프던 어느날 밤의 기억. 여자 후배들과 함께 살던 그녀의 자취방에 찾아온 그는 술을 마신 뒤 후배들 가운데 그에게 관심을 보이던 한 여자와 사랑을 나누었다.

그 것도 그녀와 또다른 여자후배가 나란히 누운 바로 옆 침대에서. 이튿날 잠에서 깨어난 그는 그녀를 더욱더 참담하게 만들었다. 맨정신으론 자신이 그런 짓을 했을리 없으니 분명 전날밤 그녀가 술에 약을 타 마시게 했을거라며 억지를 부린 것. 그 길로 단호히 그와 결별했다.

자상한 사랑으로 찾아왔다가 어느때부턴가 태도가 돌변하더니 결국 자신이 없는 사이 집을 찾아와 역시 함께 살고 있던 한 후배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도 뻔뻔스레 싱글거리며 시침을 떼고 집에 드나들던 한 이혼남.

또 자기 부인과의 정사장면을 찍은 비디오테입까지 들고와 ‘당신에게 더 흥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며 보기를 강요하던, 재즈연주가 출신의 어느 섹스중독자.


인터넷 성인방송 진행자 중 최고 몸값

그렇게 그렇게 그녀는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다. 어떻게 보면 사랑에 영악하지 못한 탓이다. 좋은 남자에 대한 기준도 없다. 이제껏 돈이나 외모를 보고 남자를 선택해 본 일도 없다.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들에겐 예나 지금이나 쉽게 끌린다. 보다 못한 친구들은 “네 애인들은 왜 그리 돈 없고 꾀죄죄한 사람들 뿐이냐”고 핀잔을 준다. “그러니까 자꾸 너만 다친다. 이젠 제발 재력 좀 보고 선택하라”는 훈계까지 한다.

현재 그녀에겐 애인이 없다. 외롭긴 하지만 당분간 혼자 버티기로 했다. 또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에로연기를 그만두라고 말할까봐 걱정스럽다. 사랑하는 이상 자신도 그의 말을 따르고 싶어질 것이고 그렇다고 정말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금은 외로운 쪽이 낫다. 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며칠전 속이 아파 병원을 찾은 그녀에게 의사는 당장 입원하라고 했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그녀는 그저 한약이며 영양제 같은 것만 한보따리 가방속에 넣고 다니며 버티고 있다. 건강이 나빠진건 특히 낮밤이 뒤바뀐 생활 탓이 크다.

남들이 잘 때 깨어돌아다니고 일어날 때 비로소 잠이 든다. 아침 6시경 취침. 오후1~2시쯤 일어나 집안 청소며 강아지와 금붕어 밥에다 화초 물주는 일까지 대충 끝내고 나면 3시. 영어학원에 가기위해 집을 나선다. 일 때문에 출석일보다 결석일이 훨씬 많지만 어쨌든 포기하진 않는다.

낮과 저녁은 일 문제로 종일 쫓아다니다가 새벽 1시면 강남의 한 인터넷 방송국으로 향한다.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성인방송 엔터채널(http//www.enterchannel.com)의 한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기 때문이다.

국내 에로배우중 최고의 몸값으로 계약이 체결된 곳도 이곳이다. 세트 한켠에 놓인 모니터에 올라오는 실시간 대화를 지켜보며 유저들(인터넷 접속이용자)과 밀거니 당기거니 얘기를 풀어가며 아찔한 노출을 벌인다.

채팅에 참여하는 유저들 수만 600여명. 처음보는 사람은 정신을 못차릴 만큼 열기가 뜨겁다. 동종 프로그램의 기록중 최고다. 방송이 끝나는 새벽 4시에 퇴근, 집에 와서도 아침 6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든다. 바로 며칠전까지 내내 그렇게 살았다.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여자”

그러나 이 일은 7월1일자로 현재 잠정 휴업중이다. 방송국측의 양해로 당분간 휴가를 받은 셈이다. 한달쯤 쉬며 차후의 계획을 다시 정리할 생각이다.

성인연극 출연이며 누드사진집 출판 제의, 그녀가 마음만 정한다면 당장이라도 시작하고 싶다는 영화 시나리오도 세 작품이나 들어와 있다. 나이먹는 일조차 그리 불안스러울게 없다.

2년전부터 장래를 생각해왔다. 언젠가 직접 에로영화를 제작하고 싶다. 어설픈 신인 감독보다는 차라리 잘 만들 자신이 있다. 10년 가까이 그녀는 현장의 배우였다.

‘스스로 인생을 망친 여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하는 여자임을 앞으로도 두고두고 보여줄 것이다. 인정해 줄 관객이 얼마이든 그녀가 준비한 최종 대본의 결말은 그렇다.

정영주 자유기고자

김명원 사진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0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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