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시대 꽃 피웠던 대가들

무협소설은 사마천의 ‘사기’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이후 당대의 전기소설 ‘규염객전’‘홍선녀전’‘섭은낭전’ 등에서 소설적 형식을 갖게 됐고, 송대의 ‘화본’과 명대의 ‘수호전’에서 완성된 구조를 보인다.

청대 중엽 이후 무협소설은 ‘금병매’‘홍루몽’ 등의 연정소설, ‘유림외사’‘노잔유기’ 등의 풍자소설과 함께 중국 평민문학의 한 장르로 확고히 자리잡는다. 1920년대 평강 불초생과 환주루주 이수민에 의해 새롭게 근대 무협소설의 형태를 취하게 되고 1950년대 들어서 비로소 신무협파 소설가인 홍콩의 김용과 양우생, 대만의 와룡생과 고룡 등에 의해 꽃을 피우게 된다.


200만부 팔린 ‘소설 영웅문’

역대 무협작가 중 최고봉은 단연 김용이다. 신의 경지에 이른 문필가라는 뜻의 ‘신필’(神筆)이라는 필명을 가진 그는 무협지의 교과서라 불리는 ‘사조영웅전’이라는 명작을 남겼다.

국내에서 ‘소설 영웅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이 작품은 송·원·요·금의 여러 국가가 중원의 패권을 놓고 각축을 벌였던 남송 말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200만부가 팔려 당시 쇠퇴기를 맞던 국내 무협지 시장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이 작품에는 남송 거란 여진 몽고 서하 등 여러 민족과 징기스칸 완안열 전진칠자 구처기 등의 실존 인물을 등장시켜 작품의 품위와 사실감을 높였다. 무공에 대한 설명도 사실에 근거해 묘사함으로써 흥미를 배가시켰다.

그의 작품 중 최고 걸작으로는 청나라 강희제 시대에 주인공 위소보가 엮어내는 해학과 기지를 다룬 ‘녹정기’를 들 수 있다. 교활한 행동과 넘치는 기지로 청나라 황궁에 들어가 미녀들을 거느리는 창녀의 아들 위소보가 반청복명의 비밀결사 천지회와 친구 강희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연출하는 것을 주내용인 이 작품은 그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이외에 여자를 빼앗기 위해 남자를 모함하고, 제자가 사부를 죽이고, 딸을 산 채로 관 속에 넣고, 아내와 자식을 살해하는 윤리 파괴와 추악한 인간상을 다룬 ‘연성결’도 큰 인기를 모았다. 김용의 탁월한 구성과 형식은 단순히 무협작가의 경지를 뛰어넘어 모든 문학에서 응용되고 있다.


현대소설 수준에까지 올랐던 무협지

한국 무협소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가는 대만 출신의 와룡생이다. 그의 ‘군협지’‘무유지’‘천애기’‘야적’‘무명소’ 등은 국내에 번역 소개돼 열렬한 무협소설 독자층을 만들어 냈다.

국내에서 읽힌 대다수 무협지가 와룡생의 아류인 대만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룡생은 홍콩계인 김용과 달리 비역사적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중국 문학사에서 평민 통속문학으로 자리잡은 무협소설이 대만 작가에 의해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것으로 변해버렸다.

그의 대표작중 하나인 ‘무유지’를 보면 명악파가 중원무림을 통일하려고 구파일방을 적대시하기 때문에 사(邪)파가 되고 명악파에 반대하는 세력은 무조건 정(正)파가 된다. 무리한 논리적 비약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우리 독자에게 더 먹힌 것은 당시 한국 사회가 현실도피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와룡생은 여러 면에서 김용에 뒤졌지만 무공과 기연, 애정 묘사에서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그런 까닭에 와룡생은 장졔스(蔣介石) 정부의 문화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이데올로기 제공자로서도 한몫을 할 수 있었다.

‘유성호접검’‘비도탈명’‘절대쌍교’ 등을 저술한 고룡도 빼놓을 수 없다. 고룡은 와룡생에 이어 대만 무협소설을 이끌었는데 통속적 소재가 아닌, 인간의 고독과 허무 의식을 부각, 무협소설을 현대소설의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 김용과 함께 홍콩에서 무협 역사소설을 집필한 양우생도 빼놓을 수 없다. 양우생은 부패한 조정에 대항하는 협객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흥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참신한 주제로 내용을 첨가해 역사 소설적 요소의 틀을 잡았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는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1 20:40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