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관련 부처 '더 크게 더 세게'

국정원 3차장 신설, 통일부 조직확대 움직임

대북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의 조직확대 바람이 거세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대북 정책을 총괄하는 제3차장(차관급)을 신설, 김보현 국장을 승진 발령했고, 통일부는 조직확대 방안을 행정자치부와 협의중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적 추진과 후속조치에 발맞춰 이뤄지는 이번 조직확대는 일단 대북 적응력을 높인다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책 수요가 많아졌다는 이유로 민첩하게 조직을 확대, ‘작은 정부’원칙에 역행하는 즉자적 대응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나오고 있다.


국정원, 해외·국내·북한 3파트로

정부의 대북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임동원 국정원장이 3차장 직제를 신설한 것은 향후 대북 정책의 지향점과 밀접한 함수관계를 맺고 있다.

대북 정책을 실무적으로 총괄하게 될 3차장 신설로 국정원은 해외 파트(1차장), 국내 파트(2차장), 북한 파트 등으로 3분됐다. 3차장 산하에는 종전에 1차장 산하였던 대북전략국과 북한정보수집국 등 2개국이 배치됐다.

이로써 임 원장의 대북 정책은 보다 강한 추진력을 얻게 됐고 그 추진력은 현재의 남북간 화해협력 분위기를 고양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정확하고 광범위한 대북 정보의 수집 필요성이 제기되고 오차없는 전략수립이 요구되어 이같이 직제를 신설했다”고 말한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은 이러한 기대를 함축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대북 비공개접촉 등을 주도해온 국가정보원의 업무는 현 조직체계로 볼 때 버거웠다는 게 국정원 관계자의 말이다. 국정원이 1999년 베이징 차관급회담을 낳았던 6·3 베이징 접촉, 남북 정상회담을 낳았던 싱가포르 및 베이징 접촉 등 현정부 들어 진행된 굵직굵직한 대북 접촉을 주도했던 점을 상기하면 국정원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번 개편에는 대북 정책의 수요 폭증 못지않게 임 원장의 구상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정설이다. 지난해 12월 국정원장에 취임한 임 원장은 3차장 또는 특보 신설을 통한 대북 업무의 단일 지휘체제 확립 필요성을 밝혀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중 정부 출범 2년을 맞아 대북 정책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자신의 ‘주특기’인 대북 정책에서 열매를 거두기 위한 포석이었다. 김 대통령이 임 원장을 국정원에 배치한 배경, 김 대통령의 대북 정책 방향에 비춰보면 이는 당연한 것일 수 있다.

결국 임 원장의 기대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현실 조건과 맞아떨어지면서 3차장 직제의 신설로 이어진 셈이다.

물론 이같은 개편은 인사권과 예산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국정원의 독특한 지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국정원법에 따라 조직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국정원은 대통령의 결재만 있으면 ‘특정직’인 국정원 직원을 폭넓게 조정할 수 있다.


“작은정부 원칙에 역행” 비판도

한편 국정원은 현정부 출범 초 국정원 개혁 차원에서 진행된 3차장제 폐지를 백지화한 이번 조치가 ‘작은 정부’원칙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현실 여건을 들어 반박하고 있다. 과거 대북 업무가 폭증했던 당시 조직개편으로 정책수요를 관리해온 사례도 거론한다.

남북 고위급회담이 진행돼 대북 업무가 폭주했던 1990년대 초 차관급인특보를 운영해온 사례가 대표적 예시다.

당시 이동복 특보가 대북 정책 업무를 조정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반론에 불구하고 “통일부가 대북 정책의 중심”이라는 김 대통령의 언급은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어느 정도 퇴색했다. 국정원이 남북문제를 보다 주도할 것이고 주무부서인 통일부는 국정원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아울러 조직개편의 후속조치로 단행된 국정원 인사에 대해서도 뒷얘기가 무성하다. 3차장으로 승진한 김보현 대북전략국장과 대북전략국장으로 승진한 S모씨에 관한 얘기다.

신임 김 차장은 지난해 베이징 차관급회담을 낳았던 베이징 접촉에서 북한의 전금철을 상대했던 대북 업무의 베테랑이다. 그는 또 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한 막후 접촉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며 남북 정상회담 직전 임 원장과 함께 방북, 북측과 남북 공동선언에 관해 사전조율을 맡았던 인물이다.

따라서 김 차장의 이번 승진에서는 그간의 공적과 임 원장과의 호흡이 크게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신임 S국장에 관한 뒷얘기는 구설수에 가깝다. S씨는 지난해 말 징계를 받았던 전력이 있어 이번 승진을 놓고 내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S씨가 승진한 데에는 총풍사건 등으로 대북 전문가들이 국정원에서 상당수 퇴출돼 대북협상 전문가가 그리 많지 않은 저간의 사정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임동원 국정원장 입김 강화

한편 국정원 조직개편과 맞물려 통일부에서도 조직확대의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다. 향후 분야별로 남북회담이 폭증할 것에 대비해 통일부 산하 남북회담사무국에 2개 과, 교류협력국 및 인도지원국에 각각 1개 과를 증설하고 61명의 직원을 늘이겠다는 게 통일부의 복안이다.

통일부는 1998년 정부조직개편시 남북관계 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채 획일적으로 통일부 조직을 축소한 것부터 잘못됐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화재가 없다고 해서 소방서를 없앨 수 없듯이 당장의 효율만을 잣대로 조직을 자른 것 자체가 단견이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남북공동위 가동을 염두에 두고 마련한 남북회담사무국을 대폭 축소해 남북 정상회담 준비에 애를 먹었던 사례를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통일부의 조직개편은 최근 불거진 박재규 장관의 잇따른 설화와 양영식 차관의 자질문제와 맞물려 어떠한 모양새로 귀착될 지는 오리무중이다. 장·차관의 힘이 잔뜩 빠진 상태에서 조직확대가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 관측이 부쩍 일고 있다.

대북정책 전담 부처의 조직확대 기류는 ‘정상회담 특수’에 따른 대응으로 평가된다. 또 대북 정책의 실세인 임동원 국정원장의 입김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책추진의 단기적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이뤄진 조직개편이 장기적 안목에서의 효율, ‘작은 정부’ 원칙과 어떤 조화를 이룰지는 향후 대북 정책의 성패와 맞물려 평가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이영섭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1 20:45


이영섭 정치부 youn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