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세상읽기] 거짓말과 검찰과 프랑스언론

“음란물이 아니다.” 6월30일 검찰은 이름도 긴 ‘음란폭력성 조장매체 대책시민협의회’(음대협)가 고발한, 영화 ‘거짓말’의 장선우 감독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이 내세운 근거는 대개 4가지로 요약된다.

“소설가 장정일씨의 원작보다 표현, 내용이 상당히 완화됐다. 유사 다큐멘터리 촬영기법 등을 통해 관객의 영화몰입을 차단했다. 성을 통한 세대간의 권력관계 비판이라는 주제 아래 실제 성년인 주인공을 미성년으로 분(粉)하게 했다. 국내에 상영된 여타 영화와 비교해 표현이 더 음란하지 않다.”

검찰은 음대협이 자료로 제출한 ‘거짓말’의 불법복제물이 아닌,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두 차례나 등급보류 끝에 17분이나 삭제한 것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삭제되지 않은 해외수출판의 경우는 해당국가에서 음란성 여부를 판단할 사안이라고 피해갔다.

검찰의 설명은 두 가지 점에서 흥미롭다. 하나는 음란성 여부를 그 표현 자체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성을 통한 권력관계의 비판’이란 설명이 그렇다. 예술성과 연관지어 판단했다는 얘기다. 또하나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판단을 존중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다수 관객의 판단을 존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검찰의 발표가 나가자 영화인들은 마치 ‘거짓말’이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것처럼 이야기했다. ‘거짓말 사건’ 역시 도덕이란 이름 아래 표현의 자유와 예술성을 제한하려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검찰의 판단은 지금 사회분위기나 가치판단으로 볼때 ‘거짓말’이 음란물은 아니라는 사실의 확인일 뿐이지 ‘거짓말’이 예술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많은 영화인이나 관객 역시 ‘거짓말’이 예술작품이기에 상영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비록 3류 영화일망정 소비자가 있으니 유통 자체를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검찰의 발표가 있은 일주일 후인 7월5일 프랑스 파리에서 ‘거짓말’이 개봉됐다. 그리고 같은 날 르몽드 지는 장선우 감독과 영화에 대한 칭찬을 잔뜩 늘어놓았다.

“극한을 달리는 영화작가”, “비판적이고 극단적이며 동시에 부드러운 ‘사랑의 꿈’”, “작품 전체에 걸쳐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독특하고 서정적 매력이 느껴진다”는 등등. 우연인지는 몰라도 같은 날 ‘처녀들의 저녁식사’도 개봉됐다. 진보적 신문인 리베라시옹도 이 두 영화에 대해 언급했다. “섹스가 정략이 됐다. 확실한 도발의 양상을 보이는 영화며 그 형식은 가장 현대적 효과로 치장돼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거짓말’이 한국의 권위주의적 가치관을 비웃으면서 해외에서 그 숨은 예술성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 마치 베니스영화제 본선에 진출했으니 우수한 예술영화라는 논리와 같은 것은 아닐까.

혹시 그때의 어느 외국 영화평론가처럼 동양의 괴상한 성적 묘사에 대해 보이는 호기심은 아닐까. 이들 신문의 글을 보면 그런 의심을 지울 수 없다.

“10대 소녀와 40대 중년 남성의 격렬한 가학·피학적 육체적 사랑을 매우 정화하고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르 몽드) “그야말로 포르노에 버금간다. 1시간55분 동안 18세 여고생과 20년 연상인 화가가 짝을 이룬 익명의 커플이 호텔방에서 쾌락의 갈증을 채우는 것을 실컷 보여준다. 가히 혁명적 외설적 상황이지만 쾌락은 정략적일 수 없으며 항상 새롭다.”(리베라시옹)

‘거짓말’은 포르노가 아니듯 그렇다고 대단한 예술영화도 아니다. 이미 관객이 평가했다. 이를 무시하고 검찰의 결정을 아전인수로 해석하거나 해외의 호기심 차원의 관심을 침소봉대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거짓말’의 소재 못지않은 센세이서널리즘이다. 영화는 관객이 가장 잘 안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0/07/1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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