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보양식] 잘 먹은 음식 '열 보약' 안부럽다

“이만한 스태미너식 어디 있나요. 양복 입고 땀 뻘뻘 흘려가며 삼계탕과 씨름하는 것 보단 기분도 한결 상쾌하고 맛도 좋아요.”

초복(初伏)을 앞둔 7월 초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인도음식 전문 레스토랑. 말쑥한 정장차림을 한 안재만(30·신라호텔 홍보실 대리)씨는 이날도 단골 ‘여름 보양메뉴’를 주문했다. 인도의 대표적 닭고기 요리 ‘탄두리 치킨(Tandoori Chicken)’(1인분 1만5,000원). 통닭을 플레인 요구르트에 푹 절였다가 갖가지 매콤한 향신료를 넣어 인도식 화덕에 구워낸 음식이다.

“현란한 인도 향신료가 매력적이죠. 얼큰한 수프 하나만 곁들인다면 국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한테도 여름 보양식으론 안성맞춤입니다. 무엇보다 색다른 맛을 경험해보는 재미가 있잖아요.”


신세대, 낯선 보양식 찾아 ‘맛 기행'

푹푹 찌는 복날엔 아시안, 또는 유러피안 레스토랑에서 원기를 보충한다? 유행에 민감한 요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선 전혀 이상한 풍경이 아니다. 더위 이기는 음식, 사철탕이나 삼계탕이 전부는 아니다.

신세대들의 변화무쌍한 입맛은 보양식에서도 무언가 새롭고 낯선 것을 추구한다.

호텔 식당가나 일반 레스토랑들도 이들의 변덕스런 입맛을 따라잡기 위해 올여름 이색 보양메뉴들을 앞다퉈 선보이며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더위에 지친 식욕도 돋우고 영양도 보충해줄만한 먹거리, 어떤 것들이 있나. 올여름을 건강하게 나게해줄 보양식을 찾아 맛기행을 떠나보자.

‘이열치열(以熱治熱)’을 여름철 섭생법의 으뜸으로 치고 있는 한국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철탕과 삼계탕, 추어탕, 양곰탕, 육개장 등을 보양식으로 즐기고 있다. 이들 음식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더운 기운을 갖고 있는 재료를 사용하고, 뜨거운 국물을 곁들인다는 것.

영양학적으로는 하나같이 ‘고단백’음식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은 “여름은 땀으로 인해 다량의 열량이 빠져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체력소모가 많아진다”며 “전통적인 보양식은 풍부한 단백질로 (땀으로 빠져나간) 영양을 보충해주고, 더운 성질의 음식을 체내에 공급해줌으로써 더위를 덜 느끼게 해주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한 여름 무더위 속에서 땀 뻘뻘 흘리며 먹는 탕 한그릇에도 다 과학적인 이유와 원리가 있는 것이다.


한국 탕, 일본 장어, 중국 오리 등

일본에선 ‘검정색’ 음식이 스태미너에 좋다는 게 오랜 속설이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에는 메기나 장어, 가막조개, 소라 같은 검정색 음식이 보양메뉴로 대접받는다.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뱀장어(일어로 우나기). 비타민A가 일반 생선보다 100배 정도 많은 장어는 남성의 정력증강에 특히 효험이 높은 것으로 일본인들에게 알려져 있으며 달콤한 간장소스를 발라 구워먹기도 하고 초밥에도 얹어 먹는다.

일본인들은 유난히 덥고 습한 여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해 우리의 복날에 해당하는 토왕일(土王日)에는 아침부터 뱀장어 음식점 앞에 길게 줄을 설 정도라고 한다.

국내에서도 복날이면 주요 호텔 일식당마다 우나기 야끼(장어구이)나 우나기 스시(장어초밥), 우나기 덴뿌라(장어튀김), 우나기 스노모노(장어초회), 우나기 돈부리(장어덮밥), 우나기 소바막끼(장어모밀국수 김말이)…등등 장어를 활용한 각종 보양요리들이 특선메뉴로 각광받고 있다.

중국 요리 중엔 잉어 부레와 사슴 힘줄을 넣은 ‘불도장(佛跳墻)’이 보신식품으로 꼽힌다. 신라호텔 중식당 ‘팔선’의 대표메뉴이기도 한 불도장은 토기에 두 재료(잉어부레·사슴힘줄)에다 동충하초, 상어지느러미, 해삼, 송이버섯, 전복 따위를 담아 밀폐한 뒤 5∼6시간 푹 끓여내 국물과 건더기를 함께 먹는다.

이름은 양쯔강 남쪽지방을 시찰하던 청나라 황제가 “참선하다가도 냄새를 맡으면 담장을 뛰어넘을 것”이라 말했다 해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의 보양식 하면 오리요리의 대명사로 통하는 ‘베이징덕’을 빼놓을 수 없다. 바삭바삭하게 구워진 오리 껍질을 얇은 전병에 고기와 함께 싸서 먹는 맛이 그만인 베이징덕은 재료로 쓰이는 오리의 사육법이 특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알에서 부화한 뒤 50일 정도가 지난 오리를 좁고 어두운 공간에 집어넣어 강제로 먹이를 준다. 이렇게 보름정도 사육하면 오리는 영양과잉과 운동부족으로 몸 전체에 지방이 오르면서 처음보다 2배 이상 뚱뚱해지는 데 이 오리의 깃털과 물갈퀴를 떼내고 내장을 꺼내 껍질과 살 사이에 공기를 넣어 부풀어오르게 한 뒤 표면에 엿과 붉은 효모를 발라 구워낸 것이 바로 베이징덕이다.


지나친 고단백식은 영양 불균형 초래

‘토마토와 해산물을 열심히 먹으면 70세에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믿는이탈리아인들은 갑오징어의 먹물을 여름철 보신식품으로 애용한다.

생쌀에 오징어 먹물과 새우, 한치, 올리브유 등을 넣어 볶다가 파르마산 치즈를 얹어 내는 리조토요리를 즐겨 먹으며, 오징어 먹물죽을 쑤어 해장용으로 먹기도 한다. 정력증강과 간장 보호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오징어 먹물 요리(먹물 파스타·먹물 리조토 등)는 요즘 국내 웬만한 이탈리아 식당에만 가도 흔히 접할 수 있다.

서양의 보양식 중엔 ‘자라’요리도 있다. 필수아미노산과 비타민 B, 지방산, 미네랄 등을 풍부하게 함유한 강강제로 널리 알려진 자라는 서양에선 주로 수프를 만들 때 활용된다. 자라를 푹 삶아 우려낸 육수에 버터 등을 섞어 맛을 낸 자라수프(혹은 자라콘소메)는 최상급 코스요리의 품격을 높여주는 메뉴로 대접받고 있다.

보양식도 나라에 따라, 생활양식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먹는 음식이 정말 내 몸에 ‘보양(保養)’이 되느냐이다.

스태미너를 보충한다고 지나치게 고단백 위주로 식사하다보면 오히려 영양불균형으로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만 명심한다면 누구나 건강하게 여름을 날 수 있을 것이다.

생활과학부 변형섭기자

입력시간 2000/07/11 21:51


생활과학부 변형섭 hispeed@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