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호' 멕시코, 개혁 소용돌이 속으로

“오늘은 변화를 바라는 멕시코 국민이 승리한 역사적인 날입니다. 71년 만에 이룬 평화적 정권교체를 발판 삼아 위대한 멕시코를 건설하는 데 매진합시다.”

7월 2일 밤 멕시코 신임 대통령으로 뽑힌 국민행동당(PAN)의 비센테 폭스 케사다(58)는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몰려든 수 만명의 지지자들을 향해 이같이 호소했다.

‘혹시나’하는 기대 속에 조용히 개표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멕시코 국민은 그의 당선이 확정되자 모두 거리로 나와 “폭스 만세! 멕시코 만세!”를 연호하며 축제의 밤을 보냈다.

비단 멕시코 국민만이 아니었다. 인접국인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언론들이 일제히 “멕시코, 71년 만에 정권교체” “코카콜라 영업사원, 제도혁명당(PRI) 71년 천하 끝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타전했다.


멕시코 국민에 흼아 심어준 폭스 당선자

폭스의 당선이 감동적인 것은 그 역사적 의미 때문만은 아니다. 가난한 농업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나 코카콜라사 영업사원으로 출발, 코카콜라 멕시코 지사장과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에까지 오른 그의 인생 역정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사람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의 성공 스토리는 지난 수 십 년간 독재와 인권 탄압, 반복되는 경제위기에 시달려온 멕시코 국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외신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폭스는 1942년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농업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를 따라 과나화토주로 이주한 그는 이후 농촌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청년기에 이르러 그는 사립 명문 이베로 아메리카 대학에 진학, 기업경영학을 전공한 뒤 코카콜라 멕시코 지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가장 말단직인 영업사원으로 출발했으나 뛰어난 영업 및 고객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한 끝에 멕시코 지사장에까지 올랐다.


주지사 시절 행정에 비즈니스 마인도 도입

40대 중반에 접어든 1987년 국민행동당(PAN) 입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그는 회사원 생활때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행정능력과 관운을 보이며 성장을 거듭했다. 정계 입문 1년 만에 과나화토주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며 1995년에는 이 주의 민선 주지사에 선출됐다.

주지사 시절 그는 코카콜라 경영 경험을 살려 행정에 ‘비즈니스 마인드’를 도입했다. 주정부의 기능을 대폭 축소하고 세제 개선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외자유치에 나섰다. 그 결과 낙후 지역이었던 과나화토주는 멕시코의 31개 주 가운데 경제발전 순위 5위에 오르는 급성장을 이어갔다.

지난해 말 공식적으로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뒤에도 그의 성공가도는 계속됐다. 부정부패 척결과 빈곤 추방, 실업해소 등을 공약하며 선거전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집권 PRI의 아성에 도전할 상대가 못될 것처럼 보였다.

폭스의 저력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대선 1차 TV토론회가 열린 지난 4월말부터. 그는 침착한 말투와 부드러운 인상으로 상대 후보들의 맹공을 받아넘기면서 PRI의 프란시스코 라바스티다 오초아 후보의 동성애 전력과 소심함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멕시코 일간지 레포르마의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3월말까지 라바스티다 후보에 10%포인트 이상 뒤쳐졌던 폭스는 1차 TV토론회 이후 그를 5%포인트 차로 앞서 나갔다.

선거에 임박해 외국에서 선거자금을 끌어들였다거나 어마어마한 갑부라는 루머로 수세에 몰리기도 했지만 와이셔츠에 가죽 부츠를 신은 카우보이 차림으로 유세에 나서는 등 파격적인 선거운동을 통해 젊은이와 여성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특히 선거운동 기간 내내 평화적인 정권교체와 현 세디요 정부 정책 계승을 표방, 오랜 독재정치에 따른 멕시코 국민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잠재우고 해외 투자자의 신뢰도 획득했다.

1982년과 88년, 94년 등 대선이 치러진 6년마다 어김없이 정치혼란과 경제위기에 빠졌던 멕시코가 이번 선거 이후에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폭스의 사전포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위대한 멕시코 건설' 첫 삽

‘위대한 멕시코 건설’이라는 원대한 포부 실현을 위한 폭스의 ‘탑 쌓기’는 그가 유효투표의 45%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첫 삽을 뜬 셈이다. 이제 바탕을 좀 더 튼튼하게 다지고 멋진 탑신과 기단을 쌓는 일이 남았다.

그러나 첫 삽을 뜨기까지 무려 70여 년의 세월이 걸렸듯이 앞으로 폭스가 헤쳐나가야 할 길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차기 정부와 정치·경제·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폭스는 우선 현 세디요 대통령이 지난 5년여간 다져놓은 경제의 안정기조를 유지, 발전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94년 페소화(貨) 가치 폭락에 따른 ‘데킬라 위기’의 와중에 집권한 세디요 대통령은 외국인 투자 유치와 국가 이미지 제고를 목표로 초긴축 재정정책을 실행하면서 경제성장은 연 5%대로 올라섰고 50%에 달했던 인플레율은 10%대로 떨어졌다.


북미공동시장 구성으로 경제난 타개

폭스는 이 과정에서 심화된 빈부격차 문제와 18%(불완전 고용 포함)에 달하는 고(高)실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와 관련, 폭스는 당선 직후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간에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유럽연합(EU)에 버금가는 수준의 북미공동시장(North American Common Market)으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북미 3국 가운데 가장 뒤떨어진 멕시코를 단일시장이라는 큰 틀 속에 편입시킴으로써 ‘상향 평준화’효과를 노리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또 이번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도시-엘리트-중산층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할 현실적인 과제도 안고 있다.

총 유권자 5,900만명의 30%를 차지하는 이들은 기대치와 실제 생활수준의 괴리현상으로 극심한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말이 중산층이지 이들의 주당 평균소득은 57달러(6만4000원)에 불과하다. 높은 교육수준과 세계화된 시각으로 미국 등 선진국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뻔히 아는 이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적으로는 군부나 전 독재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튼튼한 권력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1차적인 과제. 71년 동안 집권한 정권은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없는 법이다. 군부와 사법부, 경찰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기관은 PRI 인맥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는 당선 이후 세디요 대통령을 만나 여·야 연립내각 구성을 제안하는 등 ‘화합의 정치’를 강조하며 “마녀사냥 식의 사정은 없다”고 못박았지만 미국연방수사국(FBI)을 모델로 한 국가투명위원회(NTC) 설립방침을 밝혀 대대적인 사정이 뒤따를 것임을 암시했다.

이에 따라 94년 대선 직전 발생한 정치인 암살사건과 카를로스 살리나스 전 정권의 부정부패, 300~500명의 사망자와 1,000~2,500명의 부상자를 낸 틀라텔롤코 광장 학살사건 등에 대한 재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폭스의 58년 인생 역정은 하나의 감동적인 드라마다. 지금까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성공을 이뤄온 그가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져온 멕시코의 정치 개혁과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남석 문화일보 국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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