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타운은 지금 갱들의 전쟁터

LA 한인타운이 술렁이고 있다. 지난 1997년 모래시계파의 와해 이후 잠잠했던 한인타운의 밤거리는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갱들의 전쟁 때문에 뒤숭숭하기까지 하다.

유흥업소와 ‘보호관계’를 맺고 있는 조직폭력배와 자동소총까지 들고 대로에서 설쳐대는 스트릿 갱은 법망의 사각지대에서 무서운 속도로 뿌리를 뻗어가고 있다. 또다시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는 LA 한인타운의 폭력 세계, 어제와 오늘을 살펴본다. <편집사주>

한인 1.5, 2세대 주축 폭력조직, 피 부르는 영역 다툼

지난 6월30일 새벽 1시55분(이하 LA 현지시간). 한인타운에서도 교통량이 가장 많은 길목 중 하나인 8가와 웨스턴애비뉴 교차로에서 10여발의 자동소총 소리가 밤의 정적을 갈랐다.

스무살 전후의 괴한 3명이 탄 승용차가 창문을 내린 채 신호대기에 서 있던 흰색 벤츠 C280의 오른쪽으로 다가가 AK-47 또는 M-16을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 자동소총을 꺼내 벤츠에 타고 있던 20대 중반의 한인청년 4명에게 총격을 가했다. 순식간에 총알세례를 받은 청년들은 황급히 몸을 피하려했지만 좁은 공간에서 무자비하게 날아오는 총탄을 피할 재간이 없었다.

결국 운전석 옆자리에 타고 있던 이모(25)씨가 목과 어깨에 총을 맞고 숨졌고 운전을 하고 있던 공모(27)씨, 뒷자리에 타고 있던 이모(25)씨는 팔에 총상을 입었다. 총격을 가한 괴한들은 유유히 웨스턴애비뉴를 따라 한인타운 북쪽 방향으로 달아났다.


총격 난무하는 LA 한인타운

LA경찰국(LAPD)은 이 사건을 우발적 총격사건이 아니라 사건발생 이틀전 한인타운내 한 유흥업소에서 피해자들과 패싸움을 벌였던 한인 갱단원이 보복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저지른 범죄로 보고 있다.

경찰 소식통들은 “피해자들이 28일 밤 한인 갱단의 행동대장격인 인물을 폭행한 데 대한 앙갚음을 하려던 차에 사건당일 현장 인근의 한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던 이들을 발견하고 범행을 계획한 것”이라고 전했다.

LAPD는 피해자들이 진술한 범인에 대한 인상착의를 바탕으로 사건발생 5일만인 지난 7월5일 범인 중 하나인 이모(20)씨를 한인타운내 한 아파트에서 검거했으며 다른 2명의 용의자에 대해서도 조만간 검거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LAPD는 범인들이 한인 조직폭력배의 사주를 받고 있는 LA 근교 오렌지카운티의 ‘가든그로브 보이스’(GG Boys) 단원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꼭 두달전인 5월6일 자정께 웨스턴과 멜로즈 애비뉴 인근에 있는 ‘XO 노래방’ 앞에서는 월남계 또는 중국계로 보이는 갱단원 10여명이 업소를 찾아오는 한인 고객에게 무작정 시비를 걸고 있었다.

이유는 이 업소가 미성년자로 보이는 이들의 입장을 거절했기 때문. 때마침 친구들과 함께 이 노래방에 찾아온 권모(20)군 일행은 무작정 욕설을 해대는 이들과 시비가 붙었으나 일단 몸싸움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권군 일행이 업소에 들어가기전 주차장에서 잠시 서성일 때 차를 타고 떠나던 갱들은 권군 등을 향해 수발의 총격을 가했다. 이들이 쏜 총알은 불행히도 권군의 상체를 관통, 권군은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결국 목숨을 잃었다.


1970년대 말 ‘KK’이후 날로 조직화

LA에 조직폭력배들이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부터. 지금은 이미 해체되어 없어진 ‘코리안 킬러스’(KK)가 그 원조다.

이후 ‘버거킹’이라는 조직도 생겨났으나 세력이 ‘코리안 킬러스’에는 미치지 못했다. 당시 조직원들은 살인, 강도 납치 등 흉악범죄를 저지르기 보다는 권총과 칼을 들고 세과시 또는 영토다툼을 하기 위해 라이벌 조직과 대결을 벌이는 수준이었다.

구성원도 대부분 한국서 이민온지 얼마 안되는 1세대들이었다. 미국 문화와 언어에 어두웠던 탓에 활동영역이 좁은 편이었고 흉폭하고 공격적이라기 보다는 자기방어적 성격이 짙었다. ‘코리안 킬러스’ 등은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나이가 30대에 접어든 주축 단원이 각자 살 길을 찾아 조직을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해체됐다.

당시 한인타운에서 이름을 날리던 조직원들은 지금은 중년의 가장이 되어 자동차수리점, 선물가게, 봉제공장 등을 운영하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인 폭력조직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새대교체가 이뤄졌다. 1세대 보다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와 두 나라 언어와 문화에 모두 익숙한 1.5세대와 2세대들이 조직의 주축을 이루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한인 갱의 범죄는 주로 학교 주변에서 일어나는 교우간의 납치, 폭행이 주류를 이뤘다. 당시 생성돼 나름대로의 세력을 형성한 그룹은 ‘코리안 킬러스’의 후예를 자청한 ‘LGKK’(Last Generation Korean Killers)와 ‘CYS’(Korean Crazies), ‘KPB’(Korean Playboys)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어느새 룸살롱 등 유흥업소들을 끼고 활동하거나 또래끼리 몰려다니면서 세과시를 위해 총싸움을 벌이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고 중국계를 주축으로 결성된 ‘와칭’이나 아시안 청소년의 연합 형태인 ‘아시안 보이스’ 등과도 한인타운과 중국 타운, 베트남 타운을 오가며 주행총격(Drive-by-shooting)을 주거니받거니 했다.

당시 한인 갱단의 두목은 10대 후반이었고 단원들은 10대 중반으로서 중학교 1학년 나이인 13살짜리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동질성을 강조하기 위해 온몸에 갱의 상징인 문신을 새겼고 LA 근교의 산악지대에서 사격연습을 하는 등 매우 조직적 성격을 띄었다.


모래시계파 등장으로 갱단 급속 팽창

밤거리 이곳저곳에서 날뛰는 청소년 갱들로 긴장감이 나돌던 지난 1995년 SBS-TV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드라마 ‘모래시계’의 극중 인물을 본따 만든 ‘모래시계파’가 새롭게 등장하면서 한인타운의 유흥가는 일순 갱단의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모래시계파’의 두목은 한국 검찰에서 사기혐의로 기소중지 상태에 미국으로 피신해온 소모(35)씨였다.

소씨는 한국서 데려온 김모씨, 최모씨 등을 양 어깨로 삼아 유흥업소들을 하나둘씩 자기의 보호 하에 넣었고 이 과정에서 기존의 청소년 갱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팽배해 있던 10월30일 드디어 일이 터졌다.

한인타운 한복판인 윌셔 블러버드와 킹슬리 드라이브에 위치한 카페 ‘아이칸’에서 KPB의 두목인 임모군이 ‘모래시계파’가 LGKK 등과 연대하는 등 세력이 급속도로 팽창해나가는데 위기감을 느끼고 “더이상 내 영역을 침범하려 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말한 데 앙심을 품은 ‘모래시계파’가 본보기로 임군을 해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며칠후 ‘모래시계파’ 단원들은 경찰에 자수를 했고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현재 캘리포니아 주형무소에서 복역중이며 두목 소씨는 연방이민국에 의해 한국으로 강제추방됐다가 법망의 헛점을 틈타 1998년 다시 미국에 입국, 현재는 텍사스 등지를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동대원의 체포와 두목의 국외추방으로 힘을 잃은 ‘모래시계파’는 결성 1년여만에 해체됐고 역시 두목을 잃은 KPB 역시 새로운 두목의 출현없이 단원들이 다른 갱단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와해됐다.

또 LGKK도 두목격이었던 쌍동이 형제가 군대에 징집돼 귀국하는 바람에 1997년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해체됐다.

결국 1990년대 중반 한인타운을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들었던 갱단들이 1997년에 접어들면서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었다. LA 근교 도박장을 근거지로 고리대금업과 해결사 역할을 하는 폭력배만이 간헐적으로 돌출행동을 보였을 뿐 이렇다 할 말썽이나 충돌없이 2년여간 한인타운의 유흥가는 조직폭력배가 사라진 평화시대를 누렸다.

그러나 1999년 봄 또다시 갱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신모래시계파’, ACS(Asian Criminals) 등 몇몇 갱단이 선배 갱들이 자취를 감춘 틈을 타 꿈틀거리기 시작, 유흥가 이곳저곳에서 패싸움을 벌이며 세력을 넓혀나갔다.

몇몇 단원들은 살인미수와 살상무기에 의한 폭행 혐의로 당국에 의해 구속기소되거나 지명수배되기도 했지만 주축 단원들은 유흥가를 떼지어 돌아다니며 보호비 명목으로 업주들로부터 돈을 뜯어냈다.


쾌락의 거리 장악위한 목숨건 싸움

이들에게는 한인타운이 ‘파티 타운’이다. 10여개의 나이트클럽과 40여개의 룸사롱, 20여개의 노래방이 밀집돼 있어 한탕만 하면 여러가지 즐거움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이른바 쾌락의 공간이다.

베트남계, 중국계, 필리핀계, 캄보디아계 등의 청소년이 밤만 되면 한인타운에 밀물처럼 몰려드는 이유도 LA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쾌락이 늘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와칭’은 물론 ‘제프락스’(Jeffrox), ‘FTM’(Flip Town Mob) 등 아시안 갱의 모습은 한인타운 중 유흥가인 6가, 웨스턴 애비뉴 등지에서 어렵지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990년 이후 10년동안 한인타운에서 일어난 갱관련 살인사건을 10여건. 대부분 영토침범이나 세력다툼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었다.

이들이 사고를 치는 빈도에 비해 숫자상으로는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 어디서든 총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잠재적 위험성은 늘 있다. 오성환 LA카운티 보호경찰관은 “요즘 청소년 갱은 총기거래 뿐 아니라 마약밀대에까지 손을 대고 있어 사고의 위험성을 늘 안고 다닌다.

보복을 위해 자동소총을 동원하는 지경이니 언제 어디서 유사한 사건이 재발할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론 김 LAPD 동양인수사과 수사관은 “조직폭력배들이 한인타운과 LA 한인사회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기 전에 이민국과 협조, 강제추방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할 필요를 느낀다”고 강조했다.

하천식 LA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1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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