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전투기 사업] 4조원 FX시장, 불 붙은 공중전

미국대 비미국업체 경쟁, 세계 유명무기생산국 총 출동

“이번 사업과정은 흥미진진할 것이다.” 차세대전투기(FX) 사업이 시작되면서 공군의 고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외환위기와 KF-16 전투기의 추가생산 비용조달문제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던 차세대 전투기사업이 궤도에 오르면서 세계 무기생산 강국의 사업수주 경쟁이 전초전에 돌입했다.

차세대 전투기 대상으로 꼽힌 기종은 미국 보잉사의 F-15E를 비롯해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 유럽 4개국이 공동생산한 유로파이터, 러시아의 Su-35 등 4개.

F-16과 F-18이 맞붙었던 1차 차세대 전투기사업은 미국 회사끼리의 졍쟁이었지만 이번에는 유로파이터를 공동생산하는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을 비롯해 프랑스와 러시아까지, 세계 무기생산 강대국이 총출동했다.

대상 회사들은 지난달 말 작전성능을 비롯해 판매가격과 종합군수지원, 기술이전, 절충무역조건(선정될 경우 한국물자 구매비율) 등을 담은 제안서를 국방부에 제출하고 길게는 1년에 걸쳐 진행될 수주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4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입되는 이번 차세대 전투기사업의 포인트는 과연 이번에도 미국 회사가 수주에 성공할 것인지 여부. 국방부와 공군 관계자들은 “아직 시험평가도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다저렇다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라는 발언 외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 주변에서는 “이번에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유럽과 러시아가 한국시장 공략을 위해 전에 없이 저돌적으로 달려들고 있어 미국이 안심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라팔의 제작판매사인 다소와 유로파이터 판매사인 유로파이터 인터네셔널의 중간 간부들의 한국행이 잦아졌으며 비교적 느긋하던 미국 보잉사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최근 한국의 중견 언론인 5명을 본사로 초청해 견학시키는 등 긴장하고 있다.

무기판매 업무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번 수주전에 참여한 회사들의 속사정을 살펴보면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선 미 보잉사의 경우 이번에 한국 정부의 차세대 전투기로 선정되지 못하면 F-15 시리즈의 생산라인은 폐쇄될 것이 분명하다.

보잉사 군사분야 담당 사장 제리 다니엘은 기자들에게 “모든 것은 한국에 달렸다. 한국이 F-15를 선택하면 생산은 몇년간 계속 되지만 한국이 선택하지 않는다면 2년내에 생산라인을 폐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잉사로서는 마지막 사활을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제 막 개발을 마치고 대량생산 체제에 들어간 유로파이터나 라팔의 경우도 한국시장 개척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관할권’인 한국시장에 발을 디미는데 성공한다면 굵직굵직한 고객이 몰려있는 동북아 시장 진출의 확실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고 한국의 차세대전투기 사업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는 대만과 중동 각국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비 미국업체 파격조건 제시

현재 각 회사들은 판매가격이나 절충교역조건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지만 미국을 제외한 3개사는 한국 정부가 제시한 조건을 훨씬 뛰어넘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투기의 가격과 절충교역 조건 등에서 미국의 F-15E가 절대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경쟁을 치열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일각에서 F-15가 워낙 오래된 모델이어서 향후 30년간 운용될 차세대 전투기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보잉사는 F-15E의 경우 기존 F-15A/B/C/D 모델과는 외관만 비슷할 뿐 전자전 장비나 화력 등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성능이 개량돼 비교 자체가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F-15E는 걸프전과 유고전에 투입돼 단 한대도 격추되지 않고 거의 100%에 가까운 임무수행률을 보이는 등 뛰어난 성능을 갖추고 있고 기존 모델에 비해 지상공격능력이 대폭 향상됐으며 작전반경도 크게 확대돼 한국 공군의 주력기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보잉측은 경쟁이 치열해지자 가격과 기술이전 등 판매조건에 상당한 신축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유로파이터나 라팔의 경우 한국 공군 조종사들이 익숙하지 않은데다 미군과 연합작전 하에서 운용상의 마찰 가능성 우려 등이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대만 공군이 현재 F-16과 프랑스의 미라지-2000을 동시에 운용하고 있고 걸프전 등 나토와 미군의 합동작전에서도 운용체계상의 마찰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미국의 무기와 호환성이 있어 유럽 전투기 도입이 한국군의 작전능력을 저하시키지는 않는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유로파이터는 유럽의 4개 강국과 동시에 관계개선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라팔의 경우 파격적인 절충무역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Su-35는 무엇보다 성능에 비해 가격이 상당히 싸다는 장점이 있으며 기술이전 조건 등도 좋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국이 차세대 전투기로 미국과 유럽을 제쳐두고 러시아제를 도입하기는 어렵다는게 현실.

또 후속군수, 조종사의 적응도 등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러시아측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전투기의 일부를 러시아 경협상환으로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경제적 관계, 무시못할 변수

대상 기종 회사들은 8월 말부터 작전성능 평가와 가격 및 부대조건 협상이 시작되면 홍보작업 등 본격적인 ‘수주 전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각 회사들은 이미 군 출신들을 고문으로 영입한 상태다.

F-16 도입과정이나 다른 대규모 무기거래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차세대 전투기 사업도 군사적 잣대만으로 기종이 선정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해당국과 정치·경제적 관계 등이 감안될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유명 군사전문 주간지 디펜스 뉴스는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겠지만 한미 연합작전을 고려하면 결국 F-15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방부 관계자는 “기술이전과 가격 등 실질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기종을 선정하겠다”고 말하는 등 탈(脫)미국화의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통일후 주변국과의 역학관계, 국내 항공산업의 발전에 대한 기여, 전투기 발전추세에 맞는 첨단기술의 적용 등이 충족되면 이제 한국도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가 협상전략용인지, 아니면 이제 한국군도 무기구매에서는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8 19:02


송용회 주간한국부 songy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