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 순례(21)] ‘듀폰’

첨단소재 산업이 세계적 리더

콘돔, 팬티, 침대커버, 커튼, 치마, 바지, 치솔, 골프공의 공통점은? 소재공학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듀폰’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듀폰은 현대인의 일상에 가장 밀접한 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듀폰이 생산하는 소재는 거의 모든 일상용품의 기본 요소를 이루고 있다. 듀폰은 첨단소재 개발의 세계적 리더다.

듀폰의 소재가 들어간 제품은 일상용품에 그치지 않는다. 건축자재, 전자제품, 스포츠 제품, 심지어 우주선과 화성탐사 로봇에도 듀폰이 개발한 첨단소재가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듀폰은 현재 2,000여종의 산업용 기초소재를 생산해 다양한 응용기술과 함께 고객에 제공하고 있다. 듀폰은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성장했고, 연구개발을 통해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이다.


끊임없는 연구개발, 신소재·신기술 개발

듀폰의 심장부는 본사 소재지인 미국 델라웨어주의 윌밍턴에 있는 ‘중앙연구소’. 1903년에 설립된 세계 최초의 민간 기초과학연구소다.

18만6,000평의 부지에 세워진 60여개의 연구동에는 현재 1,000여명의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신소재와 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1938년 ‘기적의 섬유’로 불린 나일론이 개발된 곳이 여기다. 노벨상 수상자도 배출했다.

연구개발이 중앙연구소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듀폰은 세계 11개국에 75개의 연구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만 3,200여명. 듀폰의 연구비 투자규모는 연간 13억 달러에 달한다.

2002년 창사 200주년을 맞는 듀폰이 지금까지 개발해 보유하고 있거나 출원중인 특허는 5만2,000건. 연평균 670건, 매일 2건꼴로 특허를 획득한 셈이다.

듀폰의 사업영역은 화학, 섬유, 건설·건축, 전자, 생명공학, 생활용품, 레저·스포츠, 교통, 항공우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 걸쳐 있다.

사업체제도 사업영역에 못지 않게 광범위하다. 세계 70여개국에 생산시설 200여개를 갖고 있다. 직원은 모두 10만여명. 직원의 3분의1이 미국 밖에서 일하고 있다. 1999년 매출액은 269억 달러였고 이중 47%가 미국 밖에서 창출됐다. 이런 점에서 듀폰은 명실공히 글로벌 기업이다.

듀폰은 미국의 기초과학 교육을 자양분으로 성장했고 그런만큼 미국 기초과학의 경쟁력을 대변하는 기업이다. 듀폰은 화학회사로 출발했다. 프랑스 출신 이민자 듀폰이 1802년 델라웨어주 브랜디 와인 강변에 세운 화약공장이 오늘날 듀폰의 모태였다.

3세기에 걸친 듀폰의 역사는 두 차례에 걸쳐 획기적인 자기변신을 보여주고 있다. 창사 100주년을 맞은 1902년 중앙연구소를 건립한 것이 첫째다. 기술력에 기업의 명운을 건 것이다. 두번째는 1990년대 시작된 경영혁신.


안전·환경·윤리·인간존중

경영혁신은 생산, 마케팅을 계획적, 조직적으로 세계화하는 전략이었다. 세계화 전략은 조직효율의 극대화, 사내 정보교환의 활성화, 세계적 시야의 강조, 현지화 노력 강조, 고객중심주의로 요약된다.

이때 새롭게 도입된 개념이 ‘전략적 사업단위’(Strategic Business Unit·SBU). 각 SBU가 사업운영의 자치권을 부여받아 보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공룡처럼 커진 듀폰이 여전히 연구개발과 사업에서 기민성과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비밀은 여기에 있다.

다국적 기업으로서 듀폰의 성공비결은 기업철학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듀폰의 기업이념은 안전·환경·윤리·인간존중 등 4가지. 중요한 것은 기업이념을 전사적 차원에서 철저히 이행하는데 있다. 듀폰이 포천지에 의해 수년간 ‘가장 존경받는 화학기업’으로 선정된 것은 이 때문이다.

안전에서 듀폰을 능가할 기업은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하다. 현재 듀폰의 안전기록은 미국 전체 산업계 평균의 50배, 화학업계 평균보다는 10배 높다.

듀폰이 갖고 있는 별명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일터’. 1970년 이후 듀폰은 타기업을 대상으로 안전·환경컨설팅 서비스를 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1,000여개 기업이 듀폰의 안전관리 서비스를 제공받았다. 작업장에서 듀폰의 신조는 ‘모든 안전사고와 직업병은 예방할 수 있다’는 것. 아울러 듀폰은 ‘안전하고 환경친화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어떤 제품도 생산, 판매, 수송, 보급하지 않는다’는 생산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기술력에 승부를 건 기업에 인간경영은 필수적이다. 듀폰은 1997년 2월 국적, 인종, 성별, 직위에 관계없이 10만명에 달하는 모든 직원에게 자사 보통주식 100주에 대한 옵션증서를 부여했다. 사업성공의 원동력이 인재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듀폰은 아시아·태평양지역 15개 국가에서 40여개 생산시설을 가동해 35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주요 투자기업이다.

산업자원부의 지난해 ‘외국인 투자기업현황’에 따르면 듀폰은 누적투자액이 2억612만 달러에 달해 외국기업 중 5위에 랭크됐다. 듀폰은 1995년 정부로부터 ‘5,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았고, 한국능률협회로부터는 ‘주한 외국기업 부문 세계화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기업이미지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이 가장 일하고 싶은 5개 외국회사에 포함됐다.


인적·물적자원 활용하는 '글로벌 리소싱'

국내에 있는 듀폰 자회사는 듀폰 코리아와 듀폰 포토마스크, 듀폰 다우 엘라스토머스 등 3개로 모두 5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중 1977년 한국에 들어와 1988년 법인을 설립한 듀폰 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액은 3,130억원으로 이중 25%가 수출에서 나왔다.

듀폰 코리아는 울산, 인천, 안양에 생산공장을 갖고 있으며 특수화학, 불소화학, 농약, 섬유, 산업용고분자 등 산업용 소재를 생산하고 있다.

듀폰이 21세기의 새로운 전략으로 내세운 것은 ‘글로벌 리소싱’이다. 거대한 기업망을 활용해 세계적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하겠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오프라인의 한계를 극복할 인터넷 비즈니스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근 GE캐피탈에서 전자상거래와 E비즈니스 기술담당 부사장을 지낸 제프리 피터슨을 E비즈니스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한 것이 대표적. 듀폰은 인터넷을 기존 경영시스템의 대체수단이자 새로운 가치창출의 원천으로 생각하고 있다.

듀폰의 E비즈니스 목표는 화학, 플라스틱, 전자 등 각종 사업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업간 거래(B2B) 회사를 만드는 것.

창업 200년을 눈 앞에 둔 듀폰의 역사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연구개발과 기술력만으로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 능동적이고 기민한 경영혁신과 자기변신, 기업윤리가 수반돼야만 비로소 세계 최고가 가능하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8 20:15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