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제 맛으로 승부하는 시대

'테이크 아웃'형 전문점 인기, 고급화 전략으로 정착

어두운 조명, 퀴퀴한 냄새에 담배 연기가 자욱한 실내. 홀 한켠에는 헤드폰을 낀 장발의 DJ가 유리로 막아 놓은 뮤직박스 안에서 음악을 튼다. 퍼머 머리에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들이 손님 옆자리에 앉아 커피를 저으며 재잘거린다. 인스턴트 커피가 녹는 흑갈색 액체 속에 하얀 프림 가루가 뒤섞이며 이야기 꽃은 피어나는데….

우리의 커피 문화는 이런 동네 다방이나 다실 문화 형태로 시작됐다. 1960년대 말 산업화가 한창이던 때 커피는 신식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기호 식품이었다.

중절모에 나비 넥타이를 한 정장 차림의 신사가 찾아가는 곳이 다방이었고 이곳에선 커피를 매개로 청춘남녀의 사랑과 정치, 사업 등과 같은 역사가 이뤄졌다. 이후 서구 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진 커피의 의미는 점차 퇴색했지만 커피는 지금까지 만남과 대화의 매개체로 역할을 해왔다.

다방 커피 문화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큰 변화를 맞는다. 이때 생긴 것이 커피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커피전문점.

자뎅, 사카, 도토루, 왈츠, 나이스데이 등 체인점 형태의 커피 전문점이 다방과 다실을 지방 변두리로 밀어냈다. 이들이 취급한 것은 연한 커피인 아메리칸 스타일 커피. 여기에 각 회사마다 나름대로의 성분을 배합해 자사 브랜드 커피를 선보이며 새로운 소비자를 유혹했다.

그러나 커피 전문점들은 인스턴트 커피에서 원두 커피로의 전환 정도에 만족했지 맛에서는 이렇다 할 차이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점차 입맛이 까다로와진 소비자들은 커피에 있어서도 무엇인가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국내 커피문화에 일대 회오리

장마비가 쏟아지는 7월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의 한 커피전문점. 겉으로 보면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 커피숍 카운터 앞은 순서를 기다리는 젊은이로 북적대고 있었다.

이곳은 일반 커피숍과 몇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첫째, 모든 커피를 도자기나 유리잔이 아닌 종이나 플래스틱 휴대용 컵에 담아준다는 것.

그리고 커피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 대다수 손님이 테이블에 앉지 않고 그냥 커피를 들고나간다는 점이었다. 이곳은 최근 젊은이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테이크 아웃’(Take Out)형 신종 커피 전문점이다.

이런 휴대용 커피 전문점의 붐을 일으킨 업체는 지난해 7월 미국에서 들어온 스타벅스(STARBUCKS).

199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스타벅스는 국내 상륙 1년만에 40년된 국내 커피 문화를 송두리째 뒤엎을 기세다.

이들은 종전 만남의 매개 역할 정도에 그치던 커피에 대한 개념에서 탈피, 커피 자체를 경쟁력있는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한마디로 커피의 맛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타벅스 커피는 국내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철저한 품질관리, 세계 공통의 맛

이곳의 모든 커피는 철저한 품질 관리를 통해 세계 어디서나 같은 맛을 내며 항상 휴대하기 쉽게 만들어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를 위해 이 회사는 명품으로 알려진 아라비카 원두를 구입해 전문가인 바리스타(매장에서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를 통해 커피를 만든다. 주문과 동시에 즉석에서 원두를 갈아 만들어준다.

드립(Drip)한 커피는 1시간이 지나면 버리며 개봉한 커피 원두도 한주일이 지나면 무조건 폐기 처분한다. 세계 14개국에 3,200개의 매장이 있지만 공항 병원 등 특수 지역을 제외하곤 99%가 직영점으로 운영된다.

커피 맛과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한 전직원에게 의료보험과 고용보험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현재 스타벅스에서 쓰는 용품과 재료중 스트롱을 제외하곤 100% 미국 수입품이다.

우선 커피 종류가 다양하다. 한 예로 여름철에 인기를 끄는 프라푸치노 하나만 해도 첨가하는 커피 종류와 시럽 등 첨가물에 따라 무려 10여종이 넘는다. 가격은 2,500원에서 4,500원선으로 일반 커피점과 유사하다. 현재 이화여대 대학로 압구정동 강남 아셈 명동 등에 6개의 매장이 있는데 매장당 하루 평균 2,500명이 넘는 고객이 이용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양재선 마케팅 담당은 “스타벅스는 신문이나 TV, 잡지 등에 일절 광고를 하지 않고 소비자 사이에서 ‘맛있다’는 입소문이 나도록하는 구전 마케팅을 구사할 정도로 맛과 질을 자부한다”며 “국내에서는 미국과 달리 대형 매장 판매 전략을 세우고 있는데 2003년까지 매달 1개씩 직영 매장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토종업체도 맛 고급화로 경쟁

스타벅스에 앞서 국내에서 테이크 아웃형 커피 전문점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주)대상이다.

이 회사는 올해 3월 대학로에 ‘로즈버드’라는 테이크아웃 매장을 오픈, 현재 전국에 41개(직영 5개점)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로즈버드 역시 국내에선 생산이 안되는 커피 원두를 수입하기 때문에 완전한 의미의 국산 제품이라고 할 순 없지만 생두를 수입해 배전(원두를 볶는 것) 등의 가공 처리 과정을 직접하기 때문에 스스로 토종 브랜드라고 주장한다.

생두는 주로 자메이카나 남미산을 사용하며 평균 커피 가격은 1,9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신선한 커피맛을 유지하기 위해 배전후 1주일 이내에 소비자의 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점포 면적은 3~4평이며 한 매장당 평균 월 1,000만원의 매출액과 200~300만원 정도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

로즈버드 대학로점의 윤정원(24) 지점장은 “가장 신선한 커피를 즉석에서 만들기 때문에 한번 찾은 손님은 일반 커피점에 가지 않고 반드시 다시 찾는다”며 “10대보다 20대~30대의 직장인이 주고객층이다”고 설명했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신(26)모씨는 “테이크 아웃점의 경우 아메리칸 스타일이 아닌 유럽식 에스프레소 커피를 신선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맛에서 일반 커피숍과는 큰 차별이 있다”며 “따라서 굳이 누구를 만나는 경우가 아니면 테이크 아웃점에서 커피를 사서 마신다”고 말했다.


기존 커피숍 위기감

테이크 아웃 커피전문점이 젊은층에서 호응을 얻으면서 유사 전문점이 경쟁적으로 문을 열고 있다. 정통 시애틀 풍의 에스프레소 커피점인 홀리스가 압구정동에 생겼고 외국에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는 토종 테이크 아웃점인 호내트도 최근에 문을 열었다.

이처럼 테이크 아웃점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기존 커피숍은 상당한 위기감에 싸여있다.

압구정동의 M커피숍 주인은 “주변에 테이크 아웃 커피점이 잇달아 생기면서 커피 맛이 싱겁다고 불평하는 손님이 늘었다”며 “이러다간 안될 것 같아 최근에는 가급적 커피 농도를 진하게 하면서도 신선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실내 인테리어도 디지털풍으로 새로 고쳤다”고 말했다.

현대인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기호식품이 되버린 커피. 이제 커피 시장에도 진정한 맛의 승부가 시작된 셈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8 20:21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