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갯벌메워 골프장 만든다니…

아산만 행담도, 주민·환경단체 거센 반발

갯벌에 웬 골프장? 골프장 건설 열기가 마침내 갯벌을 매립해 그린을 만든다는 희한한 발상으로까지 연결됐다.

한국 최초로 바다(갯벌)에서 골프장으로 둔갑할 운명에 처한 곳은 아산만내 행담도(충남 당진군 신평면) 주변. 머리를 짜낸 주체는 한국도로공사. 도로공사는 6월23일 아산만 행담도 부근 갯벌과 공유수면 10만여평을 매립해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도로공사의 발표에 대해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환경재앙을 부를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서해대교 공사로 중증을 앓고 있는 행담도와 주변 해역을 아주 버려놓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도로공사가 사업을 강행할 경우 결사적으로 저지하겠다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삽교천에서 아산만을 향해 뱃길로 20여분이면 도착하는 행담도는 총면적 6만5,000여평에 17가구가 살던 오붓한 섬이었다. 주민들은 1979년 준공된 삽교천 방조제가 휴양지로 변모하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에게 낙지, 바지락 등을 내다팔아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해왔다.


‘국가이익’에 밀린 환경·생계

하지만 행담도는 1993년 서해안고속도로(올 12월 개통예정) 공사가 시작되면서 급격하게 옛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온 섬을 달콤한 향기로 뒤덮던 해변의 아카시아나무 군락은 완전히 뽑혀 흔적도 없어졌다. 바닷게, 바지락과 낙지를 망태기 가득 채우고 풍요로운 미소를 띄우던 어부의 모습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서해안고속도로가 관통하면서 육지와 연결된 행담도는 이제 더이상 섬이 아니다.

행담도와 주변의 갯벌 파괴는 고속도로 건설로 끝나지 않았다. 도로공사는 1996년과 1999년 잇달아 1, 2차 행담도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1차 개발계획은 2000년 10월까지 행담도에 고속도로 휴게소를 건설하는 것.

지난해 발표된 2차 계획은 2004년까지 2,400억원을 들여 행담도 주변 갯벌을 매립하고 여기에 복합 휴양시설을 세운다는 것이다. 여기다 지난달 23일에는 당초 계획안에도 없던 ‘갯벌 골프장’ 건설계획까지 내놓았다.

1, 2차 개발계획 실행과정에서 행담도는 이미 무인도로 변했다. 도로공사측이 주민들을 모두 타지역으로 이주시켰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주에 반대해 알몸시위, 건설차량 출입저지 등의 극한적 방법을 동원해 격렬히 저항했다.

하지만 ‘국가이익’을 내세우는 도로공사측의 말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지난달 마지막 남은 한 가구마저 이곳을 떠났다. 이주민들이 생계대책으로 받은 것은 보상비 1,800여만원과 장차 휴게소내 음식점을 분양해준다는 약속이 전부.

휴양시설 부지조성 작업의 일환으로 도로공사는 6월23일 행담도 주변 10만여평의 갯벌 매립에 따른 환경영향평가를 주민들과 환경단체에 공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갯벌을 매립한 곳에 골프장과 호텔, 실내 돌고래쇼장 등 위락시설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개발은 현대와 싱가포르의 이콘사, 그리고 도로공사가 합작 설립한 행담도 개발주식회사가 맡게 된다.


담수호 방류하수 정화기능 상실

환경운동연합은 갯벌 보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요즘 갯벌을 매립해 골프장을 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아산만 갯벌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간척사업으로 거의 사라진 상태. 환경운동연합은 “그나마 행담도 주변에만 조금 남아있는 갯벌마저 매립하면 환경재앙은 불보듯 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평택환경연합 장순범 사무국장은 “골프장 농약이나 폐수가 바다로 흘러들 것”이라며 우려했다. 환경운동연합측이 내세우는 반대논리는 크게 세 가지.

첫째는 행담도는 삽교호, 아산호 등 주위의 담수호로부터 연간 20억톤 이상 방류되는 하수를 정류하는 유일한 갯벌이다. 이를 없앤다면 주변 해역은 오염이 심화할 수 밖에 없다.

둘째, 전국 습지보전연대회의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아산만은 동북아 최대 규모인 1만8,000여 마리의 흑꼬리도요새가 발견되는 등 세계적으로 중요한 습지다. 매립은 곧 철새도래지의 파괴로 연결된다.

셋째, 이곳을 매립하면 아산만의 폭이 좁아져 간만조시 해류속도가 빨라지게 된다. 해류속도가 빨라지면 아산만은 어패류 산란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어 죽음의 바다로 바뀌게 된다.

인근 당진군 주민의 반발도 거세다. 당진군 송악면 한진리에 사는 한 상인의 이야기. “행담도 주변이 개발되면 인근 상인은 모두 죽는다. 지자체 세수증대 효과는 연간 22억원 밖에 안되는데 반해 쓰레기 등 환경오염 피해는 그보다 몇배인 사업을 당진군이 왜 묵인하는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평생 고기잡이를 해온 송악면 한진리 김낙선(70)씨는 “아산만에 삽교천이 생기면서부터 그렇게 흔하던 준치, 꽃게 등이 사라졌다”며 “행담도 갯벌을 매립하면 바지락 등 어패류도 없어질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환경파괴 뻔한 일을...”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발에 대해 도로공사의 함은호 사업개발과장은 “골프장 건설계획을 백지화할 의향도 있다”며 공사측의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것은 건설주체인 행담도 개발주식회사와 협의된 사항이 아니다.

갯벌을 메워 휴양시설을 짓는다는 기본계획에도 변함이 없다. 도로공사 측은 갯벌손실이 크지 않고 흑꼬리도요새도 행담도에 많이 서식하지 않아 환경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개발에 내몰린 행담도의 옛 주민들은 서럽다. 행담도내 현대개발공사 사무소내에서 ‘한밭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장우(48)씨. 얼마전까지만 해도 행담도에서 살다가 당진으로 이주한 이씨는 이제 식당으로 매일 출퇴근을 한다.

이씨의 말에는 행담도에서의 추억과 앞으로의 걱정이 가득하다. “예전에는 삽 한자루에 양동이 하나면 생계 걱정이 없었다. 섬사람더러 섬을 떠나 살라니….”

최근 정부는 강화지역 등 전국 9곳의 갯벌·습지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전국 61개 지구의 공유수면 매립 기본계획을 폐지했다.

이밖에 갯벌개발에 생태보전금을 물리기로 하는 등 갯벌보호정책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이같은 시점에서 행담도와 주변갯벌을 개발한다는 것은 정부 의지를 의심케하기에 충분하다. 아울러 도로공사도 공익이란 명분 하에 수익위주의 이기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송기희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8 20:40


송기희 주간한국부 gihu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