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노출패션- 배꼽은 기본, 대담한 '벗기 경쟁'

아찔·섹시… 여자가 벗는다

7월11일 오후 3시 서울 강남역 부근. 연일 30도를 넘나드는 불볕 더위 속에 여성들의 옷차림이 시원하다. 아슬아슬한 끈으로 이어진 슬립 상의에 핫팬츠. 거의 수영복을 방불케 하는 차림이다. 배꼽티가 유행하자 풍기문란이라며 논란이 됐던 몇년 전의 일이 구석기 시대의 일처럼 느껴진다.


도심 한복판서 속옷 패션쇼?

12일 오후 8시 명동. 이곳 역시 현란한 옷차림의 여성들이 활보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유흥업소에 다닌다고 오해받을 만큼 야한 옷차림을 한 여성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있다.

해수욕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 어깨를 드러내는 것은 기본이며 등, 배꼽 등 보여줄 만한 곳은 다 드러내놓고 있다. 아주 짧은 톱을 입어 브래지어만 걸친 듯한 느낌을 주는 여성도 있다.

패션 쇼에서나 볼 수 있는 차림이 도심 한복판에서 걸어다니고 있다.

길에서 만난 탱크톱 차림의 한성여대 이모(22)양. 그는 “무엇보다 시원해 보이기 때문에 가벼운 옷차림을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몸매를 자랑하고 싶기도 하다고. 그는 여름 노출을 위해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다이어트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도한 다이어트로 속만 버려 현재 병원에 다니고 있다며 속상해 한다.

며칠 전에는 ‘물 좋기로 소문난’ 강남의 J나이트클럽에 놀러갔는데 다른 손님들이 너무 야한 옷을 입고 있어 배꼽티 차림의 자신이 마치 공부만 하는 ‘범생이’처럼 보여 민망했다고 한다.

서울 구로구 개봉동에 사는 최모(23)양의 이야기. “때로는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요즘은 사고가 개방되어 있고 친구들도 즐겨 입어 조금씩 대담해진다. 주위의 친구들이 탱크톱이나 홀터넥 같은 옷 한두벌은 모두 갖고 있다. 다른 애들이 섹시한 옷차림으로 다니는 것을 보면 예쁘고 부럽다. 몸매만 되면 그런 옷을 입고 다니고 싶다.”


가능한 많이 보여주어야 ‘세련’

노출이 여름 패션의 화두가 되고 있다.

여름을 아찔하게 만드는 아이템으로는 홀터넥, 백리스, 튜브 톱, 캐미솔 톱, 탱크 톱, 핫팬츠 등이 대표적.

홀터넥은 슬리브리스(민소매)의 일종인데 기존 슬리브리스 제품이 어깨를 가린데 비해 홀터넥은 앞몸에서 이어진 밴드를 목뒤로 둘러매는 스타일로 어깨선이 화려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

여기에 배꼽까지 드러내는 숏톱도 유행해 전체적으로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백리스는 말 그대로 등이 훤하게 드러나는 스타일을 의미한다. 건강하고 섹시하지만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그동안 크게 유행하지 못했던 게 사실.

하지만 올해는 어느 해보다 노출패션이 유행하는 바람에 덩달아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튜브처럼 몸통에 두르는 튜브톱과 남자용 런닝셔츠 같은 탱크톱, 그리고 몸에 적당히 붙고 어깨선을 끈으로 처리한 캐미솔 톱 등도 인기다.

상의 노출이 어깨를 훤히 드러내는 톱이 주류라면 하의는 단연 핫팬츠다. 핫팬츠는 허리선부터 20cm에서 30cm 정도의 길이에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초미니 반바지를 말한다. 미니 스커트보다 핫팬츠로 아찔하고 섹시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브래지어 끈까지 밖으로 노출돼 이제 상체는 더이상 감추어야 할 대상이 아닌 듯 여겨진다. 노출을 하고 싶지만 브래지어 끈이 껄끄러웠던 여성들. 그냥 내보이기는 아직 민망하고 대신 액세서리처럼 투명한 브라스트랩을 개발했다.

또한 발은 페티큐어, 반지 등으로 장식하고 어깨나 팔뚝에는 패션 문신으로 노출의 매력을 한껏 살린다. 모든 패션이 멋있게, 가능한 한 많이 보여주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노출에 익숙해진 사회분위기

패션 잡지 엘르의 패션팀 황진영 씨에 따르면 배꼽티로 불을 당긴 노출패션은 올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노출을 즐기는 층은 10대에서 20대 초반 여성. 이들은 야한 옷에 대한 거부감이 없고 또한 그러한 옷을 즐길 만큼 대담하다. 전반적인 사회분위기도 많이 변했다. 배꼽티가 몰고온 노출 논쟁이 사람들로 하여금 노출에 익숙하게 해줘 이제는 사람들이 노출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다고 한다.

이처럼 여성들이 노출을 선호하게 된 데는 방송의 영향도 크다. 드라마나 광고에 나오는 여성은 그들의 몸매를 한껏 드러낸 의상을 입는다. 요즘 TV쇼를 보면 여성 출연자들이 수영복으로 출연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10대들은 그들 또래의 댄스 그룹을 모방하는 데 최근 댄스 가수의 옷차림이 ‘조금이라도 더 벗어야 뜬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 이러한 유행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지난해 ‘와’, ‘바꿔’로 가요계 태풍을 몰고 온 가수 이정현의 경우 상의는 배꼽과 가슴 바로 밑까지 훤히 드러나고 스커트는 한쪽이 깊게 패여 있다.

또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백지영은 가슴만 살짝 가린 옷으로 남성 팬들의 숨을 멎게 하고 있다.

이외에도 베이비 복스는 브래지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의상을 준비했다가 방송심의 때문에 포기해야 했고 샤크라, 클레오 등 여성 가수들이 노출을 판매전략으로 삼은지 오래다.

숙명여대 생활과학연구소 박애선 교수는 최근 노출패션 경향과 관련, “자신있게 자기를 표현하는 젊은 층의 대담함과 유행에 뒤지지 않으려는 신세대의 불안심리가 어우러져 노출패션이 유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세대의 튀는 개성과 왕따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매스미디어의 영향이 길거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장마도 잊은 채 이글거리는 태양이 연일 도심을 태우고 있는 올 여름 어느 해보다 여성의 ‘벗기 경쟁’이 치열하다.

송기희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8 21:04


송기희 주간한국부 gihu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