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은 NMD

흐려지는 당위성, 국내외 반대여론도 점차 거세져

2005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오후. 북한의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미사일기지에서 핵탄두를 실은 대포동 2호 미사일이 지축을 흔들며 발사된다. 타깃은 미국 대통령이 단잠을 자고 있는 워싱턴의 백악관.

그러나 대포동 미사일은 발사된지 1초도 안돼 미 군사위성 이글 아이(Eagle Eye)와 지상의 조기경보 레이더에 다발적으로 포착된다. 순식간에 탄도미사일에 대한 궤도추적이 완료되고 알래스카의 외딴 섬 세미야의 기지에서 요격 미사일이 발사된다.

대포동 미사일은 대기권을 벗어나자마자 산산조각난다. 다음날 아침 CNN 뉴스를 접한 미국인들은 자신이 낸 세금의 효용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날 아침 미국 대통령은 전권으로 북한에 대한 보복 핵공격을 명령하는데….

이것이 미국 정부가 제1단계에서만 6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추진하려는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의 전략적 시나리오다.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이 2005년 실험에 성공하고, 이라크 리비아 등 이른바 ‘깡패국가’(Rogue State)들이 5~10년 안에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완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서둘러 요격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2005년 20기의 요격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고 2007년까지 이를 100기로 늘리는 국방부의 NMD 체제 구축안에 대한 시행 여부를 앞으로 수주일 안에 결정할 예정이다.


과장된 위협론

하지만 미국의 NMD는 계획의 입안을 위한 최종 시한이 다가오면서 점점 정당성을 잃고 있는 느낌이다.

NMD 체제의 발화점인 북한은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자 ‘미사일 실험 유예’로 방향을 잡고 미국과 협상에 들어갔다. 미 의회 회계감사원(GAO) 등은 국방부와 정보기관이 제시한 ‘깡패국가 위협론’이 과장됐을 가능성을 잇따라 제기했다.

모호한 ‘잠재적 위협’을 실제 위협으로 부풀렸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을 역임한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는 “북한의 대미 위협능력은 점차 줄고 있는데 미국의 위협인식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순의 논리

여기에다 NMD는 미국 내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대 여론에 직면해있다.

미국이 21세기 ‘가상적국’으로 지적한 중국이나 20세기 라이벌 러시아는 물론이고, 우방인 유럽국 조차 한 목소리로 반발하고 있다. NMD 반대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NMD는 자신의 무기는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상대방의 공격은 무력화시키는, 모순(矛盾)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진보적 연구기관 CATO연구소는 “NMD 배치가 오히려 미국의 안보를 더욱 위태롭게 하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NMD가 냉전시대의 핵 군비경쟁과 같은 역할을 탈냉전시대에 대신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방패를 잘 만들면 창도 점점 예리해지는 법이다.

더구나 NMD는 1972년 미·소간 탄도탄 요격미사일(ABM)협정을 수정하거나 파기해야 가능한 시스템이다.

ABM은 미국과 러시아가 미사일 요격기지를 1개만 구축할 수 있도록 규정했는데 미국이 NMD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레이더 기지 등 추가적인 시설이 필요하다. 미국은 러시아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미사일 방어기술 공유를 천명하는 등 설득에 나섰으나 뜻대로 안되자 협정파기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외교적 기현상

NMD 파장은 외교적 기현상마저 낳고 있다. 독일과 러시아가 NMD에 대항에 전략적으로 연대키로 했다. 미국의 지근 우방으로 NMD의 수혜국인 캐나다도 ‘역효과’를 강조하며 반대하고 나섰다.

인도와 중국 등은 러시아에 NMD에 대항한 공동 미사일 방어망 구축을 제안했다. 미국 국내에서도 반론이 거세다.

여당인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들은 13일 미사일 방위기술 실험기준강화 법안 부결에 동참하면서 NMD 재고를 촉구했다. 노벨상 수상자 50명까지 나서 중단을 요구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오스카 아리아스는 “NMD에 쓸 돈으로 빈국을 도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짜고치는 테스트’

NMD는 8일 실시한 1억달러 짜리 실험에서 요격 미사일이 추진 로켓으로부터 분리 조차 되지 않는 등 기술적 실효성 마저 의심받고 있다.

이로써 현재까지 실시된 3차례 실험에서 2번이 실패, NMD 배치를 선언하기 전까지 최소한 2번의 요격실험에 성공해야 한다는 미 국방부의 자체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게 됐다.

특히 미 국방부는 NMD의 핵심인 ‘미사일 잡는 미사일’에 치명적 결함이 있는데도 이를 숨겨가며 실험을 강행한 사실이 드러나 혼쭐이 났다. 요격 미사일에 부착된 적외선 센서가 적 미사일의 핵탄두와 유인장치(decoy)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자 실험 환경을 완화해 실험을 해온 것이다.

레이건 행정부때 군사고문이었던 시어도어 A 피스톨 MIT 교수 등은 이를 두고 ‘과학적 기만’(scientific fraud)이라고 단언했다.

이에 대해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은 과학자들의 지적에 대해 “단 3차례의 실험만으로 총탄(bullet)으로 총탄을 맞추는 작업의 실효성을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얼버무렸다.


패권적 발상

그렇다면 미 국방부와 군산복합체는 왜 모순으로 가득찬 NMD에 집착하는가. 우선 패권(覇權) 유지를 위한 전략적 판단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미 행정부의 정책 브레인은 미국이 냉전에서 승리한 것은 월등한 군사기술과 경제력, 그리고 동맹체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평가하고 탈냉전 후에도 이것만이 가장 확실한 세계경영 방법이라고 믿는다.

NMD는 냉전시대의 핵무기처럼 다시한번 군사적으로 세계를 압도할 신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NMD 개발 과정은 거대한 미국 군수산업을 위한 수유진작책이 되고, 인터넷이 국방산업에서 발전됐듯이 기술 혁신의 모태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정치적 산물

대선을 앞둔 미국내 정치 분위기도 NMD 논란을 가열시킨 측면이 있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최근 공화당의 전유물인 NMD를 클린턴 대통령이 자기 것인 양 선전하고 있다면서 자신은 한발 더 나아가 해상발사 NMD 시스템도 개발하겠다고 공약했다.

공화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적극적인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 후보의 경우 자신의 유약한 이미지를 회복하는 차원에서 NMD 구축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국내적으로 ‘정치적 의제’ 만드는 과정에서 주적(主敵)을 설정할 필요가 있었을 지 모른다. 국민을 정치적 무관심으로부터 떨쳐버리는데 공포와 분노 만큼 좋은 것은 없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각각 소련과 막강했던 노동조합을 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탈이데올리기의 정치시대에서 분명한 악마들은 사라졌다.

이동준 국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18 21:50


이동준 국제부 dj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