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17)] 작을수록 더 좋다

작게 더 작게. 도대체 얼마나 더 작아질 것인가? 우주의 끝을 보고싶은 욕망처럼 우주의 가장 작은 단위까지 파헤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도전적 욕망일 것이다.

‘더 작게, 더 빠르게, 더 값싸게’ 라는 과학기술의 신경향은 ‘마이크로시대’를 거쳐 이제 ‘나노 르네상스’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인류사의 일대 혁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노기술(나노미터=10억분의1m)은 물질의 기본 단위인 분자 또는 원자 수준에서 인위적인 조작이나 분자장치를 만드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우주탐험, 컴퓨터, 무기, 의학과 생명공학, 그리고 생산현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이다. 특히 최근 연이어 발표되는 나노과학의 성과들은 머지 않은 혁명을 여실히 실감하게 한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프릿츠 하버연구소의 과학자들은 미세한 전극 사이에 10억분의1초 동안 전기 펄스를 줌으로써 마이크로(1mm의 1000분의1) 크기의 3차원 실리콘 구조를 정밀하게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 이를 사이언스지 최근호에 발표했다.

또 스웨덴 링킹스 대학의 에드윈 자그 박사는 하이픈(-:연자부호)보다 짧고 구두점(.)보다 가는 플라스틱 근육을 가진 마이크로 로봇을 만들어 역시 사이언스지 최근호에 발표했다.

이 로봇은 황금층 사이에 포장된 실리콘 골격과 폴리피롤이라는 전도성 폴리머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폴리머가 음이온과 양이온의 조건에 따라 수축 또는 팽창하는 원리를 이용하여 로봇의 팔꿈치, 손목, 손 그리고 손가락의 활동을 조절한다.

이들은 마이크로 로봇의 근육을 자극하여 유리구슬을 이동하는데 성공했다. 종전의 로봇과 달리 이 로봇은 혈액, 오줌, 그리고 세포배양에 사용되는 영양배지 등 여러 종류의 용액에서 작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학과 생명공학자에게 아주 유용하다.

머지 않아 이 극소형 로봇은 혈류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세포의 손상된 기능을 치유하거나 정밀함을 요하는 외과적인 수술에도 활용될 수 있으며 마이크로 장치의 생산라인에 배치되어 각종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컴퓨터의 기억매체를 고밀도화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100Gb 이상을 만들면 ‘초상자성 한계’(Superparamagnetic limit)라는 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노기술을 이용하여 한개의 원자 단위를 기억매체로 사용할 경우 최고 1,000Gb까지 기억밀도를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아주 규칙적인 원자나 분자의 배열이 필요한데 최근 매사추세츠 대학의 빈센트 로탤로 박사팀은 2나노미터(200만분의1mm)의 공간 속에 수십 만개의 황금 구슬을 자연발생적으로 정열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원자 수준의 원활한 조작을 위해서는 단일 원자를 상온에서 돌리거나 위치변환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옥스퍼드 대학의 존 페티카 교수는 상온에서 주사터널 전자현미경(STEM)의 빔 전류를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아주 매끄러운 동판 표면에 단일 브롬 원자를 위치변환하는데 성공하고 이를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유기물의 조작과 변경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서 DNA의 염기 하나하나를 편집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 외에도 나노기술을 이용, 외부 온도가 높으면 섬유의 구멍이 열리고 유해한 화학물질에 접하면 구멍이 닫히는 스마트 섬유,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분자기구, 유전자 분석 및 치료, 질병의 조기진단, 환경오염 모니터링을 위한 바이오센서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한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다.

21세기의 나노 르네상스는 이제 거부할 수 없는 분자기계문명의 도도한 흐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노기술은 생물학자, 화학자, 물리학자, 컴퓨터 및 기계공학자 등 각 분야에 축적된 기술이 힘을 합하지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한국으로서는 쉽지 않은 숙제를 함께 던지고 있어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입력시간 2000/07/1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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