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의보감] 보약의 계절 '여름'

이상기후 때문인지 예년에 비해 한달 이상 일찍 찾아온 무더위가 벌써부터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대지를 삼킬 듯 달아오르는 불볕 더위는 한밤중에도 식을 줄을 모른 채 25도를 오르내리는 열대야 현상이 이어지고 사람들의 짜증도 늘어가고 있다.

여름이 더운 것은 당연하지만 무더위는 어느 누구라도 견디기 어려운 기후인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오뉴월 더위에 암소 뿔이 물러 빠진다”느니 또는 “더위 먹은 소는 달만 보아도 헐떡인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문제는 무더위가 단순히 사람을 지치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건강에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사실 장마와 무더위로 대변되는 여름철은 사계절 중 가장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계절이다. 무더위에 땀을 많이 흘리면서 일을 하다보면 몸 속의 진액이 빠져나가 우리 몸의 저항력이 떨어지게 되고 다습한 기후는 각종 질병이 발생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더운 날씨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에어콘이나 선풍기 바람을 자주 쐬고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음식을 찾게 되는데 이럴 경우 십중팔구는 위와 장의 이상 초래와 함께 흔히 말하는 대로 더위를 먹게 된다.

더위를 먹었다고 하는 것은 한방에서 ‘주하병’이라고 하는데 극심한 두통과 함께 피부 표면에 화끈화끈하게 열이 나고 심한 갈증과 함께 땀을 비오듯 흘린다. 여기에 온몸에 힘이 빠져 무력해지고 구토, 설사와 함께 복부가 끓는 듯한 느낌과 함께 거품 섞인 대변을 보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철에 주하병에 걸리면 웬만해서는 회복이 어려워 가뜩이나 힘든 생활에 어려움을 더하게 된다. 더욱이 이러한 증세를 그대로 방치해둘 경우 가을에 접어들어 자칫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더위 먹은 증세를 낫게 하고 무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며 기운을 북돋아주어 지친 몸에 활력을 주는 보약을 복용할 필요가 있다.

흔히 많은 사람이 여름철에 한약을 먹으면 땀으로 빠져나가 소용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당장 몸에 이상이 있음에도 여름이 지난 후 약을 먹겠다며 스스로 진단,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리라면 여름철에 맥주나 청량음료를 마신 후 땀을 흘릴 경우 땀으로 알콜이나 당분이 빠져나가야 된다. 하지만 땀으로 알콜이나 당분이 배출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같은 생각은 그야말로 잘못 알고 있는 그릇된 상식이며 자칫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한약은 1년 중 어느 때라도 당시의 건강상태와 증상에 따라 복용하는 것이며 계절에 구애받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고온다습한 기후의 특성상 그 어느 때보다 땀을 많이 흘리고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 몸이 지치고 나른해지며 질병 발생 가능성이 높은 여름철은 오히려 보약을 복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름철 무더위를 이겨내고 지친 몸에 기운을 더해주는 보약으로는 ‘청서익기탕’을 비롯해 ‘청기산’, ‘황기인삼탕’, ‘생맥산’ 등을 들 수 있다.

한방 고의학서인 동의보감에 따르면 ‘여름에는 하늘의 기운이 심하게 더워져 땀이 항상 많으므로 인체의 양기가 근육과 피부, 땀구멍으로 흩어져 복부 중의 양기가 허약해지는 것이니 성질이 찬 약이나 체액을 생성하고 기력을 돕는 약재로 원기를 보해야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들 처방은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청보지제, 즉 청량성 보약으로 피로를 풀어주는 것은 물론 체내의 열기를 내려주고 원기를 북돋아주는 효과가 있다.

이와 함께 무더위를 이겨내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평소 생활 속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 냉방된 사무실에서 근무를 할 경우라도 자주 환기시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주며 맨손체조 등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또 너무 찬 음식을 가능한 절제하고 실내온도의 급격한 변화를 피하도록 하며 복부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서보경 강남동서한의원 원장>

입력시간 2000/07/1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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