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헬렌 토마스와 쥬리 문

헬렌 토마스. 만 80세가 되기까지 아직 10여일 남았다. 백악관 출입 최고참인 UPI기자는 이제 허스트 뉴스 서비스의 워싱턴 컬럼니스트가 되어 7월만에 미국 12개 신문에 등장한다.

미국 언론계는 그녀를 ‘백악관 기자단장’,‘학장’(dean)이라 부른다. 백악관 관리들은 ‘대통령의 고문자’라고 평가한다. 스스로는 ‘백악관 기자회견 첫 줄에 선 기자’(1999년 출간)라고 말한다.

문명자. 미국 이름은 쥬리 문. 대구 출생. 만 71세가 됐다. 그녀의 책,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의 필자 소개란에는 헬렌 토마스에 이어 백악관의 두번째 고참 기자다.

‘US 아시안 뉴스 서비스’의 대표이며 기자로 백악관과 국무부, 그리고 북한 중국 일본 등 세계를 누빈다. 쥬리 문의 책에는 두어 차례 헬렌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헬렌의 책에는 그 숱한 사람들 이야기중 그녀에 대한 것은 없다.

두 사람이 미국과 한국인이라는 외에는 취재 대상이 미국 대통령이라는 것과 미국 전체 라는 범위는 같다. 그래선지 이제는 서울과 세계에서 ‘은둔자’의 별명을 떨쳐버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 6월30일 세계 최초의 인터뷰의 영광(?)을 문명자 발행인에게 주며 말했다.

“내가 외신기자를 모두 사절해도 문 선생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우리 민족으로서 화해와 통일을 위해 정력적인 기자활동을 하고 계신데 마땅히 초청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녀는 북한에서는 ‘통일 운동가’로 통한다.

헬렌은 40세 때인 1960년 10월에 케네디 당선자 때부터 그의 집과 부인 자녀의 취재를 담당했다. 쥬리 문이 1961년 1월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장에 온 것은 여성잡지 ‘여원’의 도쿄지국장으로서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백악관과 취재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미국 최초로 탄핵직전 사임한 닉슨 대통령의 부인 팩 닉슨을 통해 “백악관은 좋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었다.

1971년 10월1일 기자들을 적으로 생각하는 닉슨은 이례적으로 40년 백악관 출입 끝에 은퇴하는 AP통신의 더그 코겔 기자 퇴임식을 대식당에서 갖게 하고 부부가 참석했다. 그는 헬렌에게 미국 대통령이 주는 감사패 문안을 읽도록 했다.

이어 대중에 나서기를 꺼리는 팩 여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오늘 항상 특종만 하는 헬렌 토마스에 대한 세계적 특종을 했습니다. 헬렌은 더그와 오늘 약혼식을 거행합니다.”이 발표로 늘 우울한 퇴임의 식장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기쁨의 날이 됐다. 닉슨은 그답지 않게 코멘트했다.

“이건 세기적인 큰 뉴스다. 최고의 결혼은 천당에서 하는 것이지만 최고의 신문결혼은 백악관에서 하는 것이다.”

쥬리 문에게도 팩 여사는 흐뭇함을 안겨준 퍼스트 레이디였다. 헬렌의 약혼 발표가 있기 전에 쥬리와 팩 여사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1971년 1월 그때 신민당 대통령 후보였던 40대의 김대중 의원은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미국을 방문했다. 그때 쥬리는 경향신문 주미 특파원. 박정희 대통령 부부를 잘 아는 그녀는 그러나 3선개헌의 반대자였다.

쥬리는 이희호 여사를 1971년 2월3일 팩 여사에게 소개하고 함께 사진을 찍게 했다. 팩 여사는 이 여사에게 용기를 주는 인사를 하면서 쥬리에게는 후에 “She is wonderful”이라고 했다. 서울은 발칵 뒤집혔다. 팩 여사와 이 여사의 사진이 어느 신문에 났기 때문이었다.

문 특파원은 팩 여사가 그녀의 청을 들어 준 것은 1968년 마이애미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팩 여사가 남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에 감격해 손금을 보아준 것 때문이었다. 그때 문 특파원은 “손금에는 당신이 퍼스트레이디가 된다고 써 있다”며 많은 공화당 후보 부인들 앞에서 닉슨의 후보지명을 예견했다.

헬렌 토마스는 40년동안 백악관에서 8명의 대통령을 취재했다. 다음 대통령들에게 주는 최고의 충고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말라”였다. 문명자 발행인은 다음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때 “제발 한국 전직 대통령, 야당 총재, 특정신문에 ‘놈’이나 ‘걸림돌’이라는 말을 쓰지말라”도록 충고해야 한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0/07/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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