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불의의 교통사고… 시련의 시작

조치훈에게 있어서 1986년은 바둑인생 최고의 극적 반전을 이루는 해가 된다. 1983년까지 달성한 이른바 ‘대삼관왕’의 위업이 자연스럽게 빛을 발하면서 조치훈은 마침내 ‘그의 시대’를 내놓은 과정을 밟게 되는데 때마침 발생한 교통사고는 그가 거둔 모든 업적을 내놓은 불가피한 명분이 된다.

‘천하를 석권했다’는 자신의 쾌거를 채 인식하기도 전에 조치훈은 한 축을 놓친다. 대만의 거장 린하이 펑에게 전통의 본인방을 내준 것이다. 그것도 3연승을 먼저 올렸다가 4연패를 당한다. 요즘 우리는 조치훈이 3패 후 4연승의 수혜자라고만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도 지난 세월 속에 그러한 아픔을 가진 자이기도 하다는 걸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랭킹 1,2위 기성과 명인을 갖고 있으니 조치훈은 당당한 1인자였다. 그러나 린하이 펑에게 패한 후 시련이 연속으로 기다리고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1984년 가을에 시작된 명인전 리그에서부터 였다. 이미 일본바둑가의 최대파벌로 떠오른, 아니 일본바둑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기다니 도장의 동문선배 고바야시 고이치가 등장하고 있었다.

‘타도 조치훈’을 외치고 명인전에 도전한 고바야시는 82년 본인방전에 도전했다가 되돌아간 아픔을 간직한 선배였다. 그러나 2년후 그는 그 때의 고바야시가 아니었다. 조치훈이 잠시 보유했던 서열 4위 십단을 허리에 두른 채 이젠 2위 서열까지 넘보고 있었다. 더욱이 조치훈은 충격의 3승 후 4연패를 당한 후라 어느 누구도 조치훈의 방어를 장담하지 못했다.

85년 벌어진 명인전 도전기. 불같은 고바야시의 기세에 밀려 1승3패. 일찌감치 막판에 몰린다. 그로 부터 뒷심을 발휘해 2승을 따라붙었으나 최종국에서 그만 패퇴하여 또다시 랭킹 2위까지 상실하게 된다.

또다시 최종 7국에서 패배한 후 조치훈은 고바야시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내며 대인의 풍모를 과시했지만 결국 그도 인간인지라 격심한 한탄 속에 빠져들었다. ‘과연 내가 고바야시에게 졌는가…’

고바야시의 질풍 같은 대시. 조치훈은 예감했다. 결국은 필연의 숙적이 될 고바야시와의 운명을 건 일전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예정대로 고바야시는 기성을 향해 노도처럼 달려든다. 명인을 취한 김에 이시다 요시오에게 도전하여 천원까지 쟁패, 무려 3관왕에 오른 고바야시는 1위 기성전에서 ‘대마킬러’ 가토을 잡고 드디어 기성에 도전해 온다. 숙명인가?

그 때쯤 조치훈은 온천욕을 즐겼다. 대국을 앞두고 운기조식하던 조치훈은 그해 초에도 어김없이 온천을 찾아 다가온 복병, 끈질긴 라이벌이 될 고바야시의 상념에 잠기곤 했다.

1986년 1월6일 조치훈은 온천에서 지바의 자택으로 들어온다. 기성전 제1국을 맞이하기 위한 장도에 들어선 것이다. 그날 밤 12시경 조치훈은 운명의 오토바이를 만난다. 조치훈은 집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온다. 잠을 못 이룬 탓에 군것질 거리가 생각나던 참이었다.

조치훈은 주차장에서 차를 몰아 나오는 순간 오토바이를 치는 사고를 낸다. 그 사고는 경미한 것이었다. 오토바이 운전자가 전치 1주의 경상이었으니. 조치훈은 차문을 열고 그 운전자를 부축하려고 한 순간 뒤에서 달려든 승합차가 조치훈을 그대로 치고 달아나 버린다.

밤 12시 조치훈은 병원으로 옮겨진다. 옮기는 과정에서 조치훈이 헛소리처럼 내뱉는 얘기는 선명하게 들렸으니 그것은 가족이름이었고 기성전이었다. 그리고 주최사인 요미우리신문의 이름도 섞여 있었다. 기성전 제1국은 고작 9일을 남겨둔 날이었다. 아, 조치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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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07/2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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