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들이 점치는 인류의 운명

■ 미래는 어떻게 오는가?/가야넷 펴냄

인간 유전자의 비밀이 풀리기 시작했다.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단계에 이르렀고 사람들은 인류가 질병으로부터 해방될 날이 머지 않았다며 흥분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유전자 해독기술이 인간을 개량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발달된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세상을 기계적으로 만들지도 모른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기술의 진보는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인류는 과연 앞으로도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1998년에 상영된 미국 영화 ‘가타카’는 우리의 미래를 어두운 시각으로 그렸다. 영화 속 미래 사회에서 주인공 에단 호크와 우마 서먼은 사랑의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한 움큼의 머리카락을 서로 교환한다.

미래 커플들은 머리카락에 담긴 상대의 유전자를 분석, 우수한 후세를 생산할 확률이 높을 때만 사랑한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우성인간은 성공하고 자연스런 사랑으로 태어난 아이는 하류 신분으로 전락하고 만다.

20세기 말부터 가속도가 붙은 기술발전으로 인류는 이제 눈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기술 발전에는 밝은 미래만 있는 게 아니다. 가타카와 같은 우울하고 어두운 면도 있다.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

이 책은 세계적 석학 30인의 입을 통해 안개 속에 가려진 미래를 조금씩 걷어내보인다. 움베르토 에코, 노엄 촘스키, J. K. 갈브레이스 등 세계 학계와 지성계를 움직이는 거목들이 등장, 그들이 보는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철학에서 유전학, 우주탐사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궁금했던 미래에 대한 의문들이 시원하게 풀린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학자들의 미래 예측, 또는 서점가에 널린 수많은 미래서적들과는 달리 이책은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 설득력을 높였다. 막연하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지식인들답게 논리적인 결론을 제시한다.

“미래에는 여성각료로만 구성된 정부가 탄생하고 이 땅에서 전쟁이 사라진다.”(프랜시스 후쿠야마), “오늘날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듯 아이들에게 감정과 정신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칠 것이다.”(대니얼 골먼), “인종문제가 해소된 21세기를 기대한다.”(치누아 아체베), “앞으로 30년 이내에 임신을 위한 섹스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젊은 남녀는 생식은행에서 우량한 난자와 정자를 고르기만 하면 된다.”(칼 제라시) 등등.

21세기 인류는 미래학자 아서 C 클라크의 예측처럼 화성을 정복하는 것은 물론, 태양계라는 좁은 시야에서 탈피, 다른 은하계로 진출할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생활에 얽매인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류의 운명과 우주에 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런던 타임스 기자인 저자가 석학들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미래의 의문을 풀어나가 읽기도 편하다. 마치 석학들과 직접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동안 세계적 지성들의 글을 읽고는 싶었지만 어려워서, 혹은 책이 너무 두꺼워서 포기했다면 이 책에 도전해 보라. 석학들의 시원한 숨결이 무더위를 쫓는다.

송기희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7/26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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