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과소비] 청소년 과소비와 탈선 부추기는 어른들

현대백화점은 최근 중국 명품차 코너를 개설하면서 대나무 잎으로 110년 숙성시켜 중국 황실에 진상했다는 3,000만원 짜리 천량차를 선보였다.

삼성플라자 분당점은 이탈리아 의류업체인 우노아레가 18K 금으로 만든 1,471만6,000원하는 스카프와 492만원 짜리 팔찌를 목좋은 매장 한가운데에 전시했다.

이에 뒤질세라 갤러리아백화점은 연봉 1억원 이상의 고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명품쇼핑몰 ‘루이지닷컴’을 오픈, 80만원짜리 페라가모 구두 등 최고급품을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롯데는 본점 1층에 샤넬 전문매장을 확대 개설, 상류층을 상대로 한 판촉전을 벌이고 있다.


뿌리깊은 호화 사치 풍조

국내 백화점들이 이처럼 초호화 수입품 판촉 경쟁을 벌이는 것은 ‘귀족 마케팅’이라는 신종 판매 전략을 펴기 위한 것이다.

이들 백화점 담당자들은 “소비자들에게 세계 최고의 명품을 취급하는 백화점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줘야 중상류급 제품도 덩달아 잘팔린다”며 “예전 같으면 언론에 외제 사치품을 취급한다고 지적받으면 손님을 줄었는데 이제는 그럴수록 오히려 홍보 효과가 생겨 더 잘 팔린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한마디로 호화 사치 풍조가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만연해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자란다. 어른들의 행동은 알게 모르게 우리 청소년들에게 스며들어 그들의 생활 습관과 가치관을 형성한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과소비 풍조와 그에 따른 탈선 행각도 근본적으로 따지면 상혼에 물든 어른들이 자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냉정하게 우리 주변을 한번쯤 둘러 보면 청소년들을 유혹하는 어른들의 덫이 사방에 깔려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가깝게 접하는 TV를 보자. 1990년대초 민간방송이 허용된 이후 국내 TV 방송의 쇼, 코미디 같은 오락 프로그램은 온통 ‘10대를 위한, 10대에 의한, 10대들의 잔치’로 전락해 버렸다.

쇼 프로그램은 화려한 옷과 액세서리로 치장하고 머리는 울긋불긋 염색을 한 10대 가수들의 현란한 율동만이 있을 뿐이고, 코미디 프로는 청소년들의 은어와 유행을 이끌며 그들의 생활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드라마에선 재벌들의 사치스런 돈잔치가 단골 주제로 나오고 일부 퀴즈 프로그램은 즉석에서 2,000만원의 현금을 준다며 한탕주의와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방송국이 황금시간대 시청자 타깃층을 10대에 맞추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10대 청소년들은 쉽게 감동하고 반응하기 때문에 시청률 제고 측면에서 어느 계층보다 효과가 크다.

그러나 이보다 큰 이유는 상업 광고적 측면이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광고주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주수입원인 광고가 따라 붙는다. 광고주들이 가장 원하는 프로그램은 두말할 것도 없이 10대를 겨냥한 상업광고다. 10대 청소년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유행에 유독 민감해 광고에 쉽게 현혹될 뿐만아니라 곧바로 상품 구매로 이어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다 보니 TV 프로그램의 제작 방향이 10대 청소년들의 눈과 귀를 끌어 모으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온통 10대들의 구매욕 자극

베일에 싸여있는 청순한 용모의 10대 소녀를 등장시켜 대히트를 친 011 TTL 광고, 평범한 외모의 10대를 일약 ‘버거소녀’라는 인기스타로 만든 롯데리아 광고 등 화장품 의류 신발 인터넷포털사이트 등 전 분야의 광고가 대부분 10대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것들로 가득차 있다.

K광고 기획사의 한 관계자는 “상업 광고가 가장 큰 효력을 발휘하는 계층은 두말할 것도 없이 10대 청소년들이다. 그들의 구매 패턴은 ‘소비’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유행’을 따라가기 위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제조업체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유행을 이끌어 가는데 광고 기획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상혼은 초등학교 저학년, 심지어는 유치원생들에게 까지 뻗치고 있다. 최근 2~3년간 어린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는 포켓 몬스터 캐릭터 시리즈와 미피 인형 캐릭터 등은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자기가 원하는 포켓 몬스터 캐릭터 하나를 얻기 위해 먹지도 않을 과자와 빵을 수십개씩 사는 어린이의 모습은 이제 낮설지 않은 풍경이다.


“어른들이 먼저 자숙해야”

부모의 잘못된 자식 사랑이 ‘귀족 청소년’을 만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내자식 만은 무조건 최고’를 지향하는 부유층 부모들중에는 자녀들을 외제 최고급 의류와 신발로 치장하고 월 수십만원의 용돈을 줘 과소비와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강남 일부 부유층 가정에서는 고등학생 자녀에게 고급 스포츠카를 사주고 신용카드까지 만들어 주고 있다. 서울 강남 대치동에 사는 박모 주부는 “지난달 유치원에 다니는 여섯살바기 딸아이의 발레 발표회에 갔는데 한 부유층 자녀가 금레이스가 달린 80만원 짜리 수제 발레복을 입고 나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문용린 교수(교육학과)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들의 과도한 소비 성향은 전적으로 부모와 사회의 책임”이라며 “건전하고 효율적인 소비 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른들이 먼저 자숙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0/07/26 17:00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