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칼럼] 왜 꼭 4.25 인치이어야 하나

벌써 십여년 전 일이 돼버렸지만 서울 근교의 유명 골프 코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은 36홀을 가진 큰 골프장이었는데 서코스라 부르는 곳은 거리가 비교적 짧고 아기자기한 반면 동코스라 부르는 곳은 긴 거리에 난이도가 높은 레이아웃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동코스에 있었다. 그린 온을 시키고 의기양양하게 올라서 보니 이건 홀 컵이 엄청 크지 않은가? 이유를 물어본 즉 대답 또한 걸작이었다. “진행이 너무 느리기 때문이예요.” 지금 회상에도 그때 홀 컵 크기는 정규사이즈의 두 배는 넘을 것 같다.

또한번은 경기도의 어느 리조트에 속해 있는 코스에서 목격했던 일이다. 당시는 장마가 갓 지나간 상황이었고 그 지역에는 집중호우도 내렸었다. 그곳의 그린 중 몇 군데는 비 피해를 많이 입어 홀은 아예 찾아볼 수 없었고 그 대신 그린 한쪽 켠에 분필 비슷한 것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고 그 지름도 무지막지하게 컸다.

골프의 종착역이자 희열의 정점이 ‘달그락’ 하고 볼이 작은 홀 컵에 떨어지는 소리라면 두 가지 경우 모두 김이 빠지는 라운드였다는 추억밖엔 남기질 못한다. 습관에 젖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종이 한장 차이로 퍼팅이 외면당할 망정 지금 우리를 난감하게 하는 4.25 인치의 홀 컵 사이즈는 항상 지켜져야 한다.

스코틀랜드의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두사람이 골프를 하고 있었다. 그곳의 그린은 초기엔 그저 코스의 끝, 비교적 평평한 지형에 낫으로 잔디를 조금 짧게 깎은 곳에 불과했고 홀도 적당한 곳에 모종삽으로 적당한 크기로 파내 만들었다.

이렇다 보니 사람들이 홀 주위를 몇 차례 왔다갔다하거나 비라도 온다 치면 홀의 벽은 힘없이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다. 마침 이런 상황에 처한 두사람은 근처에 뒹굴던 토관을 발견했고 무너져 내린 자리에 토관을 박고 퍼팅을 시도하였다. 이것이 홀 컵이 생긴 유래요, 그때 토관의 지름이 바로 4.25 인치(10.79cm)다.

홀이 있었다면 멀리서 그것을 향해 조준할 수 있게끔 해주는 장치도 꼭 있어야 했을 것이다. 삽으로 파던 토관을 꽂았던 그 위에 뭔가를 세워 놓아야 했다는 의미이다. 처음에야 막대기 밖에 더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도 키가 너무 크면 북해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얼마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유난히도 몽당한 핀의 모습을 이런 전통을 근거로 세인트 앤드루스는 지금도 고집하고 있다.

막대기를 세워 놓았다면 그것만으로 눈에 잘 띌까? 초기에야 골프채도 그렇겠지만 특히 볼은 페더볼이나 거터퍼처볼이었으므로 비거리가 얼마 되질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용품과 볼의 질이 놀랍게 발전하고 코스의 길이도 늘게 되었다.

이러다 보니 막대기의 끝에 천조각이나 바구니 같은 것을 매달아 먼 거리에서도 식별을 쉽게 하였는데 이것이 1,800년대 끝 무렵이었다. 당시 막대기 끝에 매달린 장식이 여성 사이에 유행하던 머리 핀(pin)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해서 그대로 핀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핀도 모두가 고탄성의 금속류로 돼있고 홀 바닥에 견고하게 꽂게 되어있어 아무 문제가 없으련만 아프리카의 어느 곳은 자고 나면 핀이 없어진다고 한다. 동네아이들이 가지고 가서 유용한 생활도구로 전용하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그곳의 코스에는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조차 볼 수 없는 고풍스런 진품 막대기 핀이 꽂혀 있다고 한다.

박호규 골프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0/07/2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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