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미국대선] 부시 '선택'에 민주당 '딴죽'

러닝 메이트 딕 체니 내정, 고어측선 흠집내기에 안간힘

‘결국 아버지 부시가 아들에게 가장 합당한 베이비시터(Baby sitter)를 선택했다.’

미 공화당 대선후보 조지 W 부시 텍사스주지사가 7월25일 딕 체니 전 국방장관을 사실상 런닝메이트로 지명하자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조엘 아첸바흐는 “체니는 부시 주지사에게는 아버지가 타던 구형자동차나 다름없지만 안전하고 안락하다”며 이렇게 평했다.

또한 뉴욕타임즈도 “부시 주지사가 체니를 선택한 것은 대선의 승부는 이미 끝났음을 과시한 것”이라며 “런닝메이트 지명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감안하지 않은 채 안방살림(행정부)를 돌볼 충실한 살림꾼을 내정했다”고 분석했다.


아버지가 행정조교 및 일꾼으로 천거

사실 부시가 체니를 부통령후보로 지명한 것은 다소 의외라 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부통령후보가 대선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별로 크지 않다. 역대 선거결과를 분석해보면 런닝메이트가 유권자의 투표에 미치는 영향은 2% 내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올해처럼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 2%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자신보다 5살이나 많은 ‘구세대 인물’을 짝으로 삼았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부시 주지사의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권고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게 미국 언론의 설명이다.

신의 밑에서 국방장관으로 일했던 체니의 성실성과 충직성을 높이 평가한 부시 전 대통령이 아직도 못미더운 아들의 행정조교 겸 일꾼으로는 체니만한 사람이 없다고 천거했다는 것.

부시 부자(父子)의 공동선택이라 할 체니의 지명에 대해 공화당 지도부는 “공화당의 전통에 가장 걸맞는 포석”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선거운동 과정에서 주지사 재선경력에 불과, 부시의 국정수행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과 월남전 참전경력이 있는 고어에 비해 주방위군 복무에 그친 점 등이 취약점으로 꼽혀왔다.

공화당 진영은 6선 하원의원과 대통령 비서실장, 국방장관 및 기업체 사장 등을 거치면서 공직과 사회활동에서 축적된 다양한 경력이 바로 부시의 약점을 완벽히 보완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공직생활중 체니가 항상 윗사람에게 신중하면서도 충실한 조언자역을 견지한 점으로 미루어 직설적 성격의 부시와 원만한 팀웍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 중진의 입장에서 보면 하원과 내각 경험을 두루 쌓은 체니가 당과 행정부를 잇는 가교(架橋)역할을 원활히 해낼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체니 선택 후 지지도 급상승

공화당측의 이같은 기대에 걸맞게 여론조사 결과 부시는 체니를 선택한 후 지지도가 급상승했다.

갤럽이 체니 지명 직후인 7월25일부터 이틀동안 CNN 및 USA TODAY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부시는 그간 4-6% 포인트 정도 리드하던 지지도를 11% 포인트로까지 벌렸다. 10% 포인트 이상의 우세는 이미 안정권에 진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시가 체니를 선택한 데 대해 민주당측은 “체니 정도라면 해볼만 하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의 앨 고어 진영은 체니에 대해 언론이 제기하고 나선 각종 흠결을 최대한 이슈화할 경우 상당한 성과를 볼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현재까지 체니에 대해 불거져나온 문제점은 과거의 병력(病歷)과 원유개발사업체 운영과정에서 부시와의 유착관계, 하원시절의 투표성향 및 힐러리 여사 못지않은 극성부인 및 동성애자 딸 등 가족문제 등이다.

먼저 건강의 경우 체니는 지난 1978년과 1984년, 1988년 세 차례에 걸쳐 심장발작으로 고생한 데 이어 1988년에는 동맥우회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민주당측은 체니가 동맥수술 이후 별다른 이상이 없는 데다 최근 정밀건강진단 결과 정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지장이 없는 완벽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부시 진영의 주장을 물고 늘어질 계획이다.

역대로 부통령은 대통령 유고시 즉각 직위를 물려받아야하는 정치적 위상때문에 건강이 가장 중요한 자질의 하나로 꼽혀왔다는 점을 부각시킬 경우 어느 정도 타격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측은 한때 정유회사를 운영했던 부시처럼 체니가 현재 텍사스에서 석유시추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점도 문제삼을 예정이다.

특히 날로 치솟고 있는 휘발유값이 정유사의 담합횡포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측으로서는 부시-체니팀이 ‘오일(Oil)팀’이라며 주요 타깃으로 삼을 태세다.

또한 체니가 운영해온 홀리버튼사가 최근 큰 흑자를 기록한 점과 국방장관 재직시 진두지휘한 걸프전에서 대량파괴된 이라크의 석유시추시설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홀리버튼사가 많은 공사수주를 따낸 데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언론들은 사담 후세인과의 전쟁에 앞장 섰던 체니가 그 전쟁 덕분에 사업체를 키운 점은 ‘공익과 사익과의 유착’을 전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민주당선 병력·가족문제 등에 이의 제기

체니는 또한 하원의원 시절이던 1986년 남아공의 인권지도자 넬슨 만델라 석방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사실이 드러나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체니 본인은 공화당의 당론에 따랐다고 변명하고 있으나 여의치않은 상황이다.

이밖에 ‘진실을 말한다-우리 국가와 문화가 건전한 상식을 잃은 이유’, ‘국회의사당의 제왕-9명의 강자가 어떻게 미국의 역사를 바꾸었나’ 등 논쟁적인 주제의 저서를 펴내고 한때 CNN의 시사대담프로 사회자로 활약하는 등 남편 못지않은 왕성한 사회활동을 해온 체니의 부인 린 여사도 변수로 등장할 조짐이다.

체니의 고교시절 프롬파티(졸업무도회) 파트너였던 린 여사는 체니 못지않은 강경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민주당측에서는 ‘맹렬여성은 정작 여성이 혐오한다’는 선거경험칙을 최대한 활용, 린 여사의 보수적 발언록 등을 들춰낼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체니 자신은 정작 국방장관 재직시 동성애자의 군복무를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딸 메리가 동성애자라는 점도 부담이 될 전망이다. 메리는 최근까지 쿠어스 맥주회사의 동성애자 모임 홍보책임자로 일하는 등 동성애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체니에게 집중되고 있는 이같은 지적은 아직은 휴화산 상태에 머물러 있다. 정작 진검(眞劍)승부는 민주당측이 체니의 대항마로 누구를 선택할지가 드러난 이후에 본격화할 전망이다. 고어 진영은 공화당전당대회 페막 직후인 8월4일께 런닝메이트를 공식발표할 예정이다.

윤승용 워싱턴 특파원

입력시간 2000/08/0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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