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미스테리] 나찌는 핵무기를 개발 못했나? 안했나?

히틀러가 핵무기 개발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독일의 대표적인 핵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버그가 1941년 9월 노벨상 수상자인 네델란드의 닐 보어를 찾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보어로부터 핵무기에 관한 지식을 배우러 갔는가, 아니면 나치의 연구를 방해하려는 의도였나.

193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과학자들이 핵분열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하자 많은 사람들은 독일이 세계 최초의 핵무기 보유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1936년 8월 아인쉬타인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이같은 위협을 경고하기도 했다.

나치의 핵무기(A-bomb)개발을 두려워한 미국은 유럽의 망명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위한 ‘맨하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지만 연합국은 나치를 퇴각시킨 뒤 유럽을 샅샅히 뒤졌지만 핵원자로나 핵무기의 원료인 우라늄-235 등은 찾아내지 못했다.

역사학자들은 독일이 핵무기 개발에 실패한 원인을 하이젠버그에게서 찾고 있다. 하이젠버그는 32세때 불확정성의 원리로 노벨상을 받았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하이젠버그의 삶이기도 했다.

하이젠버그는 1939년 여름 미국을 여행하면서 망명제의를 받았지만 거부하고 독일로 돌아갔다. 그는 히틀러를 깡패로 간주했으며 나중에 독일 과학계를 구하기 위해 조국에 머물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의 많은 물리학자들은 하이젠버그가 독일로 돌아가 독일 치하에 있던 네델란드의 보어에게서 핵무기에 관련된 정보를 얻으려 했다고 비난했다.

독일이 핵무기 개발에 실패한 원인과 하이젠버그의 행동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이젠버그의 지지자들은 만약 그가 핵무기 개발을 원했다면 나치정권의 실세인 알버트 스피어 전쟁장관에게 한 1942년 브리핑에서 핵무기 개발 가능성에 대해 말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독일의 물리학자들은 원자로만 구할 수 있다면 우라늄 대신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하이젠버그는 이 브리핑에서 이같은 생각을 실현 불가능하다고 폄하하고 단지 연구비 수백만 마르크를 요청했다.

독일이 패망한 뒤 하이젠버그와 그의 동료 9명은 영국에 억류됐다. 1992년 공개된 도청기록에 따르면 하이젠버그는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엄청나게 놀란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는 핵폭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하이젠버그가 코펜하겐에 간 이유는 무엇인가. 하이젠버그는 원자폭탄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보어에게 이를 말했고 보어는 충격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뒤 하이젠버그는 로버트 중크 기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시 단순히 물리학자로서 윤리적 책임에 대해 토론했다”고 썼다.

그러나 보어는 한 편지에서 하이젠버그의 주장을 강력히 반박했으며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이 편지를 부치지도 않았다. 이 편지는 보어 사망 50주년을 맞아 오는 2012년에 공개될 예정이다.

정리 송용회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03 11:40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