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스타열전] 신동주 한아시스템 사장(上)

인터넷 장비업체 한아시스템의 명함에는 특이한 게 하나 있다. 맨위에 작은 글씨로 쓴 ‘Meeting Date’다.

신동주 사장에서부터 말단직원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역할에 따라 명함의 기재내용이 조금씩 다르나 Meeting Date만은 누구에게나 꼭 있다. 언뜻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한아시스템이 지향하는 고객우선, 1대1 마케팅의 이야기를 들으면 왜 그렇게 하는지 수긍이 간다. “언제 만났더라…”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상대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한 방법인 까닭이다.


실패경향으로 얻은 마케팅 철학

기술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인터넷 장비업체가 마케팅을 위해 이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는 뭘까? 신 사장은 “이미 자리를 잡은 중견 벤처기업에게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냐고 묻는 시절은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1회용 라이터를 꺼내 “이 라이터를 만드는데도 디자인, 소재, 뚜껑, 라이터돌 등 몇 가지 요소기술이 필요한데 그것을 모두 가져야 했던 시절은 지났다”면서 “기술개발이나 생산은 분야별로 다른 회사와 손잡고 같이 하면 되지만 마케팅은 독자적으로 끌어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핵심 경쟁력은 대개 연구개발이나 소프트웨어 수준, 생산능력 등에서 나타나는데 그것들은 마케팅과 연계가 안되면 제대로 평가를 못받죠. 아무리 뛰어난 기술로 개발한 신제품이라도 3개월만에 시장을 장악하지 않으면 경쟁사가 더 나은 제품을 더 싼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는게 정보통신(IT) 업계입니다. 그러니 마케팅에 더 비중을 둘 수 밖에 없습니다.”

신 사장의 이같은 마케팅 철학은 1994년 뼈아픈 실패에서 체득한 것이다.

당시 한아시스템은 괜찮은 스위칭 허브(네트워크상의 모든 케이블을 하나로 모으는 장치)를 개발했는데 마케팅 능력의 부족으로 6개월 정도 어물어물했더니 곧 경쟁사가 새 모델을 내놓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지금처럼 기술개발이 빠른 시대에는 6개월도 길죠. 제품출시 3개월전에 신제품 마케팅에 들어가고 출시되면 대량으로 시장에 깔아야 합니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금방 6개월이 지나는데 그러면 이미 늦죠.”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한아시스템이 ‘빠른 승부’를 고집하는 것은 조직 자체가 아직도 젊기 때문. 요즘 잘 나가는 대부분의 벤처기업보다 적어도 3~4년은 이른 1991년에 창업됐지만 구성원 개개인은 여전히 젊고 활기에 넘친다. “한아시스템에서는 다른 회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젊은이의 힘이 느껴진다.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밤늦은 시간까지, 혹은 밤을 새워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연구원들이 있다. 주말에도 회사에 나와 일하고 있는 연구원을 보면, 청춘 사업은 언제하려고 그러는지 걱정이 앞선다.

얼마 전까지 노총각으로 직원들의 걱정 속에 지내다가 마침내 결혼하신 김모 과장님, ‘나 장가가게 소개 좀…’을 외치고 계시는 김모 대리님 등.” (한아시스템의 홈페이지 중에서)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신 사장 역시 젊음을 아낀다. 직원들과 포장마차에서 함께 술마시고, 같이 볼링치고, 스키장에서 서로 부딪쳐 넘어지면서 차곡차곡 쌓은 의리에다 젊음, 패기, 도전정신에 불을 댕기고 유지해온 그다.

그렇다고 한아시스템이 기술을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탁월한 엔지니어였던 신 사장을 비롯해 1991년 창업 동지가 모두 엔지니어였던 만큼 기술 하나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기술개발에서 손을 뗀지 10년 가까이 되지만 마음먹고 달라붙으면 뭐를 못하겠어요?”라는 신 사장의 자신감은 그의 과거 이력을 되짚어보면 “과연!…” 소리가 나오게 돼 있다.


인터넷 장비 국산화 의욕으로 창업

일찍부터 손재주가 많았던 신 사장은 대학원(연세대 전자공학)시절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었다.

특히 S통신의 통신장비 개발프로젝트에 참여해 남다른 실력을 내보였다. 금방 입소문이 나면서 주임연구원으로 금성사에 스카웃됐고 16비트 컴퓨터, 프린터, 그래픽 터미널, 유닉스계열 컴퓨터 등이 그의 손을 거쳐 국산화됐다.

주변에서는 그의 뛰어난 안목과 감각에 감탄, ‘이사급 연구원’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때 불타오른 IT 네트워크 장비의 국산화 의욕이 창업의 밑거름이 됐지만.

한아시스템이 내세우는 주력제품은 인터넷 라우터다. 인터넷상의 정보를 PC로 분배해주는 장치인 라우터의 비중은 지난해 총매출 210억원의 28.8%. 돈으로는 62억원에 이른다. 전체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품은 여전히 네트워크 기본장비인 랜스위치(42%)이지만 차츰 비중이 줄어드는 상태다.

“‘인터넷 장비라면 한아시스템’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도록 다양하고 강력한 인터넷 장비들을 제조, 공급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8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까지 순수 우리기술로 개발한 라우터는 정보통신부 체신분산망에 1,700여대, 한국통신 KORNET망에 2,000여대가 공급되는 등 국내 라우터 시장을 장악했어요.”소형 라우터 분야에서 한아시스템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70%를 넘는다.

라우터가 인터넷 분야에서 하이테크 고급 장비인데다 워낙 유명해서 그렇지 한아시스템은 NIC((Network Interface Card)에서부터 스위칭 장비, ISDN 네트웍 장비, NMS(Network Management System)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을 통해 인터넷 장비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모두 최초로 국산화한 장비들이다.

“장비 국산화요? 어렵죠. 그러나 꼭 필요한데 80년대 전화교환기(TDX)를 국산화한 이후로 IT 장비분야에서 국산화 실적은 별로였어요. 대기업조차 성공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과 투자후 회수기간이 길다는 이유 등으로 네트워크 제품의 국산화는 철저하게 외면했어요. 100% 외제를 수입해 사용했어요. 그것을 보면서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바로 그 일이 통신, 컴퓨터, 네트워크 등 각각의 분야에서 기술개발에 참여했던 신사장에게 꼭 맞는 일이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연구소에서 7년이상 기술개발에 앞장서온 4명이 신사장을 중심으로 모였다. 1991년 7월 한아시스템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그러나 처음부터 기술개발에 몰두할 수는 없었다. 뛰어난 기술력을 밑천삼아 다른 기업의 기술개발을 대행해주며 자금을 모아야 했다. 이런 작업이 그에게 기회를 안겨주었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0/08/0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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