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조치훈의 투지에 불지른 '기권패'

조치훈의 불의의 교통사고-. 그것은 수많은 억측들을 낳았다. 일본바둑계를 점령하고 있는 조치훈의 기세가 꼴보기 싫어서 일본 우익단체들이 저지른 예정된 테러라는 설이 그중 하나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미궁에 빠진 그 사건은 한국측에서도 잔뜩 신경을 쓰고 곁눈질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식 발표는 우연한 교통사고일뿐이었다.

1986년 1월 6일 밤 11시30분. 운명적인 사고를 당한 조치훈은 하루 동안 온갖 검사로 고통을 당했고 그 다음 하루는 수술이 가능한지 여부를 따져보고, 조치훈의 대국이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기나긴 시간이었다.

진단은 8주였다. 오른쪽 다리의 정강이뼈가 골절해 밖으로 튀어나갔고 왼 무릎의 인대가 끊어졌으며 왼 손목은 부러졌다. 수술후 두 다리와 왼손에 깁스를 하였다. 그나마 천우신조인 것은 오른손과 뇌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래, 아직 뇌와 오른손이 남았다.’조치훈은 자신이 바둑을 둘 수 있다는 사실에 감복해한다. 박복한 인연을 탓하기 전에 생각할 뇌와 바둑돌을 나를 오른손이 건재하다는 것에 대해 하늘에 고마워했다.

사실 전치 8주라고 했지만 훗날 형인 조상연의 언급에 따르면 전치 17주였다고 하니 조치훈의 부상이 얼마나 깊은 상태였는지 짐작하기 바란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치훈은 대국 때마다 신경통 환자처럼 무릎을 덮을 조그만 천가리개를 가지고 다닌다.

운명의 기성전. 난적 고바야시가 조치훈의 영역을 하나씩 접수해오는 마당에 운명의 장난까지 일어날 줄이야! 그러나 조치훈의 생각은 사고 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당연히 바둑을 두어야한다는 것이었다.

주치의는 9일로 예정된 시합을 절대 치를 수 없다고 완강히 말린다. 조치훈은 드센 주치의의 고집에 바둑판앞에 앉아보지도 못한 채 제1국을 내어준다. 하기야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누운 지 채 하루밖에 되지 않은 사람을 전장에 내보낸다는 건 죽으라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제1국은 기권패. 일본기원에게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사실 기권패를 꼭 선언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고인지라 당연히 연기를 해도 괜찮을 것을 일본기원이 주최사의 요구라는 이유를 들어 기권패를 선언한 건 좀 지나친 감이 없지않았다. 거꾸로 사고의 당사자가 고바야시였다면 과연 그들은 기권패를 시켰겠는가.

이 부분은 세월이 지나도 야속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런 일련의 ‘비토’는 더욱 더 조치훈의 의지를 키우는 비료 역할을 했을 뿐이다.

사실 주최신문사 입장에서 대국을 예정대로 치른다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신문에 매일같이 관전기가 실린다. 마치 연재소설처럼 매일매일 바둑팬을 위한 바둑해설란이 고정배치되어 있는데 시합을 그르면 실을 재료가 없어지는 것이다.

소설이야 혹시 누가 대필로 잠시 쓴다고 해도 별일이 없겠지만 바둑은 기보가 없으면 기본적으로 연재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전혀 후속수단이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사고 내용을 팬들이 알고 있고 시합을 못한 만큼 다른 기보로 당분간 면을 메우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전혀 일본답지 못한 경직성이었다.

그즈음 상대인 고바야시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사실 한국팬이 고바야시만큼은 꺾어달라고 요구하는 소리가 지금까지도 드높은데, 본의 아니게 고바야시는 한국팬의 공적(公敵)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고 이틀 후 요미우리 석간에 고바야시의 심경이 실렸다. “조선생은 다리골절이기에 당연히 앉을 수 없겠지요. 하루라도 빨리 쾌유하기를 빕니다만, 저는 의자대국도 관계없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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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08/0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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