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필라델피아의 축제

필라델피아는 미국 역사상 상당히 의미있는 도시이다. 1776년 7월4일 제2차 대륙회의(the Second Continental Congress)에서 독립선언서를 채택한 곳이며 한동안 미국의 수도이기도 한 곳이다.

몸체에 금이 가있어 서글퍼 보이는 자유의 종(Liberty Bell)이며 독립선언서를 채택한 Independence Hall 등도 들러볼만 하지만 Penn's Landing에서 펜실베니아주와 뉴저지주를 이어주는 현수교를 바라보면서 쌍둥이 빌딩이 눈에 띄는 필라델피아 시내 야경을 바라보는 것은 무척 인상적이다.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영화 ‘록키’에 나오는 계단 많은 필라델피아 미술 박물관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러한 필라델피아에서 지금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다. 조지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Compassionate Conservatism’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잃어버린 백악관을 8년만에 되찾아 부자세습(?)의 꿈을 이루려고 하고 있다.

Compassionate Conservatism이라고 하면 ‘온정적 보수주의’쯤으로 번역될 수 있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보수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고 자유경쟁에 의한 적자생존을 사회의 기본원리라고 생각하는 강자의 이념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기에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공화당은 백인과 대기업 부유층을 지지계층으로 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유색인종 및 노동조합이나 빈곤층의 지지를 받지 못해왔다. 아울러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강한 미국을 주창하며 높은 도덕성과 함께 Family Value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래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으며 낙태를 반대하고 있다. 많은 보수적 기독교 단체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필라델피아에서의 이번 전당대회는 지금까지와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Compassionate Conservatism을 내세움으로써 보다 공화당의 전통적 지지계층 이외에 흑인이나 아시아계, 라틴계 등의 소수 민족에게 문호를 개방하려하고 있는 것이 엿보인다.

걸프전의 영웅이었던 콜린 파웰 전 합참의장이 나서서 “링컨이 만든 당이라는 것에 보다 충실하자”는 것은 바로 이같은 맥락이라고 보인다. 잘 알다시피 링컨은 노예해방을 선언했던 대통령이다.

미국 공화당의 뿌리는 건국 초기까지 올라간다. 각 식민지별로 독립된 국가를 형성해서는 안되며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연방 정부를 구성하여야 한다는 연방주의자들이 공화당의 사상적 뿌리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는 1854년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며 창당된 정당이다. 반면 민주당은 1832년에 창당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창당 당시의 이념이 따르면 흑인 등 소수민족은 공화당을 지지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대공황 및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흑인 등 소수 민족은 민주당의 지지계층으로 돌아섰다. 링컨의 창당 이념을 되새겨 그러한 소외계층의 지지를 되찾자는 것이 이번 필라델피아 전당대회에서 보내는 공화당의 새로운 메시지인 것 같다. 단순히 표를 인식한 선거전략만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밖의 다른 분야에서는 전통적인 공화당적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강한 미국의 건설이라든지, 국제교역에서의 공정한 경쟁 등을 강조하고 있다. 국제교역에서의 공정한 경쟁은 우리나라와 미국간의 무역분쟁의 소지가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강한 미국의 건설이라는 목표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우리나라와 미묘한 입장 차이를 가져올 수도 있다. 남북한이 냉전구도 아래서 극한대치를 해왔을 때는 공화당의 매파적 입장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 한국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공화당 정부에 대하여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대결에서 대화로 바뀐 새로운 남북관계 아래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다.

필라델피아 축제가 끝나면 2주 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또다른 축제가 열린다. 이번에는 백악관 뿐만 아니라 상·하 양원까지 재탈환하겠다는 민주당의 전당대회다. 그리고 여름휴가철이 끝나는 9월초부터 미국 전역은 대통령 선거 열기로 후끈 달아오를 것이다. 백악관에 부자 세습이 이루어질지, 아니면 일당 세습이 이루어질지 두고볼 일이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0/08/0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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