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양보할 수 없는 1위 싸움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6월말 민주당 관계자들을 만나 “8·30 전당대회는 차기 대권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최고위원 경선에서 1등을 했다고 대권후보가 되는 것이 아니니 공연히 앞서나가지 말라’는 충고이면서 차기 문제의 조기 공론화에 따르는 권력누수를 차단하겠다는 단도리인 셈이다.

후계자를 일찌감치 부각시켜 힘을 실어주는 것은 분명 DJ의 정치 스타일은 아니다. 민주당 지도부 역시 김 대통령의 집권후반기 국정운영 뒷받침을 위한 당 체제정비를 이번 전당대회의 최우선 목표로 강조하고 있다.

대선 후보를 뽑는 2002년 전당대회까지의 시간적 이격을 고려할 때 이번 경선에서의 성적표를 차기와 그대로 직결시키기는 무리가 있다.

정치판에서 2년은 상황이 변해도 몇번은 변할, 장구한 세월이다. 그러나 이번 경선은 정권교체 이후 처음으로 대의원의 직접 투표를 통해 지도부를 선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결코 간단치 않다.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할 경우 향후 당권 및 대권 구도에서 적어도 선점자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리란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유력한 차기 주자로 얘기되는 한화갑 지도위원과 이인제 상임고문의 1위 경쟁은 이번 경선의 가장 큰 관전포인트다.


향후 입지 다질 중요한 일전

공식선거전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세력분포나 여론조사 결과를 볼 때 한 위원이 가장 앞서 달리고 있다는데 모든 후보진영의 분석이 일치한다. 당내 최대 계파 동교동계의 단일후보란 점에서 한 위원의 선전은 일찌감치 예견되었다.

가장 큰 변수였던 동교동계 맏형 권노갑 상임고문의 출마여부는 권 고문이 불출마를 선택함으로써 일단락됐다. 한 위원은 동교동계 의원 뿐만 아니라 영남권 지구당 위원장 및 수도권 개혁성향 지구당 위원장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다른 후보진영의 한 관계자는 “당초 과반수 정도의 대의원이 한 위원을 지지할 것으로 봤지만 현재의 분위기로 볼때 60~70%의 지지도 가능할 것 같다”고 한 위원의 득표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권 고문이 출마했더라도 한 위원이 1위를 차지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적어도 현재까지는 한화갑-이인제의 ‘2강 구도’라기 보다는 한화갑 1인의 독주양상”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에 대해 정작 한 위원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펄쩍 뛴다. 범동교동계 안동선 박상천 의원의 출마로 동교동계 표가 분산될 가능성이 높은데다 영남권도 타 후보의 집중 공략으로 세확산이 용이치 않다는 것.

타 후보들이 한 위원을 집중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독주설’을 유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 위원은 어차피 1위를 할테니 우리를 도와달라”는 식으로 다른 후보들이 공략해오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이인제 위원, 저울질 한창

이인제 고문은 7월5일 현재까지도 경선 출마에 대해 “장고(長考)중”이라며 출전의사를 유보하고 있다. 그는 4일 서영훈 대표 초청으로 열린 예상후보자 초청간담회에도 “출마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며 불참했다. 이 고문의 ‘장고’는 곧 1위 가능성에의 타진으로 보아야 한다.

즉, 이 고문의 출마선언은 경선 1위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이뤄지리란 분석이다. 이 고문측은 “이번 경선에서 1위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주장이지만 차기구도에서 ‘유일대안’의 입지를 다져야 할 이 고문으로서는 한 위원의 독주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여타 후보측과는 달리 한 위원이 1위를 차지하리란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고문측의 한 관계자는 “최대계파의 후보로서 초반에 그 정도 앞서나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며 그러나 “선거전이 본격화되면 양상은 완전히 뒤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지지기반인 충청권은 물론이고 ‘이인제 대세론’에 공감하는 절대다수 대의원이 이 고문을 택할 것이라는 얘기다.

양 후보를 기준점으로 15명 후보간의 합종연횡 움직임은 매우 분주하고 복잡다단한 양상으로 진행중이다.

한 위원과 이 고문 모두 ‘줄세우기’라는 시각을 부담스러워해 명시적으로 타 후보들과의 연대를 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개인적 친소관계, 득표의 유불리에 따라 암묵적인 ‘편가르기’는 충분히 예견할수 있다.


권노갑고문 지원이 최대 변수

연대 구도에서 가장 큰 줄기는 권노갑 상임고문과 한 위원간의 미묘한 경쟁심리다. 당초 권 고문이 경선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거졌던 ‘양 갑(甲) 갈등설’은 권 고문의 불출마로 봉합되었지만 동교동계 및 당권을 둘러싼 양인의 경쟁관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따라서 공식적으론 중립적 경선관리자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권 고문이 실제로는 한 위원을 견제하기 위해 이 고문을 지원하리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또 친소관계로 볼때 권 고문의 지원 반경 내에 있는 후보로 안동선 지도위원, 박상천 정대철 김희선 의원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호남 대표’자리를 놓고 한 위원과 경합관계에 있는 박상천 의원의 경우 권 고문이 전폭 지원하리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 위원은 개혁그룹 대표주자인 김근태 지도위원, 영남권의 김기재 의원과 김중권 지도위원, 소장그룹인 정동영 추미애 의원 등과 폭넓은 유대를 갖고 있다. 386대표인 김민석 의원, 중진의원인 김태식 이협 조순형 의원은 중도그룹으로 분류된다.

이번 경선에서 ‘차기’가 중심화두로 등장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지금은 누구도 앞서 이 문제를 제기할 만큼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 그러나 경선 1위의 약효는 어떤 식으로든 차기구도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단, 그 약효의 강도와 지속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현재로서는 예측불가다.

노원명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10 12:47


노원명 정치부 narzi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