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딥 스로트’는 누구?

김영삼 전 대통령은 7월10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역사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기록할 때 어떻게 기록되길 원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나도 한때는 ‘역사의 기록’에 신경을 썼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일체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당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기록은 나중의 일입니다.”

닉슨 전 대통령은 1974년 8월8일 탄핵 직전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자진사퇴했다. 역사학자이며 국제정치학자인 닉슨의 안보보좌관 키신저 박사는 ‘역사에의 자리매김’에 대한 닉슨의 집념을 상세히 밝혔다.

키신저는 자신의 회고록에서“대부분의 대통령은 역사가 그들을 어떻게 다룰가 하는데 대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닉슨은 결단과 의지를 갖고 내린 결정이나 단안이 반대자와 무심한 역사가에 의해 무시되지 않을까 하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고 적었다.

닉슨은 ‘역사기록’에 대한 열등의식(?)때문에 중국과 수교를 발표한 ‘상해 선언’에 관한 상세한 메모렌덤을 그의 비서실장에서 별도로 구술했다. “중국 수교는 키신저 보좌관의 것만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어떻든 이런 닉슨을 1972년 7월17일, 워터게이트 침입사건 시초부터 그의 사임까지 기관차처럼 끌고간 것은 워싱턴포스트였다. 닉슨의 편협한 역사의식에 대해 탐사기사의 펜을 댄 것은 밥 우드워드, 칼 번스타인 이라는 젊은 기자들이었다.

이들을 지휘한 사람은 밴 브러들리 편집국장과 캐서린 그라함 발행인이었다. 그들은 워싱턴의 역사, 미국의 역사, 언론의 역사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또한 이 기록을 가져온 주인공인 미숙한 사건기자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에게 취재한 정보의 정확성과 방향, 백악관의 동태, 음모를 알려준 것은 ‘딥 스로트’(Deep Throat:깊은 목구멍)라는 소스였다.

브래들리 편집국장은 1995년에 낸 ‘좋은 일생’이란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혔다. “‘딥 스로트’는 워싱턴 언론계에서 역사상 가장 잘 그 비밀이 보장된 워터게이트 사건의 소스”라고 말했다.

그의 뉴스 소스를 지금까지도 지켜오고 있는 우드워드 기자(현재 워싱턴 포스트 편집부국장)은 1997년 7월 이 사건 보도 25주년을 맞아 말했다.

“‘딥 스로트’는 자신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한 그 이름을 밝힐 수 없다. 그는 그가 누구인지를 쫓아 생명까지도 위협하려는 닉슨의 수하들을 피해 익명이어야 했다. 그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어디로 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주는 지도였다”고 설명했다.

‘딥 스로트’는 ‘역사의 기록’을 우려할 만한 지도자급은 아니었고 우드워드는 역사의 한 단면을 기록하는 기자였다. 이런 관계에 대해 8월 들어 닉슨의 법률고문이었던 레오나드 가멘트가 ‘딥 스로트를 찾아서’라는 책을 냈다.

닉슨 사임 후 26년만에, 그의 사후 6년만에 그의 정체를 밝히고 나선 것이다.

가멘트는 닉슨이 1960년과 1962년 대선과 캘리포니아 주지사에서 낙선 후 뉴욕에서 변호사를 했을 때 그의 동료였다. 그는 자유주의자며 민주당의 적이었지만 닉슨의 정치계 재투신에 함께 일했다. 그는 후에 법무장관이 된 죤 미첼 등 숱한 뉴욕의 변호사를 닉슨에 소개했다.

그중 한 명이 30대가 안된 존 시어스라는 변호사 지망생. 그는 정치적이면서 시인이었고 선거의 전술에 특히 강했다. 술도 잘했고 담배도 피웠으며 몸집도 컸다.

특히 그는 ‘새 닉슨’이 이끄는 백악관은 음모나 권력의 남용이 없는 새 미국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이상주의자였다. 가멘트는 1997년 ‘크래지 리듬’이라는 자서전을 내면서 닉슨 시대의 여러 면을 회고했다.

‘역사의 기록’에 남기위해 이상(理想)을 버린 이상(異常)적인 닉슨이 떠올랐고 그때 딥 스로트가 존 시어스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상을 버린 닉슨은 ‘시어스나 가멘트 등 동부의 지식인이나 이상주의자에게서 등 돌린 닉슨’이었다.

시어스는 가멘트에게 자신이 딥 스로트임을 부인했다. 그러나 우드워드는 결연히 부인하지 않았다. 이제 시어스가 스스로 워터게이트의 ‘역사기록’에서 자신이 ‘깊은 목구멍’인지, ‘숨은 목소리’인지 말할 때다.

<박용배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0/08/16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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