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눈' 인터넷] 사회 감시기능의 새 언론매체로 자리잡아

20세기 시민사회에서 신문, 방송으로 대표되는 언론 매체는 입법·사법·행정부에 이은 제4부로 여겨져왔다. 여론을 형성하고 이끄는 언론 매체는 정보화 시대에 가장 효과적인 여론 형성의 도그마로 군림했다.

하지만 이런 언론 매체는 권력층이나 그 종사자를 중심으로 활용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다수 시민은 거대 언론 매체의 주변인이나 소외자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쌍방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인터넷의 등장으로 여론 형성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 힘없는 소시민에서 심지어는 초등학생에 이르는 남녀노소 누구나 여론 형성의 주체가 되고 있다.

개인적인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에서, 정책 제시, 부패 정치인이나 관료의 비위 폭로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인터넷은 기존 언론 매체에 준하는 엄청난 위력을 떨치며 제3의 대중 언론 매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아이들을 어찌해야 합니까? 제 딸아이가 학교에서 3학년 언니들한테 코뼈가 부러지는 집단 폭행을 당하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지 벌써 3개월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가해 학생은 학교에 멀쩡히 잘 다니고 제 딸아이는 의정부로 전학을 가는, 기가 막힌 현실을 어떻게 봐야할 지 답답한 마음에 글을 올립니다.(중략)

가해 학생들은 딸아이가 입원한 병실로 찾아와 온갖 상스러운 욕과 협박을 하며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리고 ‘경찰에 고발하면 죽이겠다’며 팔꿈치로 저의 목을 눌렀습니다.

(가해 학생들은)‘우리 부모가 자유총연맹 간부라며 힘이 있다’며 큰소리를 치고 ‘맞설 자신이 있느냐’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습니다.(중략) 눈물어린 호소를 할 수 밖에 없는 한 아이의 어머니를 정확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꼭 도와주세요. 다른 사이트에도 이 글을 많이 많이 띄워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이 내용은 올해 6월 국내 각 인터넷 고발 사이트에 올려져 네티즌 사이에 화제가 됐던 여중생 집단 구타 사건의 전모다.

5월말 1차 조사에서 ‘피의자가 어리고 부모로부터 올바르게 교육시키겠다는 각서를 받았다’며 영장신청이 기각됐던 이 사건은 피해자의 부모가 인터넷에 억울함을 하소연하면서 여론이 악화, 결국 서울지검 동부지청에서 피의자의 혐의를 인정해 기소했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지법 가정법원 소년부의 최종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여론 형성·주도하는 사이버 시민광장

인터넷이 네티즌의 ‘사이버 아크로폴리스(시민광장)’로 떠오르고 있다. 초기에 단순히 정보 공유·전달 수단으로만 이용되던 인터넷이 이제는 국민 여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 하나의 여론 광장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사이버 여론 형성의 첫걸음은 대화방이다. 초기 게시판이나 대화방을 통한 네티즌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확산돼 각 동호회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놀라운 결속력을 과시하며 집단화를 형성, 결국에는 여론을 만들고 이끄는 넷파워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여론화의 초기 형태는 안티사이트(Anti-Site)다. ‘스톱삼성운동’ ‘반두루넷’‘안티제일은행’ ‘3류가수 안티사이트’등 각 분야의 안티사이트가 속속 생겨나면서 이익집단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인터넷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로 힘이 실리면서 네티즌은 이런 소극적인 접근에서 탈피,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119 구급차에 실려간 25세의 제 남동생을 죽음으로 내몬 전주 **병원을 고발합니다’, ‘실직자라로 욕하고 무시한 대전 **고용안정센터의 최** 직원을 네티즌의 이름으로 혼내주자’, ‘386세대를 매도한 모 신문사를 시민의 이름으로 고발합니다’, ‘**여대 재단의 비리를 폭로합니다’, ‘소비자를 우롱하는 **통신회사의 처사를 비난합니다’는 등 각종 탄원과 민원·고발성 내용이 쏟아져 나와 있다.

이처럼 인터넷의 고발·감시 기능이 강화되면서 가장 곤란을 겪고 있는 측은 소위 공인이라고 하는 특권층이다.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 교수, 검사, 변호사, 연예인, 재벌 2세, 의사, 언론인 등과 같이 일반에 얼굴이 알려진 사람은 행여 자신이 이런 인터넷 여론몰이의 희생양이 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386세대 의원의 5·18 광주 술판 사건의 경우에서도 보았듯 자칫하면 인터넷 감시망에 걸려 톡톡히 망신을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공인은 언론이나 검·경의 수사만 피하면 자신의 비리가 공론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직무 관련 비리는 물론이고 개인의 사적인 문제까지도 전국에 퍼져 있는 네티즌의 감시망에 자칫 걸리기라도 하면 단번에 공론화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고발·감시기능 ' 순 기능'

실제 변호사 출신인 L씨는 한 시민단체 홈페이지에 “변호를 맡은 L씨가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 바람에 소송이 자동 취하돼 손해를 봤다.

그런데 L씨는 피해 보상은 커녕 변호사비 1,000만원도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글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또 지난 4·13 총선에서 당선된 여당 모 의원도 시민단체 홈페이지에 “모 의원이 이번 선거에서 금품살포와 부정 선거 행위를 한 증거가 있다”는 폭로성 글이 올려져 시민단체로부터 해명을 요구받은 상태다.

특히 청와대가 운영하는 ‘인터넷 신문고’사이트나 감사원, 그리고 참여연대 경실련 등과 같은 시민단체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고위 관료의 인사 부정이나 업무상 과실 등에 관한 폭로성 글이 하루에도 수십건씩 올라온다.

최근에는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그룹의 사이트에는 현대 구조조정 문제로 인한 주가 하락으로 손해를 본 수천명의 네티즌들로부터 항의성 글이 폭주, 사이트가 다운될 정도다.

이밖에 인기 여자 연예인의 홈페이지에는 “밤늦게 호텔에서 남자와 나오는 것을 봤다”, “**재벌 2세와 사귀는 것 아니냐”는 식의 음해성 글이 다수 올려지곤 한다.

경찰이나 검찰의 실무자들은 “예전에는 인지사건이나 고발 사건을 주로 다뤘는데 이제는 인터넷에 올려진 내용까지 신경써야 한다”며 “온라인상을 통해 소문이 나면 윗선에서 진상 조사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어쩔수 없이 모니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고발·폭로성 글이 유행하자 최근에는 고발 전문 인터넷사이트까지 속속 생겨나고 있다.

모 고발 사이트에는 △욕설 퍼붓기 △부패 정치인 △부패한 관료 △더러운 언론 △억울함 호소 △음란 홈페이지 △부당한 행위 등과 같이 고발 내용을 코너별로 분류해 놓고 있다. 최근 법원이 ‘안티 사이트는 명예훼손이 아니다’라는 판결을 내린 이후 이런 폭로성 글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방적 폭로 '폐해' 적지 않아

이런 인터넷 고발 사이트의 성행은 그간 일방통행식이었던 정보독점을 다양화하고 밑으로부터의 여론 형성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일부 검증되지 않은 폭로성 내용으로 인한 폐해도 적지 않다.

“모 정치인은 숨겨 놓은 내연의 처와의 사이에 자식이 있다”, “톱탤런트 누구누구는 예전 일본 재벌 2세의 현지처였다”, “**세무서 담당 공무원의 집 안방에 금괴가 숨겨져 있다”는 식의 근거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당사자를 곤경속으로 몰아넣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이런 루머나 음해성 허위 정보를 통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 이른바 ‘사이버 테러’가 실제로 넷상에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 사이버테러 대응센터 양근원 팀장은 “자유 게시판이라는 것은 외국에는 없는, 우리나라 인터넷 사이트에만 있는 독특한 사이버 문화인데 이것이 익명으로 이뤄진다는 허점을 이용해 상대방을 비난하는 예가 종종 있다”며 “인터넷상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할 경우 형법상 명예훼손으로 처벌을 받고 실제 경찰도 이런 네티즌을 추적해 처벌한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일부 피해자들은 형사소송외에 추가로 명예훼손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해 보상을 받은 판례도 있다”고 말했다. 양 팀장은 “우선 글을 올리는 네티즌이 먼저 달라져야 하며 사이트 관리자도 실명제로 전환하거나 관리자들이 먼저 글을 거른 뒤 게시판에 올리도록 하는 방법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이버참여연대의 이샛별 담당간사는 “우리 사이트 게시판에도 비리제보나 개인 의견 등 다양한 글이 올라온다”며 “하지만 음해성 성토나 인식 공격적 글이 많은 것을 단지 온라인의 책임만으로는 돌릴 수 없다.

물론 온라인의 익명성이라는 부분을 무시할 순 없지만 그동안 일반 시민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었다. 그것은 온라인을 통해 열린 공간이 생기면서 나온 약간의 부작용이다. 온라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토론문화가 정착하면 자연히 나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이 간사는 “시민 게시판에 올라온 제보라도 무조건 경찰이나 검찰에 신고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사실확인 절차를 한 뒤 공적인 문제라고 생각되면 그때부터 공식 절차를 밟는다”고 덧붙였다.

토론문화에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 인터넷은 아직 개인성토의 장에 불과하다.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온라인상에서도 최소한의 도덕성과 매너는 있어야 한다. 인터넷을 진정한 여론 형성의 장으로 만들려면 네티즌 스스로가 이런 최소한의 기본은 갖출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송영웅 기자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16 19:22


송영웅 주간한국부 @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