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들여다보기] 세대차이

지금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동양에서 온 사람이 없다가 처음 나 같은 사람이 오니 여러 사람이 동물원의 원숭이 구경하듯 보러왔다. 그중의 한 사람은 일본과 일을 많이 해왔던 사람이었다.

30여년 가까이 일본 기업과 일을 하다보니 대체적으로 동양의 사고방식과 사회관습을 어느 정도 꿰뚫고 있었다. 워낙 일본통이라서 그런지 우리나라와 일본간의 해묵은 감정의 앙금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내 앞에서는 일본 사람을 흉보는 정도의 여유와 기지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 사람이 하루는 내게 와서 말했다. “당신은 커리어 선택을 상당히 잘 했다”고.

이유인 즉 젊었을 때 미국에서 여러 경험을 쌓고 중진이 되면 한국에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왜 좋은 선택이냐”고 물어보았더니 “미국에서는 젊음을 높이 사고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나이든 사람을 공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에서 젊음으로 대접받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중진으로 대접받으니 그보다 좋은 선택이 어디 있냐는 것이었다.

7, 8년 전에 나눈 그 대화가 아직도 가끔 생각나는 것은 미국 젊은이들의 힘을 갈수록 느끼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요사이 미국의 신경제를 주도하는 인터넷 또는 닷캄 회사들을 보면 대부분의 창립자 겸 최고 경영자는 20대다. 또한 대부분의 경영진도 20대다.

한창 대학에서 미팅이나 하고 있었을 나이에 이미 그들은 나름대로의 사업계획을 가지고 종업원 수백명의 수천만 달러짜리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요사이 닷컴 회사에 대한 열기가 식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국은 신기술의 하이테크 회사를 찾아다니고 있다.

그러한 하이테크 회사들은 글자 그대로 모험기업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바로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따라서 돌보아야 할 가정이나 책임이 없는 젊은 모험 기업가들이 바로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곳이다. 그들의 회사 분위기는 마치 잘 차려놓은 대학의 써클룸과 같으며 자신의 창의력을 제고하기 위한 온갖 소품이 여기저기 놓여있다.

타이를 맨 정장은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이 폴로 셔츠에 청바지 차림인 것은 이제 낯설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고 경영자를 포함한 경영진이 여전히 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대학생인 경우도 있다. 간판이나 경력보다는 창의력과 능력을 우선시하는 미국적 방식이다.

이러한 젊은 기업에 요사이 세대 갈등이 있는 것 같다. 회사 내에서 젊은 세대와 덜 젊은 세대간의 미묘한 갈등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덜 젊은 세대의 상사인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험 많은 40대의 비서는 자기 자식과 비슷한 나이의 20대 사장을 모셔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이테크 기업에서 나이를 이유로 차별받았다고 연방 평등고용위원회에 고발되는 건수도 최근 급속히 늘어났다.

반면에 젊은 세대의 경영 능력에 대한 회의 때문에 유능한 인력을 유치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30대 초반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고용하려고 하던 20대 사장이 자신의 나이를 이야기하자 “그 회사에서는 도저히 일 못하겠다“고 거절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려움은 덜 젊은 세대를 고용하는 젊은 경영자에게도 있다. 노던 버지니아의 한 인터넷 업체 사장은 자기 회사 직원을 만나면 자기가 태어났을 때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생각하면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났을 때 벌써 자동차 운전을 하고 다녔는가 하면 자기가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이미 벌써 MBA를 마친 사람까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고 스스로 자신감 있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젊은 사장으로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젊은 기업에서도 일반적인 회사경영에 관해서는 덜 젊은 세대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재무회계나 법률 부문에서는 머리가 희끗해지기 시작하는 40대의 지혜 담긴 조언이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못한다.

20대의 젊은 사장에게는 주식공개를 위한 증권 거래위원회의 제반 규정이나 무선 전화와 관련한 연방 통신위원회의 요구 사항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불합리한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중진의 경험과 지혜가 신경제에서 그래도 힘을 발휘하는 곳은 바로 이런 제도와 규율 부분인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규제와 규율이 갈수록 복잡해져왔는지도 모른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0/08/17 18:1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