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성인방송 규제한계는…

정부 조치에 “통제만능 발상” 비난높아

정부가 급기야 인터넷 성인방송에 칼을 빼들었다. 성인용에 국한돼야 할 내용을 청소년까지 마구잡이로 접속해 시청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는 8월7일부터 인터넷 성인방송을 청소년보호법에 의거해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고시했다. 이와 함께 청소년 접속을 막기위한 행정지도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은 크게 세가지. 첫째, 성인방송 가입 회원은 주민등록번호와 함께 반드시 실명을 명기하고, 성인방송국 운영사는 이들의 일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둘째, 명의도용을 방지하기 위해 운영사는 본인 여부를 전화로 확인하고 회비도 신용카드로 계산해야 한다. 셋째, 음란조항에 위배되는 컨텐츠는 사이트에 올릴 수 없다.


신문·방송 규제틀 그대로 적용

현재 국내 인터넷 성인방송국은 20여개에 이른다. 이중 규모가 비교적 큰 곳은 6~7곳. 성인방송국들은 일단 정부규제에 잔뜩 움츠린 채 방어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바나나 TV’의 김종원 제작사업본부장은 “정부 규제책을 환영하며 규제를 따르는 데 기술적 어려움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그러나 성인방송이 다양한 성인정보와 스트레스 해소책을 제공하는 순기능도 있다며 성인방송과 음란방송을 동일시하는 여론에 불만을 표했다. 아울러 정부에서도 규제를 하려면 음란물과 성인물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규제에 대해 학계와 시민단체의 견해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청소년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정부의 이야기가 별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학계와 시민단체의 비판은 크게 두가지 의문에서 출발한다.

‘정부가 음란 여부를 규정, 판정하고 규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와 ‘규제의 실효성’이 그것이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성동규 교수는 “정부가 음란물을 개념규정하고 규제하는데 반대한다”고 잘라 말했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모르지만 직접 규제하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주장이다. 성 교수는 인터넷을 규제하려는 정부의 발상에도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중파 방송이나 신문을 규제하던 과거의 틀을 전혀 속성이 다른 매체인 인터넷에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는 것.


인터넷 속성상 음란물 규제 불가능

언론개혁시민연대의 권영준 사무차장은 “법적 강제로 인터넷 방송을 규제하면 표현의 자유을 억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 사무차장의 이야기.

“정부가 기성세대의 일방적 잣대로 판정, 규제하는 것은 곤란하다. 시민사회의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 관련 정부 위원회도 민간단체 참여 위주로 운영돼야 한다.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방법은 규제가 아니라 부모나 지역사회, 학교 등의 공동노력을 통하는 것이 순리다.”

정부 규제의 타당성 뿐 아니라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성 교수는 인터넷은 속성상 규제가 불가능하다며 “정부 규제가 오히려 외국 사업자의 배만 불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사이버상에 외국 음란물이 홍수를 이루는 상황에서 인터넷 성인방송만 단속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성 교수는 온라인상에서 성인물과 음란물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한 사이트 안에 성인물과 음란물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내용이 있고, 클릭만으로 여러 내용을 볼 수 있기 때문. 성 교수는 현재 정부의 규제개념이 과거 오프라인 통제방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공중파 방송의 음란성 방지에 “장관직을 걸겠다”고 천명한 것이 정부의 마인드를 대표하는 예다.

정부가 칼을 뽑아들면 오프라인 매체는 따라올 지 모르지만 인터넷 매체(특히 외국업체)는 들은 척도 않는다는 것이 성 교수의 설명이다.


청소년 차단프로그램개발 우선돼야

이상돈 고려대 법대 교수는 이번 규제에 대해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아 성인의 접속까지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등록번호에 실명을 써야 회원가입이 된다면 성인도 시청을 기피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성동규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성인에게는 일정 정도 온라인 (성인물이 아닌)음란물을 허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성인들은 볼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성인방송에 올리는 음란물 컨텐츠를 제한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성인·음란물 차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배포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터넷 성인방송 규제가 초기단계에 있는 인터넷 방송산업의 발전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청소년 보호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산업발전만 저해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인터넷 문화 정립이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로 등장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17 19:14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