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 (21)] 옷과 인간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옷은 없을까? 밀가루로 풀을 쑤어 풀을 먹이고 다듬이로 두드리고…. 옷 한번 손질하는데 몇날 며칠을 투자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건만 발전된 지금 세상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옷에 대한 불편함을 이야기한다.

막바지 무더위가 한창인 요즘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즐길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 싶다. 이제 옷의 세계에도 첨단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섬유 공학자들은 난로역할을 겸하는 옷을 개발중에 있다. 온도에 따라 성질이 변하는 밀랍화합물을 사용해서 온도가 내려가면 열을 발생하는 섬유를 만드는 것이다.

이 기술은 미 항공우주국(NASA)과 미 공군이 비행사의 손을 따뜻하게 보호해줄 목적으로 개발에 착수한 것이지만 예산부족으로 중단되었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미 콜로라도주의 벤처기업가인 버니페리와 에드페인이 이 화합물의 특허권을 사들이면서 제품개발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급격한 온도변화에서도 발을 보호할 수 있는 등산화와 양말은 이미 실용화 단계에 있다고 한다.

또다른 과학자들은 입는 사람이 땀을 흘리지 않게 하는 옷도 개발 중이다. 폴리에틸렌 글리콜이라는 나선 모양의 폴리머는 스프링처럼 감겼다 풀렸다 하면서 온도 조절을 한다.

특히 이 분자는 물기를 좋아하는 성질이 있어서 땀과 열이 발생하면 온도 상승을 멈추고 피부의 물기를 빨아들이고 온도가 낮아지면 다시 열을 내면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사실상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옷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이 섬유에는 미생물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감염을 막는 붕대, 의사복, 환자용 침구, 신발, 외상 치료용품 등 의료용 제품에도 활용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특히 나노기술을 이용, 외부 온도가 높으면 섬유의 구멍이 열려서 통풍이 되고 몸에 좋지 않은 화학물질이 닿으면 구멍이 닫히는 스마트 섬유를 만들 수도 있다.

21세기 중반쯤이면 거대한 섬유공장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에 복사기 크기만한 나노머신이 맞춤형 섬유를 생산하게 된다고 한다. 더구나 옷에 미세한 로봇장치를 상주시켜서 주기적으로 섬유표면을 청소하게 함으로써 세탁할 필요가 없는 섬유도 개발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 당신이 무엇에 대하여 어떤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상 어디에선가 그 불편함의 해법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믿어도 좋다.

우리는 그만큼 초스피드 최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갖가지 위험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해주고 인상을 좌우하고 때론 신분을 나타내기도 하는 소망이자 굴레이기도 한 옷과 인간의 관계. 첨단의 시대에는 옷도 하나의 인격으로 다루어야 할 ‘예민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scicafe.org

입력시간 2000/08/1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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