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서울 광진구 광나루(廣津)

광나루는 본래 옛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古楊州面) 지역. 아차산 기슭에 한강과 맞닿아 넓은 나루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한강을 기준으로 양주군 지역은 양진(楊津), 광주군 지역을 광진(廣津)이라 불렀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반대인 양주군 쪽의 양진은 간 데 없고, 광주군 쪽의 광진이 오늘의 자리로 땅이름이 이동하였다. 나루가 넓어 ‘너븐 나루-넓은 나루-광나루-광진(廣津)’으로 뜻빌림이 된 것이다.

1914년 3월1일 일제가 부(府)·군(郡) 폐합을 하면서 군장골의 일부를 떼어다가 둑도면 광장리로 고쳐 부른 것이 땅이름이 바뀐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뒤 경기도 고양군에 편입, 1949년 8월15일 서울특별시에 편입하여 오늘날까지 광나루 또는 광진이라 불려지고 있다.

이 광나루는 예부터 산수가 수려하여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유원지였다. 오늘날 워쿼힐이 자리한 산마루에는 고구려 온달(溫達) 장군의 전설이 깃든, 흙과 돌로 쌓은 아차산성(峨嵯山城:阿旦山城:長漢城)이 한강을 굽어보고 있다.

남한에서 고구려의 유물이 제일 많이 출토되어 고구려사 연구에 주목을 끄는 곳이기도 하다. 아차산성에 올라서면 한강 건너 옛 백제의 위례성 지역과 남한산성 그리고 검단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이 나루터는 옛날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내륙을 잇는 수많은 수운선이 와닿던 곳으로 1960년대 초까지도 멀리 인제, 양구, 영월, 정선에서 베어낸 통나무 뗏목이 내려와 강을 뒤덮으며 머물던 곳이었다.

경기도 광주, 여주, 이천 방면으로 가거나 또 멀리는 장호원, 읍성, 충주, 심지어는 경상우도(慶尙右道)로 오가는 길손도 이 나루를 건너야만 했다.

그러던 것이 1923년 일제가 이곳에 길이 1,037m나 되는 길고 높은 다리를 놓으니 사람들은 이 다리를 ‘넓은 나루의 긴 다리’라는 뜻으로 광장교(廣長僑) 또는 광진교(廣津僑)라 부르는가 하면 ‘높은 다리’라는 뜻으로 고층교(高層橋)라 부르기도 하였다.

광나루 서쪽 용당산(龍堂山)에는 나라에서 제룡단(祭龍壇)을 설치하고 봄가을로 향축(香祝)을 내리어 넓은 나루의 용신(龍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양진사(楊津祠)가 있었다.

신라때는 이곳을 북독(北瀆)이라 하여 중사(中祀)로 지내고 조선조에 와서는 하사(下祀)로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먼 옛날부터 이 넓은 나루에 오가는 배들의 수운(水運)에 무사함을 비는 제사(기원)가 아니였나 생각된다.

또 이 나루 곁에는 1952년 한국전란 때 전사한 주한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의 전공을 기려 이 언덕을 워커힐(Walker Hill)이라 이름짓고 그곳에 워커힐 호텔이 자리하고 있다.

넓은 나루, 광진(廣津)! 그 땅이름 만큼이나 지금은 한강 수중보(水中堡) 물막이로 인해 물이 바다 만큼이나 꽉 차 넓은 나루, 즉 광진(廣津)이 되고 말았다. 그 넓은 나루에 휴일이면 수상 스키어들과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이 몰려들어 형형색색 돛의 물결이 장관을 이루니 광진(廣津)이 광장(廣壯) 아닌 광장(廣場)이 되고 있다.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0/08/1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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