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석모도 보문사

50년의 응어리를 녹여내는 눈물의 축제가 열리고 있다. 겨우 100명씩만 휴전선을 넘었을 뿐인데 사연의 무게는 100만명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가 한반도를 감싸고 있는 요즘, 기왕 길을 나선다면 더 많은 이산가족의 만남과 민족의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터를 찾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강화도의 부속섬 석모도에 자리한 보문사가 그 대답이 될 수 있다.

행정구역상 석모도는 인천 강화군 삼산면. 낙가산, 해명산, 상봉산등 200~300㎙급 나즈막한 산 세 개가 나란히 있어 삼산이란 이름을 얻었다. 낙가산 기슭에 1,400년 가까이 서해 바다를 굽어 본 명찰 보문사가 있다.

보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 희정대사가 창건했다. 경남 남해 금산의 보리암, 강원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 전남 여수시 돌산도 향일암과 함께 4대 관음기도도량으로 꼽힌다.

기도터를 찾는다고 미리 엄숙해질 필요는 없다. 석모도 가는 길은 너무나 즐겁다. 차 타고, 배 타고, 걷고…. 본격적인 여행은 강화 외포리에서 시작된다. 외포리는 석모도행 카페리가 출발하는 곳. 여행객 대부분이 차를 갖고 섬에 들어가기 때문에 포구에는 사람 대신 차가 줄을 선다. 카페리는 대형이다. 차가 배 위에서 U턴해 가지런히 정열하면 승용차 48대가 들어간다.

배를 타기 전 새우깡 한 봉지가 필수. 하얀 갈매기떼가 배를 따른다. 사람들이 던져 주는 새우깡을 먹는다. 새우깡에 길들여져 직접 물고기를 잡는 본능마저 잊은 듯한 이 갈매기들은 가끔 식당가의 쓰레기통까지 뒤진다. 그래서 ‘거지 갈매기’라는 거지 같은 별명이 붙었다.

10분 남짓이면 석모도 선착장에 닿는다. 석모도의 도로는 전장 20㎞. 버스가 있지만 배차시간이 길기때문에 가급적 승용차를 가져가는 것이 좋다.

보문사 입구 주차장은 규모가 꽤 크지만 불교 명절이나 여행 성수기 때에는 북새통을 이룬다. 입구 먹거리촌 아주머니들이 일회용 소줏잔에 따라 권하는 인삼막걸리를 어쩔 수 없이 한 두 잔 시음한다.

절에 가는 길이지만 권유가 워낙 집요한데다 시음은 공짜이기 때문에 외면하기 힘들다. 길은 길지 않다. 그러나 가파르다. 허술한 슬리퍼나 굽 높은 신을 신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쑤이다.

10분쯤 땀을 흘리고 오르면 대웅전과 석실이 보인다. 참배객의 눈에 석실은 야릇한 분위기로 다가온다. 인천 유형문화재 제27호인 석실은 나한을 모신 나한전이다.

97평의 천연동굴 입구를 문으로 막고 그 안에 나한상을 안치했다. 이 석불들은 신라 선덕여왕 때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려진 것이라 한다. 현몽대로 이 곳에 모신 그 어부는 큰 부자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석굴 법당 옆으로 뚤린 계단길을 오르면 보문사 참배의 하이라이트인 마애관음보살입상에 닿는다. 계단은 모두 365개.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이 관음보살상은 1928년 보문사 주지 배선주 스님과 금강산 표훈사의 이화응 스님이 조각한 것. 일명 눈썹바위라 불리는 기묘하게 생긴 바위의 밑부분을 깎았다. 문화재적 가치 보다는 기도 성지로 더 중요시되고 있다.

석모도를 들렸다면 끝없는 갯벌이 장관인 민머루해수욕장, 오후 3~5시면 하얀 소금탑을 볼 수 있는 삼량염전을 들러보는 것도 좋다. 특히 민머루해수욕장 언덕에서의 낙조가 장관이다. 정식 숙박시설은 없지만 민박 시설이 훌륭하다.

권오현 생활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0/08/1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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