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만남과 모임

서울과 평양에서 반세기 넘어 헤어져 살아야만 했던 남과 북의 혈육이 다시 만나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부모 자식과 형제 자매가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이 반백년이 넘은 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것인가.

한편 태평양 건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현 행정부의 대통령과 부통령이 바통 터치를 하는 모임이 성황리에 열렸다. 21세기를 맞아 백악관의 첫 주인 자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민주당 전당대회다.

남과 북이 갈라져 혈육간에 생이별을 하도록 할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라는, 커다란 철학적 간극이 있다. 먼저 리버럴리즘의 민주당에서는 정부를 국민을 위한 보호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따라서 공립학교 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시장 개입이나 독점규제 정책 등을 강력하게 집행함으로써 경제를 안정시키는 등의 책무가 정부에 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정부 예산에 흑자가 생기면 먼저 사회보장 재원을 확보해야 하며 보다 많은 국민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보험 제도를 개혁하려 했다.

반면에 보수주의 공화당에서는 정부는 필요악이므로 최소한의 개입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정부가 공립학교 교육의 수준을 위하여 예산을 쓸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개인이 원하는 사립학교를 보내는데 대신 돈을 내주든지 아니면 그만큼 세금을 감면해야 한다고 한다.

대체적으로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면 워싱턴의 독점금지법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들은 파리를 날리게 된다. 왜냐하면 정부가 별로 반독점 행위에 대하여 관여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부 예산에 흑자가 생기면 우선 세금을 감면해 그 혜택을 국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민주당은 흑인 노예해방을 기치로 내걸고 시작한 공화당에 비해 오히려 정부의 간섭을 반대했던 전통을 가진 정당이다. 그러던 민주당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대공황 때문이었다. 1929년 미국 증시가 대폭락하고 연이은 자연재해로 중서부 지대의 곡물 수확이 급감하자 실업률은 무려 25% 가까이까지 올라갔다.

이때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면서 연방정부가 나서서 실업을 줄이기 위해 일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도로와 다리, 댐을 건설했으며 연방정부에 엄청난 일자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만들어진 것 중의 하나가 지금의 국립공원 제도나 국유림 제도라고 한다.

그런 연유로 민주당은 노동조합이나 근로계층 및 유색인종, 여성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왔다. 반면에 공화당은 대기업이나 세금감면 등으로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는 부유층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아 왔다. 아무튼 대공황의 충격이 워낙 컸던 탓에 미국 국민은 그때부터 정부에 기대기 시작하였으며 연방정부는 갈수록 비대해졌다.

한편 시간이 갈수록 일상생활이 정부에 더욱 의존하게 되자 보수주의자들은 엄청난 반발을 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총기규제에 관한 논란이다. 우리가 보기에 미국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총기사고를 생각하면 당장 총기소지를 금지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여기에 또 보수주의자의 시각은 다르다.

보수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정부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결국에는 자기 방어권까지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즉,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이 공격을 당해도 스스로 적극적으로 방어할 수 없고 피해를 당한 다음에서야 경찰의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주 우연의 일치가 아니면 경찰이 개인을 보호해줄 가능성은 절대 없다고 항변한다. 따라서 자기방어를 위한 적법한 총기소지를 규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양당간의 이러한 철학적 차이가 오늘날의 미국의 정치를 엮어나가고 있는 씨줄과 날줄이라면 50년이 넘도록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와 부부간을 가로막았던 장벽은 과연 무엇으로 쌓여졌던 것인지 궁금하다. 장벽이 워낙 높고 단단하였기에 지금까지 알 수 없었다면 이제 무너지기 시작한 바에야 그 부서진 벽돌과 시멘트를 잘 거두고 살피어 이처럼 한 맺힌 장벽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0/08/2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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