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보는 이분법적 잣대에 대한 비판

■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 (박유하 지음/사회평론 펴냄)

우리에게 일본은 어떤 존재인가. 몇 천년간을 대립해온 적인가, 아니면 미래의 번영을 위해 손잡아야 할 파트너인가.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 인종적·문화적으로는 유사하지만 35년 간의 식민지 통치 이후 한국과 일본의 사이는 멀기만 했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 세계 무대에선 무기력하던 우리 선수들이 한일전만은 목숨을 걸고라도 이기려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피해의식과 적개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해방된지 반세기가 넘었어도 용서할 수 없는 일본, 우리는 그래서 일본을 가능한 한 잔혹하고 비열한 인종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때문에 일본에 대한 적의를 자극하는 서적은 베스트 셀러가 되고 객관적으로 한일관계를 고찰하는 책은 독자의 관심 밖에 머물렀다. 지난 10년 ‘일본은 없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노래하는 역사’ 등 반일감정을 담은 글들은 모두 인기를 끌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핵폭탄으로 일본을 응징하고 ‘일본은 없다’는 일본은 더이상 배울 것이 없는 2류 국가에 불과하다고 소리높여 외친다. 또 ‘노래하는 역사’에서 이영희씨는 한국인의 가슴 속에 일본에 대한 우월감을 심어줬다.

세종대 일문학과 박유하 교수가 쓴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는 잘못된 반일감정과 이를 이용하는 지식인의 태도에 일침을 가한다. ‘일본과 우리 자신을 왜곡하는 모든 이미지를 깨뜨리는 한국의 정신분석’이라는 부제 그대로, 일본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일본인은 창조성이 없다’, ‘일본인은 경제적 동물이다’, ‘일본인은 잔인하고 집단주의적이다’, ‘일본인은 교활하다’는 등 일본에 대한 부정적 명제들이 전혀 근거없음을 밝힌다.

아울러 2002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고 일본 대중문화까지 개방된 시점에서 일본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재정립하고 한국 민족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해볼 것을 권유한다.

대표적인 반박 사례가 ‘쇠말뚝’. 저자는 일본이 우리의 정기를 해치기 위해 박았다는 쇠말뚝에는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패배감과 배타적 정서가 숨어있다고 한다. 누가 박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일본이 박았다면 왜 그랬는지도 모르는 채 민족 정기를 말살하려 의도라며 무조건 일본을 욕했던 쇠말뚝 사건은 국가적 수치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일본의 고대시가집 만요슈가 모두 한국어로 해석되므로 한국이 일본보다 우월하다는 이영희씨의 논리도 통렬히 비난한다.

더욱이 ‘일본은 없다’의 저자 전여옥씨,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김진명씨, 서울대 신용하 교수, ‘토지’의 박경리씨,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의 홍세화씨 등 반일본 민족주의를 이끌어온 지식인을 실명으로 비판, 지성계에 한바탕 치열한 논쟁을 예고한다.

문화적 차이를 인정치 않고 우리 것만이 옳다고 하는 전여옥씨의 주장은 오류라고 지적하고 신용하 교수에 대해서는 일본의 의도를 무조건 나쁘게만 봐서는 안된다고 논박한다.

또 반일소설로 유명작가 대열에 오른 김진명씨는 과거에 당했던 폭력을 폭력으로 갚으려는 위험한 국수주의자라고 평가한다.

일부 독자에게는 일본을 옹호하는 책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인이 식민지 지배에서 비롯된 편견에서 벗어나 일본을 제대로 알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진정한 의도라고 설명한다. 일본을 헐뜯는 이면에 숨겨진 열등감을 극복하도록 권고한다.

송기희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22 21:01


송기희 주간한국부 gihu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