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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그릇 역사기행(22)] 하동(中)

[찻그릇 역사기행(22)] 하동(中)

한국도자사의 신데렐라 이토찻그릇

16세기 일본 차인(茶人)들은 왕자적인 매력으로 조선의 남부지방에서 굽혀진 신비의 막사발 하나를 발견했다. 그야말로 신데렐라 공주의 발견이었다. 왕자는 첫눈에 신데렐라 공주에 반해 버려 조선의 시골뜨기 막사발을 행여 다칠새라 일본 왕궁으로 고이 모시고 가 죽도록 사랑하고 감상했다.

천하제일의 찻그릇 이토(井戶)는 이렇게 화려하게 일본에 등장하게 됐던 것이다. 400년전 일본 왕자와 조선의 신데렐라 공주와의 영원한 사랑 이야기는 새천년이 돼도 변하지 않고 한일 양국의 다도사(茶陶史)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기행자는 1985년 4월 일본의 국보이자 천하의 명찻그릇인 이토 찻그릇의 도일(渡日)루트를 따라 일본 현지 답사기행을 할 기회를 가졌다. 마침 쿄토의 다이토쿠지(大德寺)가 개산(開山) 400주년을 기념하여 그동안 절에서 비장하고 있던 미공개 보물을 전시기간을 통해 세인에게 공개했다.

전시된 보물 중에는 국보이며 일본 국민이 차 한잔 받아먹는 것이 평생소원이라는 조선의 신데렐라 공주인 이토(井戶) 찻그릇도 최초로 전시되었다. 기행자는 400년의 시공을 넘어 찻그릇의 고향에서 왔다는 설레임과 경건함 속에 천하 제일 명찻그릇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40여점의 이토(井戶) 찻그릇 중에 이곳 대덕사에 비장된 기자에몽(喜左衛門) 이토 찻그릇이 가장 으뜸이다. 기자에몽 이토 찻그릇은 16세기 중반 오사카의 거상 다케다 기자에몽이 소장한데서부터 그 명칭이 불러지게 되었다. 그후 세월이 흘러 찻그릇의 주인은 여러번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기자에몽 이토 찻그릇에는 조선 도공의 원귀(寃鬼)에 관해 불행한 사연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도쿠가와 정권 때는 수십만석의 영지와 맞바꾸기도 한 천하제일의 찻그릇 이토(井戶)를 가지는 사람은 모두가 재앙으로 종기가 걸린다는 것이다.

안에이(安永 1772-1781)년간에 유명한 차인이며 찻그릇 매니아였던 운슈(雲州)의 후마이코(不味公)가 소장하게 되었다. 후마이코 자신도 이 찻그릇을 소장한 이후 종기가 나서 위독하게 됐다.

곧바로 아들 겟탄(月潭)에게 찻그릇을 물려주면서 유언하기를 “이 찻그릇은 천하명물이며 오랫동안 소중히 간수해야 할 보물”이라고 하였다.

그후 공이 죽고 아들 겟탄이 다시 종기를 앓게 되자 필시 이 찻그릇에 조선 도공의 원혼이 깃들여져 있어 소장하는 사람 모두가 문둥병에 걸린다고 생각하여 쿄토의 다이토쿠지(大德寺) 고호안(孤蓬庵)에 기증한 다음, 스님들로 하여금 독경을 통해 조선 도공의 원혼을 천도해주었다고 한다.

그후 더이상 괴변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런 연유에서 기자에몽 이토 찻그릇은 더욱 신비스러운 찻그릇이라고 일본 전역에 알려졌다.

기행자는 쿄토 전시회를 보고 귀로에 당시 권병현 외무부 아주국장(현 중국대사)과 함께 오사카 공작미술관을 방문했다. 하마다 요시아케(濱田義明) 관장의 배려로 히메이지가(家)에 400년동안 전승되어온 상림(上林) 명칭의 이토 찻그릇에 차를 대접받은 일은 일생일대의 잊을 수 없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조선시대 하동의 사기장인은 이 골짝, 저 골짝의 흙 불 물 나무 바람으로 심성(心性)을 운명적으로 표현하여 깨달음과 생명의 찻그릇인 이토(井戶)를 탄생시킨 것이다.

그후 중세 일본만이 가지는 독특한 선종 불교미학의 꽃인 ‘와비’, ‘사비’란 미의식에 의해 발견되고 가꾸어져 오늘날까지 한일 다도사(茶陶史)에 신데렐라 공주로서 엘레강스한 멋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현암 최정간 도예가>

입력시간 2000/08/23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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