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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세상읽기] 거장의 변신 아니 변신

[문화로 세상읽기] 거장의 변신 아니 변신

변신이냐, 자기 세계 고집이냐. 거장이라고 이 둘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으랴. 배우가 ‘멜로 전문’‘액션 전문’이니 하는 말을 듣기 싫어하듯, 감독 역시 그런 소리를 좋아할리 없다. 그래서 거장도 변신의 때를 기다리고, 어떻게 변신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러나 그들은 신예들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가볍게 실험성에 도전하기에는 너무나 그의 존재가 무겁다.

거장들의 놀라운 변신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 프랑스 롤랑 조페 감독의 ‘굿바이 러버’가 그렇고, 대만출신 리안 감독의 ‘와호장룡’과 ‘라이드 위드 데블’이 그렇다.

‘미션’‘킬링 필드’‘시티 오브 조이’를 기억하는 영화팬이라면 롤랑 조페의 ‘굿바이 러버’는 일종의 배신이다. 멜로드라마 냄새가 물씬한 제목부터 당황스럽다. 그 당황은 영화가 시작되면 더욱 커진다. 도입부에 농밀한 폰섹스에 이어 실제 진하게 펼쳐지는 정사장면.

그것도 감독이 가장 성스럽게 생각하고, 구원의 장으로 여기는 교회안에서 바흐의 송가를 틀어놓고 펼치는 시아주버니와의 불륜.

팜프파탈(악녀)인 산드라(패트리샤 퀘이트)와 그의 남편 제이크(더모트 멀로니) 그리고 그의 형 벤과 그의 비서 페기.

영화는 이 4명에 노회한 여형사까지 교묘하게 끌어들여 400만 달러의 보험금을 놓고 벌이는 게임을 그려간다. 계획적으로 아내 산드라를 형에게 접근시킨 제이크가 산드라와 짜고 형을 죽이고, 페기가 형의 아내를 자처해 보험금을 가로채려 하고, 알고 보니 페기는 제이크의 정부였고, 배신감에 산드라는 둘을 죽이고….

이런 반전과 물고 물리는 게임이 새롭지는 않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으로 악에게 승리를 안기는 것도 특별한 의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랑 조페 감독은 왜 이런 색다른 영화를 만들었을까. 늘 심각하고 진지하게, 신에게 갈구하듯 아니면 항의라도 하듯 역사속에 무너지는 정의와 진실을 안타까워하던 거장.

‘굿바이 러버’를 통해 그는 그 양심과 진실이 한 인간에게조차, 아내와 남편에게서조차 지켜질수 없는 세상을 조롱하고 있다. 그 조롱은 다름아닌 진실과 양심에 대한 또 다른 방식의 역설이다.

리안 감독은 5년동안 단 5편의 영화로 거장이 됐다. 데뷔작 ‘쿵후선생’(1992년)에서 ‘결혼피로연’(1993년) ‘음식남녀’(1994년·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4년·베를린영화제 금곰상) ‘아이스 스톰’(1997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는 소담하고 섬세하다.

작은 의식이나 일상의 독특한 묘사와 변화로 담아내는 따뜻한 인간 심성, 그리고 그 부드러운 연출과 이야기를 다스리는 솜씨.

‘와호장룡’과 ‘라이드 위드 데블’은 그가 작은 집에서 동·서양의 거대한 광야로 뛰쳐나온 것이다. 수려하고 광활한 중국대륙에서 펼치는 그의 ‘와호장룡’ 무협은 하늘을 날고 대나무 숲을 즐기는 새처럼 부드럽다.

주인공 리무바이(주윤발)의 말처럼 “가장 강한 것은 부드러움”이 그대로 살아있는 무협을 보노라면 그의 섬세한 손길이 얼마나 과장과 환상을 감성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그 속에 담긴 허무적 삶의 철학이 진솔하고 아름답게 살아나는지 알수 있다.

미국 남북전쟁속으로 뛰어든 ‘라이드 위드 데블’은 또 어떤가. 총칼앞에 피가 튀는 사실적 전쟁속에서 우정과 사랑과 복수와 죽음을, 패배한 남군의 시각이기에 더욱 더 비인간화한 심리를 보여준다.

그 역시 무협과 전쟁은 시각적 오락꺼리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예전에 작은 이야기속에서 찾아낸 인간상실과 아픔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그의 영화는 새롭다.

변신이란 어느날 갑자기 선을 추구하다 악을 신봉하는 것이 아니다. 파란색을 빨간색으로 칠하는 것도 아니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고, 그것을 다양한 소재와 언어로 이야기할 줄 알아야 거장이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dhlee@hk.co.kr

입력시간 2000/08/2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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