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나는 삶… 보고 먹고 느낀다

천연식물 '허브'열풍, 향기 마케팅으로 발전

인간의 오감(五感) 중에서도 후각은 가장 쉽게 피로를 느끼는 기관이다. 외부 자극을 즉각 감지하지만 그만큼 빨리 적응해 이내 그 느낌을 잃어버린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반응하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끌진 못하지만 의학적으론 시각 청각과 함께 신경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감각기관의 하나다.

그간 관심 밖에 있던 후각이 대접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 산과 들에서 나는 천연식물 ‘허브’(Herb)의 열풍이 바로 그것. 3~4년전부터 불기 시작한 허브 열기는 건강 음식 향수에서 생활 필수품 등 각 분야에서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향기 마케팅’이라는 산업 분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허브란 본래 향초나 약초 같은 풀잎을 뜻한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 무렵부터 향신료나 향수 등으로 활용하면서 허브에는 ‘향기가 나는 식물’이라는 협의의 개념이 추가됐다.

인류가 ‘향기나는 식물’을 지금의 ‘허브’라는 개념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때는 약 6,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미이라의 방부제로 사용하기도 했고, 중세 귀족은 향신료나 향신 채소, 또는 마귀를 쫓기 위한 부적으로 사용했다. 그러다 근대 유럽에 와서는 천연 향수, 방향제, 음식에 넣는 각종 조미료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됐다.


식생활에서 다양한 쓰임새

‘인간에게 유용한 향기나는 식물’이라는 개념에서 볼 때 한반도에서도 허브는 오랜 기원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지만 흔히 복용하는 한약제도 허브의 일종이다.

또 우리가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쑥 미나리 씀박이 등의 채소류와 마늘 파 생강 후추 고추 같은 음식 첨가제인 ‘스파이스’도 광의의 의미에서 허브로 간주한다.

국내에서 허브에 대한 관심이 처음 시작된 때는 1990년대 초부터다. 해외여행 자유화를 통해 유럽의 일반 가정에서 널리 보급돼 있는 허브를 이용한 갖가지 상품이 하나둘 국내 시장에 선보이게 되면서 붐을 타기 시작했다.

특히 가공 허브 상품은 외국에서 완제품 형태로 수입이 용이하지만 천연 허브 식물은 수입이 힘들자 국내 채소 농가 사이에서 허브 재배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에는 수백개의 허브 재배 농가가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다. 대부분이 채소나 과일을 재배하던 농가들로서 비닐하우스를 개량해 허브를 키우기 시작했다.

경기도 포천의 한 허브농장 주인은 “허브 재배도 일반 채소 농가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한번 붐이 불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뛰어들어 시장을 망쳐놓고 있다”며 “실제로 2년 전만 해도 분화 1개당 5,000원 하던 것이 지금은 공급 초과로 단돈 1,000원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허브 이용한 치료 ‘향기요법’ 유행

이처럼 허브가 국내에서 갑작스럽게 유행을 탄 것은 허브가 방향 효과 뿐 아니라 건강증진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피로회복 스트레스 불면증 같은 신경성 질환 뿐 아니라 소화불량 감기치료 호흡기질환 신경통 등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허브를 이용한 치료법인 ‘아르마세라피(향기요법)’가 국내에서 한창 유행하고 있다. 그대로 향기를 마시는 허브 흡입법과 촛불로 데워서 향기를 확산시키는 램프 확산법을 비롯해 마사지법 목욕법 습포법 등 갖가지 다양한 방향 요법이 소개되고 있다.

특히 허브는 천연식물을 통한 자연 치유 방식이기 때문에 양약처럼 증독이나 부작용이 적다는 점도 현대인에게 큰 매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아주대 의대 생리학교실과 ㈜태평양 기술연구소는 공동 임상연구를 통해 ‘허브 차를 마시면 심적 불안이 가라 앉고 평온한 마음이 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복합자극으로 유발되는 감성측정 기술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이 실험은 성인남녀 18명을 대상으로 허브차를 마신후 1시간 내의 뇌파, 피부 온도, 심장박동수 등의 변화로 나타나는 감성유발 효과를 측정했다.

그 결과 차를 마신 실험 참가자의 불안 지수가 80에서 68로 낮아졌고 뇌파 검사에서는 기분 좋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알파파가 증가했다.

또 피부저항 온도도 낮아지는 현상을 보였다. 허브가 인체 증진에 실질적인 효과를 준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현재 허브향을 첨가한 향수와 기능성 화장품, 티셔츠에서 잠 잘오는 허브 배개, 허브 신발, 심지어는 생리통을 가라 앉히는 허브 생리대까지 선보이고 있다.


일반가정 재배 늘어

들에서 자라는 식물인 허브는 쉽게 번식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 관상용이나 방향제용으로 많이 재배된다. 번식은 종자를 심는 것 외에 꺾꽂이를 하는 삽목, 접목(접붙이기), 분주(자르기), 조직배양, 취목(휘묻이) 등의 영양 번식 방법이 사용된다. 일부 조직이 잘려도 다시 살아나는 전체 형성 기능이 뛰어나 일반인도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쉽게 키울 수 있다.

허브로 대학원 석사 논문까지 받아 화제가 됐던 원평 허브농장의 이종노(40) 사장은 “허브는 대부분 온대지방에서 사는 식물이라 햇빛이 많고 통풍이 잘되는 곳이면 된다.

물은 너무 자주 주지 말고 한꺼번에 흠뻑 주는 것이 좋다”며 “실내에서 살 수 있도록 육종 개량이 안된 상태라 가급적이면 야생 상태에 가까운 환경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그러나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허브는 대부분이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라 안타깝다”며 “국내에서도 훌륭한 우리 허브를 발굴·개량할 수 있는데 학계나 정부의 노력이 부족해 아직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생활의 질이 높아지면서 향기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향기나는 삶’에 대한 욕구가 커가는 만큼 허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허브 종류와 효능

△로즈마리 : 일명 ‘허브의 왕’으로 야생 삼림과 같은 강한 향을 낸다. 머리를 맑게 하고 기억력을 증진시키며 노화방지, 피로회복 등의 효과가 있다.

△애플민트 : 보통 ‘사과향 박하’라고 불릴 만큼 향이 진하다. 쌈이나 고기 생선 요리 향신채 등으로 이용되며 장내 가스를 제거하고 호흡기관 염증에 좋다.

△차이브 : 부추를 닮았고 마늘 양파의 향이 난다. 혈압 강하와 강장 기능이 있다. 철분과 칼슘을 다랑 함유하고 있어 여성에게 좋으며 방부제 기능도 한다.

△보리지 : 어린 잎을 썰며 오리고기 같은 냄새가 난다. 마그네슘이 많이 함유돼 있고 감기, 특히 유행성 독감에 좋다. 이뇨작용과 류머티즘 치료 효능이 있다.

△라벤더 : 일명 ‘향의 여왕’. 보랏빛 꽃이 피는데 상쾌한 향이 나고 두통약으로도 쓰인다. 신경 안정 기능이 있어 불면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바질 : 초코렛 같이 달콤하면서도 강한 향이 머리를 맑게 해준다. 차로 마시면 신경과민에 효험이 있다. 이탈리아 요리에 샐러드용으로 애용된다.

△파슬리 : 생선 요리를 먹은 뒤 조금만 씹으면 비린내가 가신다. 샐러드 용으로 많이 쓰이는 데 비타민과 철분이 풍부한 좋은 식품이다.

△세이지 : 어디에서 사용가능한 허브. 두뇌 발달 및 근육 발달 효능이 있다. 차는 구강염이나 잇몸 강화에 좋다. 향이 강해 다량 복용을 금해야 한다.

△타임 : ‘백리향’이라고 한다. 강력한 방부성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추출된 액은 구충제로도 쓰인다. 차로 마시면 감기 초기 증상에 좋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24 16:32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