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가로막는 지뢰] 끝나지 않은 전쟁… 지뢰공포

휴전후 민간인 피해자 1,000명 넘어 보상은 '막막'

“꽝 하는 폭음과 함께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걸 느끼면서 잠시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오른 발이 내 발이 아니었다. 다리에 붙어있긴 했지만 뒷꿈치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너덜너덜하게 부서져 있었다.”

김동필(62·경기도 파주시)씨는 가장 최근의 민간인 지뢰 피해자다. 지난 5월14일 오전 11시 민간인통제선 안쪽인 연천군 백학면에서 M14 발목지뢰를 밟았다. 군당국으로부터 개간허가를 받은 지역에서 인부로 일하던 중이었다. 신발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5m 근처에서 함께 작업하던 다른 사람은 말짱했다. 김씨는 무릎 아래를 절단하고 두달간의 병원치료 끝에 퇴원했지만 목발과 휠체어에 의지해 살고 있다.

당시의 충격으로 디스크 연골이 빠져나가 허리까지 제대로 쓰지 못한다. 치료비 700만원은 개간지 부지정리를 맡은 민간인 중장비업자가 부담했지만 위자료 등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 졸지에 장애인이 된 김씨는 군당국에 하소연했지만 “모든 책임은 업자가 지게 돼 있다”는 대답만 들었다.


DMZ 인근농토 지뢰피해 계속

휴전전 인접지역 주민에게 한국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서는 주민 1,700여명 가운데 55명이 휴전 이후 지뢰피해를 입어 피해율이 3.24%에 달한다. 총포탄 대신 지뢰가 주민을 위협하고 있다.

DMZ 인근 지역 농토는 항상 지뢰피해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멀쩡하게 농사를 지어오던 논밭에서도 지뢰를 밟는 경우가 있다. 민통선 안은 더욱 심하다. 농토개간은 사실상 지뢰밭을 개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파주시 파평면의 조봉연씨에 따르면 지난 5월 파주시 진동면에서는 개간중이던 불도저 2대가 대전차 지뢰를 밟아 궤도가 부서졌다. 지뢰사고시 개인책임을 약속한 각서로 인해 피해자가 보상받은 적은 거의 없다.

1998년 국방부 국감자료에 따르면 1992~1997년 6년간 군인과 민간인 지뢰피해자는 모두 78명. 이중 55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한국 대인지뢰대책회의(KCBL)는 1997년 한해에만 군인과 민간인 22명이 피해를 입었다며 실제 숫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했다.

올 들어서는 5월13, 14일 잇달아 민간인 피해자가 나왔고 6월27일에는 판문점 인근 군작전지역에서 중령 2명과 대령 1명이 지뢰를 밟았다. KCBL은 휴전후 민간인 피해자가 1,000명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남한지역에만 112만여발 매설

국방부가 집계한 남한 지역의 대인·대전차 매설지뢰는 112만5,000여발. 이중 수도권 이남의 후방 군부대 주변에 매설된 7만5,000여발을 제외한 압도적 다수는 DMZ 지역에 묻혀있다. 휴전선 155마일 DMZ 주변의 지뢰매설 면적은 2억9,760만평으로 여의도의 334배.

면적대 지뢰수를 단순 계산하면 여의도에 3,000여개의 지뢰가 묻혀 있는 셈이다. 미확인 지뢰지대도 20여만평에 이른다. 이들 지뢰를 제거하려면 적게는 4조원, 많게는 13조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민간인 지뢰피해자의 존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뢰금지운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죠디 윌리엄스가 1998년 2월 방한하면서부터. 윌리엄스는 당시 민통선 인접 지역인 파주시 금파리를 방문해 피해자 7명에게 의족을 선물했다. 그 이전까지 민간인 피해자는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일반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휴전선 인근의 접적지역은 모두 지뢰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중 비교적 잘 알려져 있고 민간인 희생자가 많이 난 지역은 서해안 백령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경기도 연천군 백학·신서면, 경기도 파주시 등이다. 백령도는 1975년 이래 지뢰가 매설되기 시작해 해안선 대부분이 지뢰밭으로 변했다. 백령도 지뢰피해 민간인은 20명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후방지역 지뢰가 더큰 문제

후방 지역의 지뢰매설지는 충남 태안, 경남 울산, 전북 군산, 경남 양산 원효산, 경기도 평택의 현덕면과 팽성읍, 성남시 남한산성, 부산 중리산, 전남 나주 금성산 등 이다.

군부대가 떠난 자리에도 3,912발의 지뢰가 제거되지 않고 묻혀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충남 홍성에서 8세 소녀가 왼쪽 다리를 절단한 것은 이같은 지뢰 탓이다. 1995년에는 경남 양산 원효산에서 등산객 1명이 지뢰를 밟아 발목이 절단됐다.

홍수에 유실되는 지뢰는 민간인 피해를 확산시킨다. 기존의 매설지뢰 뿐 아니라 산사태로 무기고의 비축지뢰가 유실되면서 민간인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98년 경기북부 지역 호우 당시 군부대 비축지뢰 358발이 유실돼 이중 47발만 회수됐다.

특히 두께 2㎝의 소형 M14 발목지뢰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무게가 100g에 불과해 수백㎞까지 떠내려 가기도 한다.

1998년 8월 인천시 서구 원창동 세어도 해안에서 피서중이던 신모씨가 M14 대인지뢰를 밟아 부상한 것은 유실지뢰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역시 8월 양구군 해안면에서는 백춘옥씨가 개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지뢰가 터져 발목이 절단됐다. 백씨는 20년전 7살짜리 아들을 지뢰로 잃은 적이 있다. 경기도 연천에서는 지금까지 논에서 벼농사들 짓던 다수 주민들이 떠내려온 지뢰에 피해를 당했다.


국가적책임 통감하는 자세 필요

랜드마인 모니터(Landmine Monitor)가 추산하는 한국군의 대인지뢰 비축분은 약 200만발. 국방부는 아직 정확한 수량과 종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주한미국의 비축분은 약 120만발로 추산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군과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지뢰가 대부분 자폭장치가 없는 덤(Dumb) 지뢰라는 것. 일정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터져 비전투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스마트 지뢰와 달리 덤 지뢰는 국제적 지탄의 대상이다. 한국이 ‘특정재래식무기협약(CCW)’의 지뢰조항에 가입하면 덤 지뢰는 사용할 수 없다.

한국에서 지뢰의 필요성 여부는 쉽게 결론내릴 문제가 아니다. 군사적 필요성과 인도적 당위성간의 논쟁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남북관계가 호전되고 있다지만 아직 남한이 무장해제할 계제는 아니다. 하지만 민통선 지역내의 피해예방과 피해자 보상은 이와 별개의 문제다.

지금까지 민통선 지역 개간은 해당 행정관청의 요청과 군당국의 허가 아래 진행돼 왔다. 개간지역의 지뢰제거 책임은 개발업자에 있다. 미확인 지뢰밭이 산재한 민통선 지역에서 민간에 지뢰제거 의무를 지우는 것은 안전상 불합리한 측면이 많다.

민간에 위험부담을 지우면서까지 민통선 지역을 굳이 개간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 의견이 많다. 최근 남북해빙 무드를 타고 외지인이 민통선 개간허가를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지역주민의 반발도 일고 있다.

현재 피해자 보상관련 규정은 피해자의 개인책임이라는 전제하에 만들어져 있다. 지뢰가 안보상 목적에서 사용되는 무기라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북한에 대해서는 통 크게 지원하면서 지뢰 피해자는 도외시한다는 불만도 여기서 나온다. 보상규정의 틀을 개인책임에서 국가책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29 20:13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