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 순례(27)] 다임러크라이슬러

미-유럽사 합작, 자동차 빅3 부상

“2010년대에는 연 생산대수가 500만대에 달하는 6개 자동차 메이커만 생존하게 될 것이다.”(비즈니스위크)

“21세기에도 계속 생존할 자동차사는 제너럴 모터스(GM), 다임러크라이슬러, 포드, 도요타 등 4개사에 불과하다.”(닛케이 비즈니스)

“자동차 산업은 물론이고 대부분 업종에서 ‘빅3’만 남아 21세기를 맞을 것이다.”(월스트리트 저널)

21세기 세계 자동차업계의 전망은 살벌하다. 약육강식과 합종연횡이 업계를 지배하는 논리로 부상했다. 정글의 법칙이 지배논리로 등장한 것은 무엇보다 업계의 과잉생산능력 때문이다. 현재 세계 자동차업체는 40여개.

이들 업체가 연간 생산해내는 승용차는 약 2,000만대에 달한다. 이중 실제로 소비되는 승용차는 약 1,600만대. 매년 생산된 승용차 중 20%(400만대)가 주인을 만나지 못해 재고로 쌓이고 있다.

경쟁격화를 부른 또다른 이유는 시장의 세계화. 무역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시장분할에 근거한 생존은 불가능해지고 있다. 과거의 지역별 리더가 차지했던 자리를 글로벌 리더 그룹이 급속히 대체하고 있다. 지구적 경쟁은 자동차의 가격하락을 초래하고 있다. 가격하락은 가속적인 신제품 개발비용 상승과 맞물려 업체의 수익성을 끌어내리고 있다.


범세계적기업의 탄생

1990년대 이래 세계 자동차업계는 맹렬한 인수합병의 태풍에 휘말렸다. 수익성 악화와 기술투자비용 확대라는 이중고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하는 방법 밖에 없다.

1990년 GM은 스웨덴 사브를 인수했고, 같은 해 포드는 영국 재규어를 합병했다. 유럽시장에서 고급차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1994년에는 독일 BMW가 영국 로버를 사들여 대중차 시장에 진입했다. 포드는 1996년 일본 마쓰다를 인수해 아시아 진출 의도를 노골화했다.

1998년은 메가(mega)합병이 불어닥친 한 해였다. 우선 독일 다임러-벤츠와 미국 크라이슬러가 합병해 업계의 지각변동을 몰고왔다.

이어 독일 폴크스바겐이 영국의 자존심 롤스로이스를 인수했다. 바람은 한국에도 밀어닥쳐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르노가 일본 닛산를, GM은 일본 쓰바루를 각각 인수했다.

업계재편의 서막이 끝난 현재 세계 자동차 시장은 대충 8개 업체로 구성된 과점체제로 이행했다.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도요타, 폴크스바겐, 르노-닛산, 혼다, BMW가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들 8강이 모두 안전을 장담할 입장은 아니다. 닛케이 비즈니스는 8강 중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도요타를 제외한 나머지 4개사는 독자생존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또 한차례 인수합병 과정을 거치든지, 적어도 타사와의 제휴가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인수합병은 어떤 효과를 가져올까. 다임러크라이슬러는 하나의 전형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는 다임러-벤츠와 크라이슬러의 합병에 대해 “지역적으로나 생산라인 측면에서 가장 균형을 갖춘 진정한 범세계적 기업의 탄생”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양사의 합병은 규모와 수익성 등에서 발생할 시너지 효과를 주도면밀하게 계산하고 이뤄진 정략결혼이었다. 연구개발 기능공유와 통합구매로 인한 비용절감, 제조기술 보완, 제품통합에 따른 시장범위 확대, 유통망 공유 등의 이점을 극대화한 것이다.

생산차종을 예로 들어보자. 다임러-벤츠는 고급 브랜드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고 있는 반면 크라이슬러는 미니밴, 지프, 경트럭 등 대중차에서 강세를 보여왔다.

합병해도 생산라인이 거의 중복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합병에 따라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메르세데스-벤츠, 크라이슬러, 지프, 닷지, 플리머스, 스마트, 프라이트리너, 스털링, 세트라 등 주요 브랜드를 갖게 됐다.


미국·유럽서 높은 시장점유율

다음은 시장점유율. 크라이슬러는 미국 시장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지만 유럽시장에서는 낮다. 벤츠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시장 점유율은 높은데 비해 미국 시장 점유율은 저조하다.

하지만 다임러크라이슬러로 한집 살림을 하면서 미국과 유럽시장 모두에서 점유율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시너지 효과는 아시아를 비롯한 전세계 시장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양사의 합병을 극찬한 것은 브랜드, 지역적 특성, 생산라인 측면에서 이상적인 조화를 이뤘다고 봤기 때문이다. 합병은 원년에 바로 매출액 증가로 나타났다. 다임러크라이슬러의 1998년 매출액은 1,480억 달러로 전년대비 13% 증가세를 보였다.

벤츠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114년전인 1886년 칼 벤츠에 의해서다. 크라이슬러는 1924년 월터 크라이슬러가 첫 모델을 출시해 76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양사의 합병은 생존과 발전이란 대명제 앞에 역사, 전통, 국적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서구기업의 풍토를 그대로 보여준다. 창업주의 흔적은 회사 이름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합병에 따라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세계 200여개국에서 약 490만대를 판매하는 자동차 업계의 빅3중 하나로 재탄생했다.

포천지가 선정한 1999년 ‘글로벌 500’(매출액 기준) 기업의 10위권에 든 자동차 업체는 모두 4개. GM(1위·1,766억 달러), 포드(4위·1,626억 달러), 다임러크라이슬러(5위·1,600억 달러), 도요타(8위·1,157억 달러)의 순이었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1998년 12월 현재 34개국에 제조설비를 갖고 종업원 44만1,500명을 고용하고 있다.


현대차와 제휴, 아시 공략

아시아는 빅3의 전략시장으로 등장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위르겐 슈렘프 공동회장은 아시아에서 시장점유율 25%를 확보한다는 장기계획을 밝혔다.

지난 6월 다임러크라이슬러가 현대자동차와 포괄적 제휴관계를 맺은 것은 아시아 시장공략의 일환이다.

양사는 제휴를 통해 ▲핵심기술 공동사용 ▲일부 부품·엔진 상호공급 ▲다임러크라이슬러 상용차의 국내생산 ▲전세계 판매망 공동활용 등에서 협조하기로 합의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이미 현대자동차 지분 10%를 인수해 최대 주주가 돼있다.

제휴의 첫 결실로 현대자동차는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중남미 판매망을 이용해 멕시코에 경승용차 아토스를 수출하게 됐다. 연간 3만5,000대에 이르는 아토스 수출분은 다임러크라이슬러의 ‘닷지’ 브랜드를 달고 나간다.

양사의 이같은 결합은 국내 자동차 부품 조달체계에도 차별화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의 연고주의 관행에서 벗어나 기술 위주의 아웃소싱 방식으로 전환된다는 것.

다임러크라이슬러가 한국에 첫선을 보인 것은 합병 이전인 1992년 크라이슬러가 자동차를 판매하면서부터.

다임러크라이슬러는 현재 전국 주요 도시에 16개 전시장과 10개 퀵서비스 센터, 21개 지정정비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다 올 연말까지 24시간 출동정비 서비스를 지방까지 확대 실시할 계획이다. 부품산업, 완성차 조립, 판매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세계 시장에 완전히 편입되고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0/08/30 16:25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