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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소니 교통사고] 한 생명과 가정을 파괴하는 뺑소니 사고

[뺑소니 교통사고] 한 생명과 가정을 파괴하는 뺑소니 사고

연평균 20%이상씩 증가, "반드시 잡힌다" 의식 확산

가족중 한사람이 차에 치인 채 차디찬 길 위에서 신음하며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해보라. 구호의 손길이 절박한 그 상황에서 가해자가 나 몰라라 도주했다면 당신은 과연 그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뺑소니 사고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해 2만1,407명(1998년 2만3,410명)으로 줄었던 뺑소니 교통사고 건수가 올해 상반기에는 11만817명으로 전년동기 10% 이상 다시 증가했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지난 30여년간 국내 뺑소니 사고 건수는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연간 평균 20% 정도씩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 인륜적 범죄, 한해 3만여명 사상

뺑소니 사고는 일반 교통사고와는 다른, 반인류적 범죄 행위다. 최근 5년간 한해에 평균 700여명의 사망자와 3만명에 가까운 부상자가 뺑소니로 피해를 보고 있다.

현재 뺑소니 사고로 고통을 받고 있는 피해자 가족만도 25만명에 달한다. 뺑소니 사고의 가장 큰 폐해는 무고한 시민의 억울한 피해다. 사고 직후 응급조치만 취했다 하더라도 최소한 생명은 건지거나, 평생 불구의 장애를 갖지 않아도 될 피해자를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고갈 수 있는 것이 바로 뺑소니 사고다.

가까스로 목숨은 건졌다 하더라도 가해자를 찾을 수 없어 보상을 못받고 평생을 가난과 절망 속에서 살아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김선경(21·H여대) 원경(19·고3) 소미(16·중3) 세 자매는 바로 이런 뺑소니 사고로 단란했던 가정이 파탄난 케이스다. 소미양 가족은 예기치 못한 불행이 닥치기 전까지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밝고 행복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소미가 세살이던 1988년 아버지가 뺑소니 사고를 당하면서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가해자를 찾지 못해 보상 한푼 받지 못했지만 어디 한곳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그때부터 살림이 기울자 어머니가 세 자매를 키우기 위해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세 자매의 유일한 희망이자 버팀목이었던 어머니가 그만 올해 8월6일 오전 2시 식당일을 마치고 마포구 성산동 임대아파트 집으로 돌아오다 수색역 근처에서 과속으로 달리던 음주 차량에 치어 그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뺑소니 사고로 잃은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마지막 희망이던 어머니마저 교통사고에 희생된 것이다. 어머니를 묻고 돌아서는 이들에게 어떤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감당할 수 없는 아픔과 시련을 준 사회가 싫어질 뿐이었다. 맏언니인 선경씨는 현재 경제적인 문제로 학교를 그만 둘 것을 심각히 고려하고 있다.


전담수사팀 발족, 검거율 높아져

이처럼 사회적 문제까지 야기하는 뺑소니 사고가 줄어들 기미가 안보이자 정부 당국은 1997년 9월 경찰청내에 전담수사팀을 발족했다.

전국 200여개 경찰서에 평균 2~3명씩 총 541명의 경찰관을 뺑소니 사고 전담반으로 임명, 초동수사에서부터 범인 검거까지 일괄 수사를 담당토록 했다. 이것이 결실을 맺어 전담반 구성전에 평균 50% 수준에 머물렀던 범인 검거율이 지난해에는 82% 정도까지 높아지는 효과를 봤다.

경찰청 뺑소니 전담반의 강맹순 경위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5개년 계획으로 연구 의뢰한 뺑소니 차량 판독 프로그램이 거의 완성 단계에 들어가 있다”며 “사고 차량에서 페인트나 백밀러 조각 등 약간의 유류물만 발견되면 몇년도식 어느 형식의 어느 차종인가를 그대로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데이타 베이스를 구축했다. 이제 뺑소니는 반드시 잡힌다는 사실을 운전자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뺑소니 사고 검거의 대부분이 시민 제보라는 점에 착안, 경찰은 사고 차량을 검거하는데 도움을 준 신고자에게 최저 10만원에서 최고 300만원까지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운전면허 벌점 40점 감점 혜택도 주고 있다. 뺑소니 신고를 한 택시 운전자의 경우 개인택시 면허 발급 심사 과정에서 가산점을 부여해준다.

특히 최근에는 무선 통신망을 갖춘 콜택시들이 한데 뭉쳐 ‘민간 뺑소니 감시단’을 결성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 교통시민단체로 발족한 사단법인 한국교통시민협회는 현재 전국 70개 지부에서 6,000여명에 달하는 뺑소니 감시단을 결성, 민간 감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피해가족 돕기에 나선 시민단체들

이처럼 뺑소니 사고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자 녹색교통운동과 교통장애인협회,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 등 교통 관련 시민단체들은 피해 가족을 돕는데 발벗고 나섰다. 교통사고 유자녀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인터넷 교실, 농구캠프 등 다양한 교육·문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1993년부터 장학 사업을 벌이고 있는 녹색교통운동의 임선영 팀장은 “뺑소니 사고는 피해자가 사망이나 중상을 입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가정파괴범이나 다름 없는 중범죄 행위”라며 “시민의식 고취와 함께 정부도 피해 가족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에서 뺑소니 차량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는 상당히 혹독하다. 차량으로 사람을 사상하거나 물건을 손괴했을 때 곧바로 정차해 사상자를 구호하고 경찰관서에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미필적 고의로 간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인정돼 징역형에 처한다.

피해자가 사망한 때는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부상을 당한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1984년 8월 개정된 이 법은 1995년 8월에 다시 형량을 높여 재개정됐다.

이 법은 ‘일반 형사 사범과 비교해 볼 때 가해자가 단지 도주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중처벌한다는 것은 법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일부 주장도 있다.

또 소수 비양심적인 피해자의 경우 경미한 차량 손괴 사고에 불과한데도 병원에서 2~3주의 진단서를 첨부해 뺑소니 치상 사고로 위장, 가해자를 협박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뺑소니를 감행하는 사람의 심리 기저에는 ‘안잡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시민의 철저한 신고 의식이 뒷받침돼 ‘뺑소니는 반드시 잡힌다’는 묵시적 공감이 형성된다면 이 땅에서 뺑소니는 자취를 감출 것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입력시간 2000/08/3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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