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읽기] 강제규의 드림웍스

2,000억원. ‘쉬리’ 한편으로 강제규 필름은 거인이 됐다. 그리고 거인은 몸집에 걸맞는 성을 짓기 시작했다. 돈은 얼마든지 있었다. ‘쉬리’가 벌어들인 돈만이 아니다. 그가 앞으로 거둬들일 수확을 예상한 투자자들이 줄을 섰다.

그는 그중 하나인 종합기술금융(KTB)의 57억5,000만원을 지분의 20%를 내놓고 받아들였다. 그에게는 빚인 셈이다. 그러나 걱정없다. 2000년 말까지 코스탁 등록을 하겠다고 해놓았으니. 등록이 되면 나머지 80%의 주식으로도 몇십배는 이익을 올릴 수 있다.

성 짓기에 앞서 그는 ‘식량(영화)생산’부터 서둘렀다. 농사 지을 일꾼의 모임인 드림팀을 구성했다. 그것을 팔아야만 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을 인재를 뽑아 일년 내내 다양한 영화를 생산할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것만으로 그의 욕심이 채워질 수는 없다. 그동안 남의 돈으로 어렵게 제작하던 그는 지금이야말로 꿈에 그리던 자신의 계획을 펼칠 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먼저 극장사업에 눈을 돌렸다. 서울 강남에 있는 동아극장을 장기 임대했다. 첨단시설로 개수해 7월29일 ‘ZOO 002’란 이름의 멀티플렉스로 개관했다. 내친 김에 그는 서울의 다른 지역과 지방 도시에도 극장을 확보해 전국적 배급망을 갖출 계획이다.

이제 그가 만드는 영화는 극장을 못잡는 일은 없어진다. 강우석, 제일제당의 극장망 장악에 대한 대응이다. “국내 극장 유통상황을 보라. 제작자는 객이지 주인이 아니다. 유통에 영향력을 갖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창구를 봉쇄당한다.”

인터넷 방송 ICBN도 공동설립했다. 온라인을 통해 마케팅 효과를 높이고, 영화를 상영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아이스크림(Iscream) 엔터테인먼트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8월2일 에스엠(SM) 엔터테인먼트, 엔씨 소프트, 바른손 등 음반, 인터넷, 게임, 캐릭터 분야의 대표적 회사들과 공동으로 설립했다.

“2억5,000만원(전체 지분의 25%)을 투자해 영화가 창출할 수 있는 컨텐츠를 개발하고, 그것의 세계적 유통망도 뚫게 된다. 적은 비용으로 얼마나 우리 영화에서 절실한, 미래에 꼭 필요한 것은 확보했다.”

이 모든 것이 6개월만에 이뤄졌다. 그리고 연말이면 강제규 자신이 메가폰을 직접 잡을 남북분단 소재의 ‘제2의 쉬리’와 또한편의 블록버스터가 구체적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제작비의 50% 이상을 해외에서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당연히 세계 배급까지 시도한다.

여기까지가 강제규 필름의 드림웍스다. 그야말로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이제 그의 ‘영화의 성’은 누구의 도움도 받을 필요없는 영화의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스필버그가 그랬듯이 그도 감독에서 제작자를 거쳐 다각화한 영상사업체의 대표로 바뀌고 있다.

그의 행보에 부정적 시각도 있다. 한국 영화가 빅3(강제규, 강우석, 제일제당)로 재편되면서 작은 영화의 설 자리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제규의 반론은 이렇다.

“한국 영화의 산업화를 위해서는 적어도 아시아 시장까지 겨냥한 건강한 메이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5년 후면 아시아가 세계 최대의 영화시장이 될 것이다. 그때 한국이 시장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지금의 제작 규모나 시스템으로는 안된다. 공동제작과 배급, 다양한 부가산업을 창출하는 아시아의 대표적 영화사가 필요하다. 그것이 꼭 강제규 필름이 아니라도 좋다.”

한국 영화가 덩치가 커지고 상대적으로 알맹이는 부실해지는 것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는다. 어차피 옛날의 제작비로는 아시아 시장까지 내다보는, 다양하고 힘 있는 영화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그의 드림웍스도 질 좋은 영화를 전제로 한다. 그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힘의 80%를 그곳에 쏟고 있다고 했다. 다른 것과 달리 금방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특성이 있어 집만 커지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했다. 내년 중반까지 ‘베사메무초’, ‘펠레스코아’ 등 7개 작품의 프로젝트가 완료된다.

그러나 그전에 그는 강우석이 ‘비천무’로 그랬듯 11월에 개봉하는 40억원짜리 ‘단적비연수’로 혹독한 시험을 치러야 한다. 본의든 아니든 그를 따라 한국 영화는 변하고 있다. 그 변화가 거품인지, 장미빛인지 자신이 증명해야 할 차례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0/08/3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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