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연패 후 연승' 전설을 만들어내다

조치훈의 달라진 면모는 비록 2연패 후였지만 대역전극의 실마리를 맞이하는데 상당한 효험이 있었다. 어쩌면 철천지 원수 같은 고바야시와의 리턴매치가 이렇게 2년만에 찾아왔는데 보기좋게 2연패를 당하는 건 자존심 문제다.

그러나 운명처럼 제3국을 이긴 조치훈은 보란 듯이 제4, 5국을 또 연승하여 하나의 작은 기적을 이룬다.

2패 후 3연승. 훗날 조치훈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연패 후 연승’은 승부의 극적 반전을 대신하는 표현으로 자리잡는데, 어쨌든 조치훈은 숙적 고바야시에게 2패 후 3연승을 거두며 휠체어대국 이후 처음으로 벌어진 도전기에서 첫승을 거둔다.

그것으로 조치훈은 전 타이틀제패라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현역 프로로서 현재 존재하는 전 타이틀을 손에 넣어보았다는 뜻이다. 조치훈에 이어 그랜드슬램에 가장 가까운 기사는 가토였는데 1위 기전 기성만 따보지 못했고 고바야시는 본인방과 왕좌를 따보지 못했다.

한편 조치훈은 랭킹 5위 기전에 간신히 턱걸이했고 고바야시는 전혀 일인자답지 않게 랭킹 1위 기성 타이틀 하나만 달랑 부여잡고 있었다. 오히려 가토는 2위 명인과 4위 십단을 보유하고 있어 고바야시보다 외형적인 성과는 더 화려한 기사였다.

이 가토에게 조치훈이 1988년 4위 십단전에 도전한다. 무관으로 떨어져 서서히 부활하던 조치훈은 5위 왕좌를 허리춤에 차고 4위 십단을 향해 도전한 것이다.

승승장구란 이런 것이다. 시작 공이 울리자마자 1, 2국에서 완승을 거두는 조치훈은 잠시 방심했을까 4, 5국을 잃더니 다시 마지막 제5국에서 승리를 거두어 대망의 2관왕에 올라선다. 그것으로 1988년의 일본 바둑계는 묘한 4인방 체제가 확립된다.

1위 기성엔 고바야시 고이치, 2위 명인엔 가토 마사오, 3위 본인방엔 다케미야 마사키. 그리고 우리의 조치훈은 4위 십단과 5위 천원을 보유함으로서 굳이 서열상으로는 4위이지만 빅3를 차지한 그들과 체감적으로는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1986년 무관의 나락에서부터 1988년까지의 3년간 조치훈은 생각보다는 빨리 부활한 편이다. 벌써 4위까지 올랐다는 건 기량으로는 이미 전성시절 3대 타이틀을 모조리 따내었을 때와 조금도 차이가 없다.

다만 그를 뒤쫓던 추격자도 조치훈이 불행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약간씩 근력을 회복하여 조치훈에 범접해 있다는 것이 약간의 차이라면 차이.

그러나 조치훈은 갈구하고 있었다. 이른바 빅3 타이틀에 올라가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3년의 세월동안 무수히 기성 명인 본인방에 대시했으나 운이 지지리도 맞지 않는다.

3대 기전에 관해서만 말하자면 조치훈은 어느 한해도 선전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결정적인 찬스는 항상 비켜가고 말아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1986년 본인방 리그에서 5승2패로 2위, 명인 리그 6승2패로 2위, 기성 8강전에서 탈락(기성전은 본선 토너먼트임). 1987년 본인방 리그 4승3패 2위, 명인 5승3패로 3위, 기성 8강에서 탈락. 1988년 본인방 리그 2승5패로 탈락, 명인 5승3패로 3위, 기성 도전자결정전에서 1승2패로 탈락.

리그에서 2위나 3위를 했다는 건 도전자 일보 직전에서 마지막 한판을 패했을 경우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1988년의 기성전 도전권 실패는 조치훈에게 가장 충격적인 패배라고 할 것이다. 그 시합을 이겼다면 곧장 고바야시와의 일인자 쟁패전이 이어졌을 것이고 일인자에서 물러난 지 3년만에 다시 컴백하는 무대가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인연이란 건 우리 욕심처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1988년 본인방 리그에서 우연찮게 기회가 오고 있었다. <계속>

[뉴스와 화제]


■ 삼성화재배 개막-한국신예군 대거 출동

8월 30일 개막되는 제5회 삼성화재배에서 한국신예들의 맹활약이 기대되고 있다. 한국은 15명의 대표중 20대 이하의 기사가 무려 9명이나 포진해 있고 그 중 초단만 3명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젊은 피 군단'이다.

중국이 2명, 일본이 1명의 신예만 출전시킨 것과 비교하면 한국대표단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최근 목진석이 후지쓰배에서 3위를 차지했고 이세돌이 LG배 8강에 올라 한국 신예의 매운 맛을 과시한 바 있다.

■ 이창호 응씨배 4강 선착

한국의 대회 4연패의 중책을 떠 안은 이창호가 제4회 응씨배 준결승에서 중국의 실력자 위빈을 2:0으로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다.

이로써 이창호는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에 이어 또다시 응씨배 우승을 노리게 됐다. 이창호가 결승에서 승리한다면 한국의 4인방이 모조리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상대는 중국의 창하오-타이완의 왕밍완 승자.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08/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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